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풀리지 않는 한글의 신비


김광해(金光海) / 서울대학교

모든 위대한 것들에는 얼마간 신비로운 점이 있다. 그렇다면 위대하다는 표현조차 부족해 보이는 한글은 어떨까? 아닌 게 아니라 한글 창제의 배경에도 아직 정확한 답을 알기 어려운 몇 가지 의문들이 남아 있다. 이런 면면이 한글의 위상을 좀 더 위대한 것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알아 두는 것도 좋을 것이므로 이 기회에 정리해 보자.
   한글 창제와 관련하여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중의 하나는 이 문자를 과연 세종이 혼자서 만들었을까 하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정사(正史)의 기록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서 회의한다. 조선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한글 관련 부분이 지나치게 돌출적일 뿐 아니라, 3년밖에 안 되는 짧은 준비 기간 직후에 쏟아져 나온 출판물의 양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기 때문이다. 한글 창제 과정 혹은 반포 직후 1년 안에 나온 출판물들 중에서 특히 24권일 것으로 추정되는 “석보상절” 같은 책은 수양대군 한 사람이 그 짧은 기간 안에 저술해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양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한글에 달통한 전문가들 여러 명이 이 작업을 도와주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한글 전문가들은 있었을까? 있었다면 그들은 그 짧은 기간 안에 어떻게 양성되었을까? 혹시 세종이 한글을 만들기 전부터 이 문자에 대하여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훈민정음을 둘러싸고 모종의 관련을 가진 일련의 수(數)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예를 들면, 한글로 된 훈민정음 어지(御旨)의 글자 수는 108자이며, 그것의 원문인 한문은 그것의 정확한 절반인 54자로 되어 있다. 또 한글의 기본 글자가 28자가 아니라 27자가 아니었던가 의심하게 하는 기록들이 있는데, 이 역시 54의 절반이다. 한글로 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른바 언해본)은 “월인석보” 제1권에 실려 전해 오는데, 이 책의 면수가 108면이며, 그런 사실을 보물 찾기 하는 것과 비슷하게 은밀한 방법으로 적어 놓았다. 이 수들은 모두 불교에서 신성하게 생각하는 수인 108과 관련되는 수들이어서 일부러 이런 일을 한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우리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이 108이라는 숫자는 수학적으로 소인수 분해를 하면 22×33이기도 한데, 절반인 54, 다시 절반인 27이 모두 108과 마찬가지의 신성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또 국보 70호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이른바 해례본)은 모두 33장으로 되어 있는 점도 흥미롭다. 이 수가 과연 인위적으로 조절된 것인지 여부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증거는 없지만, 결과만 본다면 33이라는 숫자는 역시 불교에서 신성시하는 숫자로서 도리천( 利天)의 수이다(이 부분에 관해서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http://plaza.snu.ac.kr/~sunnysea/ 참조). 이런 숫자들은 훈민정음의 문면에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만 보인다. 이런 숫자들은 과연 인위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 신비라고 볼 수 있으니, 인위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나을 터인데, 그렇다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수고를 한 것일까?
   또 하나, 한글과 한자의 관계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글은 한자와 혼용되어 쓰였는데, 신기한 것은 똑같이 네모난 틀 속에 들어가도록 짜여진 한글과 한자가 서로 혼동될 수 있는 모양을 한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가령, ‘ㅅ(시옷)’과 ‘人(사람 인)’ 같은 글자가 비슷하여 혼동될 수 있는 예인데, 한글의 자음은 혼자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혼동되는 장면 자체가 나타나지 않는다. 수천을 넘는 글자꼴들 중에서 서로 중복이 일어나는 글자가 존재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것은 우연에 의한 결과일까? 아니면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특별히 노력을 기울인 때문일까?
   이런 의문들은 쉽게 풀리기는 어렵겠지만, 모두 한글의 기원 문제에 관계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 창제의 저 너머에 무엇이 더 있는지 궁금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