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빈대떡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빈대떡’은 녹두를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긴 후 맷돌에 갈아 나물, 쇠고기나 돼지고기 따위를 넣고 번철에 부쳐 만든 전이다. ‘녹두부침개’, ‘녹두전’, ‘녹두전병’ 등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일찍부터 ‘빈대떡’이라는 명칭이 쓰인 것은 아니다. 이 명칭은 아주 후대에나 나타난다. 17세기에만 해도 ‘빙져’라는 단어가 쓰였다.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1677)에 ‘빙져’가 처음 보인다.
   ‘빙져’는 ‘餠’에 대한 중국음이다. ‘빙져’는 실물과 함께 중국어에서 국어로 직접 들어온 차용어이다. ‘빙져’는 “朴通事諺解”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역어유해(譯語類解)”(1690)에는 ‘빙쟈’로 나온다. ‘빙쟈’는 ‘빙져’의 제2음절 모음이 음성모음에서 양성모음으로 바뀐 어형이다. ‘빙쟈’는 19세기 말의 “한영자전”(1897)에는 ‘빈쟈’으로 나타난다. 제1음절의 ‘빙’이 ‘빈’으로 바뀌어 있으며, 잉여적 요소인 ‘’이 첨가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2음절 단어가 갑자기 3음절 단어로 바뀌어 나타난 점이다.
   20세기의 “자전석요(字典釋要)”(1909), “조선어사전”(1920) 등에는 ‘빈자’으로 약간 바뀌어 나온다. ‘빈자’의 ‘빈자’는 물론 ‘빈쟈’가 변한 것이다. ‘빈자’를 ‘貧者’로 간주하여 ‘빈자’을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이라고 그럴듯하게 풀이하기도 하나 이는 그저 재미로 붙여 본 해석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17세기의 ‘빙져’가 ‘빙쟈’를 거쳐 ‘빈쟈’으로 변했다가 다시 ‘빈자’으로 변한 것이 된다. ‘빈자’은 문세영 저 “조선어사전”(1938)에는 ‘빈자떡’으로 표기되어 나온다.

그런데 ‘빙져’의 변천은 ‘빈자>빈자떡’에 머문 것이 아니라 ‘빈대떡’에까지 이르고 있다. ‘빈대떡’이라는 단어는 ‘빈자떡(<빈자)’과 제2음절에서 크게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이 단어가 언제 나타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최초의 것은 문세영 저 “조선어사전”(1938)의 것이다. 이 사전에는 ‘빈자떡’이 함께 실려 있다. ‘빈자떡’에 대해 “‘빈대떡’과 같음”이라고 간단히 기술하고 있다. ‘빈자떡’보다는 ‘빈대떡’을 더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어사전”(1938)이 편찬된 1930년대에는 ‘빈대떡’이 ‘빈자떡’보다 우세하게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

그렇다면 ‘빈자떡(<빈자)’이 ‘빈대떡’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이 떡이 ‘빈대’라는 해충과 모양이 비슷해서가 아니었나 한다. ‘빈자떡’의 어원을 잃어버린 뒤 그 어원을 회복시키려던 차에 이 떡이 빈대와 같이 납작하다는 점에 이끌려 ‘빈자’를 음이 비슷한 ‘빈대’로 바꾸어 그저 ‘빈대떡’이라고 불렀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알이 작고 납작하게 생긴 밤’을 ‘빈대밤’이라 하고 ‘납작한 코’를 ‘빈대코’라 하듯이, ‘납작한 떡’을 얼마든지 ‘빈대떡’이라 할 수 있다.
   이로 보면 ‘빈대떡’에 ‘빈대처럼 납작하게 생긴 떡’이라는 어원설이 나오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빈대떡’의 ‘빈대’를 ‘賓待’로 보고 ‘손님을 맞을 때 내놓는 떡’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무리이다.
   ‘빈대떡’이 ‘빈자떡(<빈자)’을 이은, 그것의 후속 단어라는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빈자떡(<빈자)’의 ‘빈자’가 중국어 ‘빙져’에서 변한 것이어서 ‘빈자떡(<빈자)’을 이은 ‘빈대떡’의 ‘빈대’까지도 ‘빙져’에 직접 연결된다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 ‘빈대떡’의 ‘빈대’는 납작한 외양을 하고 있는 해충 ‘빈대’에 이끌려 연상된 단어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