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자 표기법의 이해

새 로마자 표기법


김세중(金世中) / 국립국어연구원 어문자료연구부장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되었다. 실로 16년 만의 일이다. 그간의 로마자 표기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종전의 표기법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도 어떻게 고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7일에 국가의 새 표기법이 공식적으로 고시되었다.
   우선 종전 로마자 표기법을 왜 개정해야 했는지 살펴보자. 종전의 로마자 표기법은 1939년에 미국인 매큔과 라이샤워 두 사람이 만든 것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1984년에 문교부에서 고시한 종전의 표기법은 매큔라이샤워 표기법과 별로 다르지 않다.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우선 모음 ‘ㅓ, ㅡ’를 , ŏ, ŭ로 적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 ŏ, ŭ는 컴퓨터 자판에 없어서 치기가 불편하고 어느 언어에도 없는 글자여서 내외국인 모두 거부감을 느꼈다. ‘ㅋ, ㅌ, ㅍ, ㅊ’에 대한 k’, t’, p’, ch’도 역시 거부감을 주기는 마찬가지여서 회사명이나 인명에서는 사실상 거의 쓰이지 않았다. ‘ㅓ’를 ŏ로 쓰기를 싫어한 사용자들은 u, eo, o 등 다양한 방법으로 쓰게 되어 로마자 표기는 일관성을 잃고 혼란상을 보이게 되었다. 즉 로마자 표기의 통일을 위해 마련된 로마자 표기법이 오히려 로마자 표기의 혼란을 낳은 셈이었다. ‘ㅓ, ㅡ’를 , ŏ, ŭ로 표기하도록 규정한 종전의 로마자 표기법은 앞날을 예측하지 못한, 실패한 표기법이었다.
   종전의 로마자 표기법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한국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기법이라는 점이다. 유성음과 무성음은 한국인에게는 전혀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변이음에 불과한 것인데 유성음이냐 무성음이냐에 따라 다른 로마자를 적도록 했으니 변이음을 구별해서 적는 것은 로마자 표기법의 기본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부부’를 pubu로 적어야 한다고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왜 그렇게 적어야 하는지 한국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인이 이해할 수 없는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애당초 잘못된 것이었다.
   새 로마자 표기법은 종전의 로마자 표기법과 같이 한국어의 발음을 표기하는 원칙을 유지하였다. 예컨대 ‘독립문’과 ‘청량리’는 각각 발음이 [동님문], [청냥니]이니 Dongnimmun, Cheongnyangni로 적는다. 만일 ‘빗’과 ‘빛’을 적는다면 둘 다 발음은 [빋]이므로 똑같이 bit로 적는다.

   새 표기법이 종전의 로마자 표기법과 달라진 점은

첫째, ‘ㄱ, ㄷ, ㅂ, ㅈ’을 모음 앞에서는 g, d, b, j로 통일했다는 점이다. ‘광주, 공주, 군산, 김포’ 등이 종래에는 Kwangju, Kongju, Kunsan, Kimp’o로 적혔는데 Gwangju, Gongju, Gunsan, Gimpo로 바뀌게 되었다. 다만 자음 앞이나 단어 끝에서는 ‘ㄱ, ㄷ, ㅂ’은 k, t, p이다. ‘삭주’, ‘정읍’은 Sagju, Jeongeub이 아니라 Sakju, Jeongeup이다.

둘째, ‘ㅓ, ㅡ’는 각각 , ŏ, ŭ에서 eo, eu로 바뀌었다. 따라서 ‘정선, 음성’은 Jeongseon, Eumseong이다.

셋째, ‘ㅋ, ㅌ, ㅍ, ㅊ’은 k’, t’, p’, ch’에서 k, t, p, ch로 바뀌어 어깻점이 없어졌다. ‘태평로’의 경우 종전에는 T’aep’y ngno였는데 Taepyeongno가 되었다.

넷째, ‘ㅅ’이 s로 통일되었다. ‘신설동’의 경우 종전에는 Shins l-dong이었는데 Sinseol-dong이 되었다.

발음을 옮기는 원칙을 취하고 있지만 된소리가 되거나 거센소리가 되는 경우에는 약간 다르다. 예컨대 ‘울산, 압구정’의 경우 발음은 [울싼], [압꾸정]이지만 된소리를 무시하고 Ulsan, Apgujeong으로 적는다. ‘묵호’의 경우도 발음은 [무코]이지만 Muko로 적지 않고 Mukho로 적는다.
   사람 이름은 보통 두 글자인데 각 음절 사이에서 일어나는 음운 변화는 반영하지 않는다. 따라서 ‘홍석민’이라면 발음은 [홍성민]이지만 발음을 따르지 않고 Hong Seokmin으로 적는다.(Hong Seok-min으로 적어도 된다.)새 로마자 표기법은 오래도록 변함없이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졌다. 과거에 한글 맞춤법 중심의 로마자 표기법도 경험해 보았고 발음을 나타내면서 유성, 무성까지 구별하는 서양인 중심의 로마자 표기법도 시행해 보았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새 로마자 표기법은 한국어의 발음을 보여 주면서도 한국어의 음운 대립이 잘 나타나도록 만들어진 표기법이다. 이를 잘 정착시켜 로마자 표기의 혼란을 해소하는 것은 사용자인 우리 국민들의 몫일 것이다.(개정안은 국립국어연구원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