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

디지털/디지탈/디지틀?

정희원(鄭稀元) / 국립국어연구원

외래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에는 철자가 아니라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 로마자를 쓰는 언어 중에는 이탈리아 어나 에스파냐 어처럼 철자가 곧 발음을 나타내는 언어도 있지만, 영어 등 대부분의 언어는 철자만 가지고는 그 발음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특히 모음 글자는 늘 일정하게 소리나지 않고 여러가지로 발음된다. 예를 들어 영어의 모음 ‘a’를 살펴 보자. ‘apple[æpl]’이나 ‘cat[kæt]’ 같은 단어에서는 ‘a’가 [æ]로 소리나고, ‘market[mα:rkit], march[mα:r]’ 같은 단어에서는 [α]로 소리난다. ‘angel[eindʒƏl]’, ‘snake[sneik]’ 등에서는 [ei]로 소리나며, ‘career[kƏriƏr]’, ‘America[ƏmerikƏ]’ 등에서는 철자 ‘a’가 [Ə]로 발음된다. 따라서 외국어의 철자를 기준으로 외래어를 표기할 수는 없으며, 반드시 발음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다양한 외국어의 단어들을 현지에서의 발음에 가깝게 적도록 하기 위해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를 제시하고 있다. ‘국제 음성 기호’란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발음 기호로, 대부분의 외국어 사전에는 이 기호로 발음이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외국어에서 비롯된 말을 우리말로 옮길 때에는 이 표에 따라서 적어야 한다.

외래어 표기는 발음을 기준으로

외래어의 모음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혼동하는 것은 [Ə]와 [Λ]의 표기이다. 이들은 둘 다 우리말에는 쓰이지 않는 소리이므로, 외국어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따로 구별해 내기가 어려운 소리들이다.

 [Ə]는 영어에서 강세가 없는 음절에 오는 모음으로, 우리말의 ‘어’와 ‘으’의 중간 소리처럼 들리는데,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에서는 이를 ‘어’로 옮기도록 규정하고 있다. 요즘 ‘digital[didʒitƏl]’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면서 이에 대한 표기가 ‘디지털, 디지탈, 디지틀’ 등 여러가지로 사용되는데, ‘디지털’이 옳은 표기이다. ‘terminal[tƏ:rminƏl]’의 경우는 지하철 노선도에는 ‘고속버스 터미날, 남부 터미날’처럼 ‘터미날’을 쓰고 있고, 도로 표지판이나 버스 정류장에는 ‘터미널’, ‘터미날’이 뒤섞여 있는 등 표기가 매우 혼란스러운데, 규정에 따라 ‘터미널’로 적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가려면 우선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 터미날’역에 가야 한다. 특히 ‘터미날’과 같은 표기는 같은 모음인 [Ə]를 단어 안에서의 위치에 따라 각각 ‘어’와 ‘아’에 대응시킴으로써,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표기를 할 수 없게 된다.
   [
Λ]는 보통 ‘아’와 ‘어’의 중간 소리로 알고 있으므로, 표기도 이 둘 사이에서 많은 혼란을 빚고 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 소리를 ‘어’에 대응시키고 있으나, 과거에는 ‘아’로 적은 적도 있기 때문에 ‘아’로 적은 표기형이 아직도 많이 눈에 띈다. 이 규정에 따라 ‘color[kΛlƏr]’는 ‘칼라’가 아니라 ‘컬러’로, ‘honey[hΛni]’는 ‘하니’가 아니라 ‘허니’로 적어야 한다. 흔히 ‘타치’로 많이 쓰는 ‘touch[tΛt]’도 ‘터치’(네트터치, 원터치, 노터치 등)로 적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