북한 문화어의 이해

‘때식을 번지다’


전수태(田秀泰) / 국립국어연구원

2001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통일의 꿈을 안겨 준 한 해였다. 2000년 6월 중순 남쪽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쪽의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 정상 회담은 분단 50년의 적대 관계 청산을 위한 계기가 되었다. 그 후에 연달아 이루어진 남북 장관급 회담과 두 차례에 걸친 서울과 평양에서의 이산가족 만남은 정상 회담에서 합의된 사항들을 실천에 옮기는 단계로서 우리 민족 전체에게 통일의 열기를 불어넣는 데 충분하였다. 금년은 뱀의 해이다. 뱀은 지혜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한 해도 민족의 지혜를 모아 통일을 가꾸어 나아가자. 그리고 잦은 만남을 통해서 민족어의 통일도 앞당겨 보자. 이번에도 지난번에 이어 우리에게 낯선 북한 말을 소개하기로 한다.

꾸을다란 말이 있다. 이는 우리말의 ‘구르다’에 해당하는 말이다. “수만명이 살던 이거리 그 어데서도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숱한 사람들의 왕래가 그칠새 없던 거리에는 마가을 바람에 떨어진 락엽들만 꾸을고 밤새도록 웃음소리 흘러나오던 살림집들에서도 불빛한점 없다. 뉘네집 토방밑에선가 귀뚜라미만 구슬피 울어댄다.”<“적후의 별들”, 김형지, 문예출판사, 1975, 18쪽>와 같이 쓰인다. 여기에서 북한 말 ‘마가을’은 ‘늦가을’을 가리킨다.

때식’은 우리말로 ‘끼니’이다. “한성욱은 비로소 자기에게 혁명가의 넋이 생겨나고 혁명가의 의지가 생겨나고 있음을 의식하였다. 한성욱은 전혀 경황없는 가운데서 며칠동안 때식조차 번지며 뛰여다녔다.”<“그리운 조국 산천”, 박유학, 문예출판사, 1985, 497쪽>와 같이 쓰인다. 이때 북한 말 ‘번지다’는 ‘거르다’의 뜻이다.

물앉다’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거나 내려앉다’의 뜻이다. “그리고 총을 먼저 들이밀며 안으로 뛰여들었다. 가마목을 쓸던 어머니 허씨는 기겁을 하여 그 자리에 펑덩 물앉으며 비자루를 떨구었다.”<“근거지의 봄”,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81, 180쪽>와 같이 쓰이는 말이다. 북한 말 ‘가마목’은 ‘가마솥이 걸려 있는 부뚜막이나 그 둘레’를 가리킨다.

사득판’이란 말은 ‘밑바닥이 매우 무르고 질컥하여 빠지면 나오기 어려운 진펄을 가리킨다. “적의 선두척후가 지나간 다음 신호에 따라 길 동쪽 고지에서 경위중대가 먼저 때리시오. 적들이 사득판으로 밀리면 7련대, 8련대에서 두들겨패야 하오. 동무들, 오늘 전투는 그저 적을 물리치는것으로는 승리로 될 수 없소, 순식간에 한놈도 놓치지 말고 멸살시켜야 하오.”<“준엄한 전구”,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81, 498쪽>와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중낮(때)’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때’를 말한다. “그는 김정숙동지께서 천상수의 산전막련락소를 통해 띄운 련락원과 거의 한시각에 밀영에 도착하여 장군님께 신파지구의 정황을 보고하고 결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낮때까지 장군님께서는 아무 소식이 없으시였다.”<“그리운 조국 산천”, 박유학, 문예출판사, 1985, 279쪽>와 같은 예가 보인다.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을 계기로 사득판(?)에서 빠져나온 남북 관계가 2001년에는 더욱 좋아지도록 남북이 다 같이 때식을 번지는(?) 노력을 하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