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화어의 이해

‘살밭다’, ‘어린 봄날’

 

전수태(田秀泰) / 국립국어연구원

북한에서는 대체로 ‘극본’을 ‘대본’, ‘상이군인’을 ‘영예군인’, ‘식목일’을 ‘식수절’이라 하고 ‘예쁘다’는 말보다는 ‘곱다’는 말을 즐겨 쓴다. 또, 연수’보다는 ‘강습’, ‘장애인’보다는 ‘불구자’, ‘협찬’보다는 ‘후원’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학교를 도중에 그만두게 되는 경우, 질병 등으로 자진해서 학교를 그만두면 ‘퇴학’이 되지만 처벌을 받아 못 다니면 ‘출학’이 된다.

‘대주다’는 우리가 얼른 생각하기에 물건 따위를 공급해 준다는 의미일 것 같지만 그게 아니고 ‘고해 바치다’의 뜻이다. “그가 가까이 오자 독한 술내가 코를 찔렀다. 우리 집이라면 당장 내쫓거나 아버지한테 대줄 텐데 그럴 수 없으니 기분 나쁜 대로 외면해 버리는 것으로 무시해 버렸다. ‘취하셨군요. 우준호 동무.’”(『먼 길』, 정창윤, 문예출판사, 1983, 56쪽)와 같이 쓰인다.
   ‘말밥에 오르다’는 ‘좋지 못한 이야깃거리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쓰이는 말이다. “올 봄 간도 쪽에서 폭동을 겪고 이사를 해 온 정삼이 어머니의 말이다. 이 고장에서는 함경도 사람이 드물어서 그의 말투가 늘 사람들의 말밥에 올랐지만 워낙 드살이 센 아낙이라 누가 뭐라고 해도 굽어들 줄을 몰랐다.”(『대지는 푸르다』,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81, 94쪽)
   ‘모를 박다’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특별히 힘을 기울이다’의 뜻이다. “‘이제 기사장 동무도 말했지만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에 노를 복구 건설할 수 있는가. 혁명적 제도와 질서, 혁명적 경각심을 높이겠는가…여기에 모를 박고 토의합시다.’ 태진은 장준혁의 곁에 앉아 있는 지배인을 돌아보았다.”(『새로운 항로』, 황 건, 문예출판사, 1980, 388쪽)와 같이 쓰이는 말이다.
   ‘밥탁’은 ‘벌어서 먹고 살아갈 길이나 방도’를 말한다. “유호림은 물결치는 아내의 어깨를 어루쓸며 위로하려 했으나 되지 않았다. 내일부터 당장 밥탁이 떨어질 판이니 상처보다도 무서운 것은 도리어 그쪽인 셈이었다. 밤은 괴롭게 깊어 갔다.”(『그들의 운명』, 현희균, 문예출판사, 1984, 33쪽)처럼 쓰이는 말이다.
   ‘살밭다’는 ‘(가족, 친척 관계에서) 매우 가깝다’의 의미가 있는 말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쓰인다. “부성례는 이런 때 차려야 하는 주부의 도리에 마음이 씌어졌다. 더구나 차서방으로 말하면 살밭은 친척도 없는 자기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 제일 귀한 손님인 것이다. 조용히 자리를 인 그는 막걸리 몇 사발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그들의 운명』, 현희균, 문예출판사, 1984, 28쪽) 이때 ‘조용히 자리를 인’의 ‘인’은 ‘일다’ 즉, ‘자리에서 일어서다’의 뜻이다.
   ‘어리다’는 ‘황홀하여 눈이 부시다’의 의미가 있다. “어린 봄날이 오면 길가 흙 속에서 푸른 눈 트고…”(『그리운 조국 산천』, 박유학, 문예출판사, 1985, 167쪽)와 같이 쓰인다.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다. 남북 관계가 봄눈 녹듯 풀리는 ‘어린 봄날’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