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방언과 문화]

문학 작품에 나타난 방언

이상규 /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 문학방언(Literary Dialect) 연구 현황과 흐름

  방언은 민중들의 언어이다. 민중들의 언어는 삶 속에 살아있는, 생동하는 언어라는 점에서 민중성과 변두리(지방)성을 그리고 현장성을 지니고 있다. 문학 작품에서 방언을 활용함으로써 향토적 심미적 충격이나 운율적 효과를 부여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향토적 특성, 심미성, 민족(부락)의식 등 정서적 층위를 들어내는 효과와 함께 형식적 측면에서 시어, 율격, 음운 등의 표현적 효과를 위해 이용한다. 문학 작품 특히 시나 소설 작품에서 향토색이 짙은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향토적인 인물의 개성적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서나 또는 방언은 민중성과 지방성을 그리고 현장성을 지니고 있어 문학 작품에 심미적 충격을 주는데 이용한다.
  문학 작품 특히 시나 소설 작품에서 향토색이 짙은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향토적인 인물의 개성적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서 지역 방언(regional dialect)을 많이 활용해왔다. 외국의 경우 문학 작품에 나타난 방언을 “가시방언(Eye Dialect)” 또는 “문학방언(Literary Dialect)”이라고 하여 소설, 시, 희곡 등의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나는 방언에 대한 텍스트분석을 시도하는 예는 Sumner Ives(1971)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학 작품에서 사용되는 방언이 등장 인물의 성격이나 지역적 배경과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나 원전에 대한 언어학적 비평 분야는 미개척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어 앞으로 이 방면의 연구자들의 활발한 연구가 기대되기도 한다.
  현대문학 초창기 문학방언에 대한 관심은 주로 계몽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태준은 시인이나 작가는 “언문통일”을 위해 방언을 사용하는 역기능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다. 50년대 이후 대학에서 국어학과 국문학연구는 세분화되는 과정을 겪으며,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방언에 대한 연구는 사소한 것으로 인식할 뿐이었다. 그러나 문학연구를 위해 국어학적 시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인식은 김완진(1975)에 와서 본격화되었다. 그 이후 김용직(1996)은 방언에 대한 인식을 단순히 지역적 방언이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사회계층적인 측면에서 문학에 반영되는 방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곧 지배 계층어는 주로 문어적 특징을 갖는 반면에 기층민들의 문학에는 계층방언이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김완진(1998, 2000)의 일련의 성과는 언어연구와 문학연구의 틈새를 좁혀주는 선언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문학과 어학의 연구 관점을 접목시키려는 노력들이 있어서 다행스럽다. 곧 김소월의 시에 나타난 평안방언에 대한 이기문(1998)의 “소월시의 언어에 대하여”, 김영배(1987)의 “백석 시의 방언에 대하여”, 김용직(1996)의 “방언과 한국문학 -문학 작품에 나타난 방언 문제”, 이상규(1998)의 “멋대로 고쳐진 이상화의 시”, 곽충구(1999)의 “이용악 시의 시어에 나타난 방언과 문법의식”, 최전승(1999)의 “시어와 방언, -‘기룹다’와 ‘하냥’의 방언 형태론과 의미론-”, 권인한(1999)의 “만해시의 언어에 대한 보유”, 김흥수(2000)의 “소설 속에 만난 낯선 제주방언”, 전정구(2001)의 “토속어의 활용과 관용적 표현”, 김흥수(2003)의 “혼불의 문체”, 이태영(2003)의 “방언의 특징과 역할”, 홍윤표(2003)의 “혼불 언어의 새 방향” 등의 논문과 발표문이 있다.


2. 일상어로서 방언과 문학기법으로서의 방언

  인간의 역사는 언어와 사유 사이의 관계로 환원할 수 있다. 삶의 일회성과 유한성을 소생, 회복시키려는 노력을 제의라고 한다면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려는 노력, 신의 언어는 주술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주술과 같은 시적 창조는 언어의 위반으로부터 시작된다. 말들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를 뒤흔드는 적출의 힘과 말을 원초적 상태로 복귀시키려는 중력의 힘을 함께 지닌 것이다. 따라서 시적 언어는 고전적인 과학과는 언제나 대극적인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과학의 공식은 증명은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식 자체를 파괴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라면 시적 언어는 사물의 근원을 밝혀내고 존재를 밝히는 수단이다. 따라서 시는 존재의 가장 심층에 거주한다. 시는 공동체의 생생한 언어, 신화, 꿈, 그리고 열정과 같은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성향들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는다. 민중의 언어, 그 본래적인 말을 하면서 인간은 성장해 왔다.
  한국문학사에서 지역문학이 출현한 시기와 계기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지만 문학 작품에 나타난 방언에 대해서는 방언의 문학적 효용성이라는 잣대가 필요하다. 독특한 지역적 유통의 한계를 가지고 독자적인 문학 형식과 내용을 갖춘 경우 지역문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방언을 사용했다고 해서 또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방언을 구사했다고 해서 지역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곧 문학 작품에서의 방언이 문학의 기법으로 활용되었는가 그렇지 않는가의 인식 차이라는 기준이 매우 중요하다.
  고전문학기의 서민소설과 엇시조·사설시조, 기타 잡가 타령들에 방언이 빈번하게 사용된 사정은 그 설명이 별로 어렵지 않다. 이들 양식을 읽고 즐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농·공·상에 종사하는 일반 서민들이었다. 그들이 읽고 즐길 수 있는 인간과 세계가 방언에 직결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과 달라서 조선 왕조시대에 이르기까지 지배 계층인 양반, 사대부들에게 공식적인 세계란 점잖으며 품위를 지키는 일들이었다. 그 나머지 그들은 공식용어에 속하는 중앙어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문학에서 이런 양분 형태의 언어사용 방식은 조선 왕조 말기까지 지속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고전문학기는 표준어형 언어와 방언의 병행기, 내지 대립 공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호지방에만 유포되어 있는 판소리계 소설이나, 영남 지방에만 분포되어 있는 내방가사와 같은 문학 장르를 지방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인식될 필요가 있으며, 구비전승되는 기층문학과 지배층의 기록문학이라는 장르의 대립을 구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향단이 옥에 갓다오더니 저의 아씨 야단 소래에 가삼이 우둔우둔 정신이 월렁월렁 정처업시 들어가서 가만히 살펴보니 전의 서방님이 와겻구나. 엇지 반갑던지 우루룩 들어가서
“향단이 문안이요. 대감님 문안이 엇더 하옵시며 대부인 기체 안녕하옵시며 서방님께서도 원로에 평안이 행차하시닛가.”
“오냐 고상이 엇더하냐.”
“소녀 몸은 무이하옵내다. 아씨 아씨 큰아씨. 마오 마오 그리마오. 멀고 먼 천리길에 뉘보랴고 와겨관듸. 이 괄세가 웬일이요. 애기씨가 알으시면 지리 야단이 날 것이니 너머 괄세 마옵소서.”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먹던 밥에 풋고초 저리짐채 양념너코 단간장에 냉수 가득떠서 모반 바쳐듸리면서
“더운 진지 할 동안에 시장하신듸 우선 요기하옵소서.”
어사도 반기히며
“밥아 너 본제 오래로구나.”
여러 가지를 한데다가 붓더니 수까락 댈 것 없이 손으로 뒤쳐서 한편으로 몰아치더니 맛파람에 개눈 감추덧 하난구나.1)

<완판본 춘향가>

  완판본 춘향전 가운데서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춘향의 집을 찾아간 부분이다. 이 작품에 ‘와겻관듸’, ‘너머 괄세 마옵소서’, ‘짐채’, ‘시장하신듸’와 같이 전라도 지방 방언도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통의 지역적 한계를 가졌던 점에서 경북 지역의 <내방가사>와 함께 지방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문학 장르로 향가는 당시로는 중앙문학 장르였으나 현재적 입장에서 보면 지방문학으로 지역 방언이 충분히 반영되었던 문학양식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방색이 짙은 작품에 대해서 문학적인 분석이나 비평을 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언어학적인 원전 분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근현대문학의 기점에서 적어도 정서법이 제정되어 표준어로 자리 잡기 이전과 그 이후의 상황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한 시기구분은 어렵지만 30년대를 전후하여 그 이전은 표준어 규정이 정착되기 이전 상황이어서 방언 사용의 의도성이 없었던 시기이다. 그러나 30년대 이후에는 시작품에 사용된 방언은 때로는 의도적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이상화, 김소월, 이장희, 오일도, 백기만, 이설주, 이육사와 같은 시인들은 표준어가 정착되기 이전 단계에는 의도적으로 방언을 사용한 것으로 보기는 힘든다.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방언이 활용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작가들 가운데 특히 이상화나 이육사의 시에서는 비교적 방언형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시에서 방언형을 활용한다는 의식없이 자연스럽게 작품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 비해 정지용, 유치환이나 조지훈과 그리고 박목월과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경우는 각각 사정이 다르다. 조지훈이나 유치환은 자신의 시작품에 거의 방언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박목월의 경우 초기 작품에서는 방언을 의도적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곧 방언 어휘뿐만 아니라 문법활용형까지 시어에 대입하여 향토적 정서를 의도적으로 드러내려고 하였다. 또한 최명희의 ‘혼불’은 30년대 이전의 작가군과는 달리 매우 의도적인 문학 기법으로서 방언을 활용한 경우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방언을 의도적으로 반영하지 않았던 시기의 시인들의 시어는 표준어 제정 이후로 넘어오면서 표준어로 교열하는 과정에 원시를 훼손시킨 경우가 빈번하다. 따라서 정확한 원전 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이들 방언형의 시어들을 정확하게 교열해야 하는 문제와 더불어 의도적으로 방언을 활용했던 시인들의 작품에서 방언 시어가 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문제를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개화기 이전 시기를 “표준어형과 방언의 병행기 내지는 공존기”로 개화기를 “구어체 중심의 표준어형과 방언의 병행 형태가 극복된 시기”로 시대 구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개화기 역시 지방문학에서는 계층방언 내지는 지역 방언의 사용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문학은 방언형과 표준어형의 대립, 병행 상태를 극복하게 되었다.
  일제 침략기에 들면서 현대문학 양식은 여전히 문학 작품에서 사용하는 문어가 표준화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역시 지난 시대의 낡은 어투(accent)를 버리고 근대적 감각을 지닌 말을 선호하려는 의지는 매우 뚜렷했다. 20-30년대 소설로는 김동인의 <감자>, <배따라기>이나 홍명희의 <임거정>이나 박태원의 <천변풍경> 그리고 시로는 이상화, 이육사, 김소월, 김영랑, 한용운, 백석, 이용악 등에서 방언이 반영된 문학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작품의 향토색을 가장 잘 부각시킬 수 있는 기법은 방언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30년대 이전에는 표준어라는 뚜렷한 잣대가 없었다는 점에서 “공통어와 방언의 병행하여 사용했다는 시기”였다는 규정을 하기 힘든다.
  특히 30년대 이전 시기의 작가가 쓴 작품의 원전을 현대어로 옮기는 과정에 방언의 의미해석을 잘못하여 원전의 해석을 그르치게 하는 수가 매우 많았다. 따라서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제정되기 이전 시기인 1920―30년대 작가나 시인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방언을 일괄해서 문학적 효용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든다. 개인적 습관에 의해 문학 작품에 방언형이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다가 30년대 이후 미당이나 목월을 중심으로 방언을 고도로 계획된 목적으로 문학 작품에 활용하는 전통이 생겨난 것이다. 문학 작품에서 다양한 언어의 이질성을 활용하는 것은 문학적 표현의 효용성을 높이는데 매우 유효한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문어체, 고급어, 한문투와 구어체, 비속어, 방언이나 토속어 등을 적절하게 구사함으로써 등장 인물의 성격을 첨예하게 들어내거나 또는 양반이나 상민, 천민간의 계층화를 들어내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전통이 70년대 참여문학 내지는 노동문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다시 창작 활동에서 방언의 사용이 정당화되는 전향적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특히 시와 희곡 분야에서보다 소설 분야에서 작중인물의 성격을 표출하는 기법으로 방언 구어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3. 일상의 언어로서 문학방언

  문학 작품에서 언어 특성을 밝히는 목적은 작품에 나타나는 언어적 특성을 통해 작품의 특성을 규명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30년대 이전에 표준어가 자리를 잡기 이전 시대의 많은 문학 작품에서는 방언을 일상 언어로서 인식하고 그대로 작품을 창작한 경우이다. 이처럼 일상의 언어로 문학방언에는 삶 속에 살아있는 생동하는 언어라는 점에서 민중성과 지방성을 그리고 현장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방언을 표준어와 더불어 모국어로 인식한 경우이다.
  일상어로서의 작품들이 표준어가 제정된 이후 표준어로 바꾸는 과정에 본래의 방언적 표의와 기표를 잘못 이해하는 오류를 여러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아, 가도다 가도다 쫓아 가도다./잊음 속에 있는 간도(間島)와 요동(遼東)벌로/주린 목숨 움켜쥐고 쫓아 가도다./자갈을 밥으로 햇채물을 마셔도/마구나 가졌더라면 단잠은 얽맬 것을―

<이상화의 가장 비통(悲痛)한 기욕(祈慾)>

  이상화의 <가장 비통(悲痛)한 기욕(祈慾)>이라는 시이다. 이 시에서 방언형 ‘햇채물’을 ‘海菜물’로 자칫 잘못 교열한 경우가 많다. ‘햇채’는 대구 방언에서 ‘햇추’, ‘힛추’와 같은 분화형이 있는데 ‘더러운 물’의 의미로 ‘햇채구딩이’이라면 ‘더러운 물구덩이’ 또는 ‘시궁창’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경상 방언인 ‘햇채’, ‘해채’라는 어휘를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함으로 <개벽>, <형설사>, <정음사>, <대구문협>, <미래사>에서 간행한 이상화 시집 대부분에서 ‘햇채물’을 그대로 ‘햇채물’로 교열하여 ‘海菜물’ 곧 “바다 해조류로 만든 국물”이라는 정도의 의미로 해석하여왔다. 이 ‘햇채’는 이상규(2000)에서 뜻을 밝혀 놓은 ‘수채(下水溝)’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곧 ‘햇채’란 대구 방언에서 ‘햇추’, ‘힛추’와 같은 방언분화형이 있는데 “더러운 개울 또는 시궁창물, 수채(下水溝)”라는 뜻이다. ‘해체구딩이’라면 ‘더러운 물구덩이’ 또는 ‘시궁창’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진흙을 밥으로 햇채물 곧 시궁창물을 마시더라도 마구나 가졌더라면 단잠이라도 얽맬 수 있었을 터인데”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며, 시의 이미지 전개상에도 적합하다. 2)
마음이 막다른 / 날근 집에선<單調, 백조, 조선시, 형설사>
뒤집에선<청구, 정음사> / 띳집에선<대구문협>
  ‘집에선’이라는 어휘에서 ‘’는 ‘불휘(茅根)(方藥 8)라는 기록에서 처럼 풀이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대구 방언에서 ‘띠’, ‘떼’란 ‘풀’, ‘잔디’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풀로 이은 집’을 ‘띠집’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러한 의미를 지닌 ‘집에선’을 ‘뒤집에서’(<청구>, <정음사>)로 교정한 것은 잘못이다.
벙어리입설로 / 도는 沈黙은 / 追憶의 녹긴窓을 / 죽일숨쉬며 엿보아라.<單調, 백조, 조선시, 형설사, 대구문협>
병아리<청구, 정음사, 미래사>
  ‘말을 듣지도 하지도 못하는 사람’의 뜻을 가진 대구 방언의 ‘버버리’, ‘벙어리’, ‘버부리’, ‘벌보’를 ‘병아리’로 교정한 것은 엄청난 잘못이다. ‘벙어리 입술로/떠도는 침묵은’이라는 구절을 ‘병아리 입술로/떠도는 침묵’이라는 구절로 바꾸어 놓았으니 이 어찌 가능한 일이랴.
溫室갓흔마루에누은검은괴의등은, 부드럽게도, 기름저라<가을의 風景, 백조, 조선시, 상고, 정음사, 형설사, 미래사>, 고양이<대구문협>
  ‘괴의’에 대해서『대구문협』교열본을 제외한 모든 교열본에서는 원본과 동일하게 ‘괴’로 표기하고 있다. 아마 ‘괴’의 방언형에 대한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李起哲(1982:110) 교수는 ‘괴’는 ‘개(狗)’를 잘못 표기한 결과로 이해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전혀 엉뚱한 해석이다.3) 대구 방언에서 ‘고양이’를 ‘굉이’, ‘괴이’, ‘살찡이’, ‘살찡이’ 등으로 실현되는데 이 ‘괴’는 ‘고양이’를 뜻한다. 따라서 ‘온실 같은 마루끝에 누은 검은 고양이의 등은’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모래도 내하고저움은미친짓 이라 / 남의 듯는집을 문훌지 나도모른다<先驅者의 노래, 개벽, 형설사, 문장>, 무늘지<문학사상, 정음사>/문흘지<형설사, 미래사>/무너뜨릴지<대구문협>
  ‘문훌지’도 ‘무너뜨리다(倒)’라는 뜻으로 ‘문후다’, ‘문우다’, ‘뭉궇다’와 같은 대구 방언 분화형이 있다. “우리 집 담도 여러 돌림이 믄허져시니”(朴新解, 1:10)에서 처럼 ‘믄허지다(倒)’라는 어형이 나타난다. 그러니 ‘남에 끌뜯는 집을 무너뜨릴지 나도 모른다’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무늘지’나 ‘문흘지’로 교정하는 것은 유의어인 방언분화형으로 다시 씀으로써 원래의 시의 의미를 왜곡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아 서리마즌배암가튼이목숨이나마 허지기전에 / 입김을 부러너차 핏물을듸뤄보자<오늘의 노래, 개벽, 형설사, 문장>, 들여보자<문학사상, 정음사, 미래사> / 드리워 보자<대구문협>
  ‘듸뤄보자’라는 어휘는 대구 방언에서 ‘드리우다’라는 의미로 ‘디루다’의 권유형이다. ‘디루다’라는 어휘는 경상 방언의 영향을 받은 초간본 두시언해에도 ‘드롓다(垂)’라는 어형이 실현되는데 사동형 ‘드리-+-우-+-다’와 같은 어휘구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어형이다. 따라서 ‘듸뤄보자’라는 어휘는 대구문협의 교열본과 같이 ‘드리워 보자’로 교정하는 것이 옳다. 이를 ‘들여보자’로 교정한 것은 원본의 의미를 엄청나게 바꾸는 결과가 될 것이다.
감음든논에는 청개고리의 울음이 잇서야하듯<詩人에게, 개벽, 문장사, 형설사>, 논에게는<문학사상, 정음사, 미래사, 대구문협> /논물어귀에는<필자>
  ‘논에는’이라는 어휘는 대구 방언에서 흔히 사용되는 어휘이다. 곧 ‘논에서 물을 데는 어귀’라는 의미로 ‘물끼’, ‘논끼’라는 방언형이 사용된다. 곧 ‘논에서 물을 대는 어귀’를 ‘논께’라고 한다. 곧 ‘가뭄이 든 논물어귀에는’으로 교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논에게는’으로 교정한 것은 잘 못이라고 할 수 있다.
도모르고 도업시 닷는 내혼아<앗긴들에도, 봄은오는가>
셈(한국현대시요람)<정한모, 김용직>
갓없는생각 모를꿈이 그만 하나둘 자자지려는가<病的 季節, 朝鮮文壇>
  ‘’에 대한 대구 방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로 ‘’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한국현대시요람에서 ‘셈’으로 교정해 버렸다. ‘어떠어떠한 영문’ 또는 ‘앞 뒤의 전후 사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대구 방언의 이러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셈’으로 바꾼 것은 잘못이다.
쓴눈물 긴한숨이 얼마나 쌧기에 <大邱行進曲, 별건곤, 대구문협>, 쎄기에<미래사>
  남부지역 방언에서 ‘쌧:다’라는 어휘는 ‘매우 많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4) ‘쌧기에’라는 原本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쎄기에’로 왜곡시킨 재미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곧 ‘얼마나 많기에’라는 구절이 ‘얼마나 쎄기에’로 변했으니 시의 원의가 완전히 뒤바뀐 꼴이다.
홀아비같이 헤매는 바람떼가 한배갓들 구비치네.<病的 季節, 朝鮮文壇>
  ‘갓들’은 “술을 한잔 ‘가뜰’ 따라라”의 예에서처럼 ‘가득’이라는 의미를 가진 대구 방언형이다. 그런데 李起哲(1982:187)은 ‘한배갓들’이란 말뜻을 “한 배 가득”이라고 해석해서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곧 “앞 뒤 문맥으로 봐서 갑자기 ‘배(舟)’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다. 외려 대구지방 방언에 ‘바깥’을 ‘배갓’이라 하는 것을 따라 ‘한 배갓들(한 바깥을)’ 즉 ‘온 들판을 구비치네’로 보면 어떨지?”라고 밝히고 있으나 의역에 지나지 않는다. ‘한배갓들’은 ‘한 배 가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방두살자는榮譽여! 너거든 오지말어라<訪問拒絶, 개벽, 형설사>, 방두깨<문학사상, 정음사, 대구문협, 미래사>
  위의 ‘방두’란 대구 방언에서 ‘소꼽질’, ‘소꼽놀이’라는 뜻이다. ‘방두깨미’, ‘빵갱이’ 등과 같은 방언분화형이 있는데 이를 국어사전에도 없는 ‘방두깨’로 교정한 교열본은 잘못이다.5) 따라서 대구 방언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자칫 잘못 이해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예는 적절한 각주를 달아 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화 시에서 <비를 다고>라는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반갑지도 않은 바람만 냅다 불어 /가엾게도 우리 보리가 황달증이 든 듯이 노랗다/풀을 뽑느니 이장에 손을 대 보느니 하는 것도/이제는 헛일을 하는가 싶어 맥이 풀려만 진다!   <이상화의 비를 다고>
  ‘황달증’은 얼굴이 노랗게 변하는 간질병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시집에서 모두 ‘달증’으로 교열하고 있으나 이는 모두 대구 방언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한 오류이다. ‘이장’도 농기구(農器具)를 뜻하는 대구 방언이다. 그런데 이것을 대부분의 시집에서 모두 ‘이랑’으로 교열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구 방언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 문학 작품을 전혀 다른 의미로 왜곡시킨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평북 정주 곽산 출신인 김소월의 시에는 매우 섬세한 향토적인 방언이 800여 개가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방언 문법형태의 사실적 표현, 문장에서 느낄 수 있는 화용적 기능어의 사용, 속담 및 상용구의 사용, 그리고 가락과 장단을 느낄 수 있다. 소월의 시어에 나타나는 모국어는 소위 표준어와 평북 방언을 구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상어로서 문학방언을 수용하고 있다. ‘그무리다’, ‘그무러지다’와 같은 방언은 <서울밤>, <여름의 달밤>, <소소소의 무덤> 등에 되풀이해서 썼다. 또한 ‘사무치다’는 <밤>,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오는 밤> 등의 작품에 거듭 나타난다. 이로 미루어 보면 소월의 시에는 작품마다 평균 2개 이상의 방언 내지 방언 변이형을 사용하고 있음 알 수 있다. 소월은 방언을 중앙어와 대립되는 관점에서 인식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모국어란 관점에서 작품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까 구경한/피에로의 슳업는 신세를 생각하며<가을밤>
임이여 설은 빛이/그대의 입설을 물들이나니<눈은 내리네>
  이장희의 <가을밤>에서 ‘슳업은’은 ‘서러운’의 의미로 쓰인 어휘로 추정되는데 이를 ‘실업는’으로 교열한 예도 있다. 또 <눈은 내리네>에서 ‘서러운’의 뜻으로 쓰인 ‘설은’을 ‘섧은’으로 교열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
  소월의 시를 보면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이 있다. 그것이 방언을 통해 그의 시가 얻어낸 시적 효과다. 그의 시는 단순하게 방언을 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작품의 형태, 구조가 그를 통해서 생동하게 되고 소월 시 나름의 특색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런 경우의 좋은 보기가 되는 것에 ‘산’이 있다. 이 작품은 그 화자가 ‘삼수갑산’으로 나타나는 바 궁벽한 산간에 그 자신을 놓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십오년 정분을 못닛겠네’라고 할 정도로 살뜰한 그리움을 지닌 것이다.
산새도 오리나무/우헤서 운다./산새는 왜우노, 시메산골/영넘어 갈나고 그래서 울지/눈은 나리네 와서 덥피네/오늘도 하롯길/칠팔십리/도라섯서 육십리는 가기도 햇소.<산>
  여기 방언에 해당하는 말은 ‘시메산골’이다. 실제로 이 말은 ‘두메 산골’과 함께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주 지방에서 사용된다는 것이다.6) ‘하롯길’이라는 방언형도 이 작품의 외롭고 쓸쓸한 전경을 드러내는데 매우 적적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소월의 시에서는 지역 전통적인 운율을 사용하고 있다. 소월은 대체로 두 음보를 한 행으로 하는 시를 썼다.
그대가 세상고악말하는날밤에.
순막집불도 지고 귀람이 우러라.   <귀라미>
  ‘순막집’은 길손이 쉬이 가는 주막이다. 『큰사전』에는 방언형으로 ‘숫막’이 실려 있다. 이 ‘숫막’은 본래 ‘숯막’에서 왔음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본래는 ‘참사’ 즉 역참에 있던 객사였음을 알 수 있다.
  백석의 시는 애초부터 일상적인 자신의 언어인 방언으로 주로 씌어졌다. <여운난골족>이라는 작품 나오는 ‘엄매’ ‘아배’,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역시 평북 정주 지방에서 주로 쓰는 방언이다. ‘하로’, ‘토방돌’, ‘아릇간’, ‘쌈방이’, ‘고무’, ‘매감탕’, ‘오리치’, ‘반디젓’, ‘삼춘’, ‘사춘’ 등 말들도 모두가 방언이다. 백석의 <가즈랑집>이라는 시를 보자.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산나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가즈랑집>
  ‘아그대즘퍼리’(아래쪽에 있는 진창으로 된 펄), ‘제비꼬리’(산나물 이름), ‘마타리’(마타리과의 다년초), ‘쇠조지’(산나물 이름), ‘가지취’(산나물 이름) 등 매우 일상적인 방언을 활용함으로써 모국어의 폭을 넓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에게 방언은 특히 기층민의 혼과 얼이 담긴 그릇으로 인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고어형의 해석에 따라 시의 원문이 다르게 해석될 소지가 많은 예들이 있다. <가즈랑집>에서 “나는 돌나물 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녯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의 ‘넷말’을 ‘옛날 마을의’ 준말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으나, ‘옛날 이야기’로 보아야 하며, <고방>에서 “녯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뒤에서 나는 저녁끼때에 불으는”의 ‘녯말’ 역시 ‘옛날 마을’의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원문의 띄어쓰기에 따라 “닭개즘생을 못놓는”의 구절이 뒤의 멧도야지를 수식하는 경우, 그 집으로 멧돼지와 이웃사촌들이 지나간다로 해석하게 되지만 “닭개즘생을 못놓는”의 구절이 “집”을 수식하는 경우에는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의 자주 출몰하다보니 이웃처럼 지낼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노큰마니, 오마니, 종아지몰본, 싸개동당, 갈부던, 동비탈’과 ‘동말랭이, 섭구슬, 무연한’ 등 시어의 의미해석이 난해한 예들도 많이 나타난다.   이 시기의 이용악의 시에서도 난해한 시어가 많이 나타난다.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유리창이 흐리더냐 <절라도 가시내>
  ‘불술기’는 함경도, 특히 함북 지방에서 널리 쓰였던 방언으로 ‘기차’를 뜻하는 말이다. ‘불술기’는 ‘불(火)’과 ‘술기(車)’로 이루어진 합성어로서 ‘술기’는 ‘수레’의 함경도 방언이다.
  “그날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 가고(낡은집)”에서 ‘저릎’은 ‘겨릅’, 곧 삼(麻)의 껍질을 벗겨낸 하얀 속대를 말한다. 핍쌀[稙米]을 씻을 때 나오는 뜨물을 가라앉힌 앙금에다가 겨를 섞어 반죽한 것을 겨릅대에 얇게 발라 말린 다음, 불을 붙여 밤에 등잔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겨릅등’이다. ‘마우재’는 ‘러시아 사람’을 뜻하는 중국어 ‘모자(maozi)’를 차용한 말로서 지금도 함경도에서 널리 쓰인다.
  한편 표준어가 사정되기 이전에 활동한 현진건의 소설에서는 방언뿐만 아니라 일본어, 궁중어, 북한의 문화어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7) ‘국해(시궁창의 흙), 데불다, 뒤통시, 몰, 불버하다, 삽작, 엉설궂다, 찰지다, 거진’과 같은 방언형이 매우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뛰염질, 목고개, 물얼굴, 잔등, 조방군, 탈아매다’와 같은 북쪽 지역의 방언(현재 북한의 문화어)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어쩌면 표준어 제정 이전에는 지역 방언을 초월하여 보다 폭넓은 언어사용을 했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4. 방언 시어를 의도적으로 활용한 예

  방언을 시작품에 본격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작가는 박목월이다. 특히 <청록집>에서 <산도화>, <란 기타>, <경상도의 가랑잎>에서는 비교적 많은 방언 어휘나 방언 문법적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주를 중심으로 한 향토성을 주조로 애틋한 그리움이나 한가함의 정취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어쩌면 더 시적 효과를 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목월이 시어를 방언을 선택한 의도성이 잘 드러나는 <사투리>라는 작품을 보자.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고 했다./그 무둑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오오라베 부르면/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나는 머루처럼 투명한/밤하늘을 사랑했다./그리고 오디가 샛까만/뽕나무를 사랑했다./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 같은 것을......../그런 것은/나무나 하늘이나 꽃이라기보다/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 //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약간 풀냄새가 난다./약간 이슬냄새가 난다./그리고 입안에 마르는/황토흙 타는 냄새가 난다.//
<사투리>
  서술어가 과거시제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박목월의 서울 생활 속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사투리”라는 소재로 쓴 시이다. 바로 방언을 향토적 시적 정서, 곧 그리움의 상징으로 ‘오라베’, ‘칵’ 등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여기서 만일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라는 표현에서 이중모음이 자음 아래에서 단모음화한 경상도 방언형이 ‘칵’이 아니라 ‘콱’으로 표현했다면 절묘하고 또 약간은 무식한 말투인 경상도의 맛깔을 느끼지 못하리라. 3연에서도 “사투리=풀냄새=이슬냄새=황토흙 타는 냄새”의 등식은 방언을 시어에 활용한 의도성을 적절하게 들어낸 것이다.
  목월은 경주에서 부농의 출신도 반상의 집안 출신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민중의 애절함과 그리움 같은 색조를 깔고 있음으로 해서 훨씬 울림도가 크다. 시인으로 출세하여 서울로 출향하기 이전 수리조합 말단 서기직에 있으며 막걸리잔에 흥건히 취해 경주에서 건천까지 자전거로 또는 걸으며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시화한 것이다.
/아베요 아베요/내 눈이 티눈인걸 /아베도 알지러요./등잔불도 없는 제상에/축문이 당한기요./눌러 눌러/소금에 밥이나 많이 묵고 가이소./윤사월 보릿고개/아베도 알지러요./간고등어 한손이믄/아베 소원 풀어드리련만/저승길 배고플라요/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가이소./니 정성이 엄첩다./이승 저승 다 다녀도/인정보다 귀한 것 일을락꼬,/망령도 감응하여, 되돌아가는 저승길에/니 정성 느껴느껴 세상에는 굵은 밤이슬이 온다.<만술 아비의 축문>
  <기계장터>와 더불어 향도적 서정과 기민층의 삶의 애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굵직한 남성적 톤으로 노래한 또 한편의 시 <만술 아비의 축문>에는 의도적으로 방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베요 아베요/내 눈이 티눈인걸/아베도 알지러요.”에서 경상도 속담인 “내 눈이 티눈이다.(까막눈, 곧 글자를 읽지 못하는 무식함)”를 활용하는 것부터 서술어 “알지러요, 배고플라요, 가이소, 엄첩다, 일을락꼬” 등 풍부하게 방언을 하여 머슴살이하는 만술 아비의 한과 스러움을 고즈넉이 표현해 내고 있다. 특히 ‘엄첩다’라는 시어는 “제법이다. 기대 이상이다.”로 풀이할 수 있는 방언인데 이 시어를 표준어 “제법이다”로 바꾸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아베요/아베요”는 반복을 통해 애절한 호소력을 음악적 운율 효과에 올려 훌륭하게 살려내고 있다.
  다른 방언화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방언이 시어에 매우 많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는 새로운 시어를 방언 조어법에 따라 만들기도 한다. 목월의 <박꽃>이라는 시에 “아슴아슴, 저녁답, 자근자근”과 같은 방언어휘가 있다. “흰 옷자락 아슴아슴 / 사라지는 저녁답”에서 ‘아슴아슴’은 “아슴푸리하다(기억에 희미하거나 또는 잘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함)”라는 방언형용사의 어간 일부를 떼어 만든 것이다. <귀밑 사마귀>라는 작품에서도 ‘길슴한’(길쭉한)이라는 방언형 마찬가지로 조어방식이 다른 예이다. <아가>라는 작품의 “꽃송이가 이울고.....또한 꿈은 이울고 비맞이 바람에”에서 ‘비맞이’라는 조어형은 “비 오기 전에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뜻의 앙증맞고 아름다운 새로운 조어형이다. “울밖에는 옹당 벌샘.”<부룩쇠>에서 ‘벌샘’은 “자연적으로 생긴 샘”을 뜻한다. ‘벌-’은 “제멋대로, 자연 그대로”라는 의미를 지닌 접두사이다.
  목월의 시에 나타나는 독특한 방언형에 대해 일람해 볼 필요가 있다.
“햇보리 상반밥에 팥을 두어 실컷 먹고 싶은게 원이라고”<치모>
“동아밧줄처럼 굵고 질기고 우둘두툴한 경상도 사투리를”<눌담>
“글로 머하노/도끼자루 미우는 것부터/배우는 기라”<눌담>
“어린 사슴이 난길로 벗어나”<아가>
“혼을 호려내는 은근한 말씨......하롯한 달무리.”<나그네>
“창령근처서/날이 드는데”<진주행>
“길 잃은 송아지/구름만 보며/초저녁 별만 보며/밟고 갔나베/무질레밭 약초길”<산그늘>
“상기 산그늘은 나려간다.”<산그늘>
“대를 심어 바람 막고/대를 쪄서 퉁소 뚫고”<밭을 갈아>
“모란꽃 이우는 하얀 해으름”<목단여정>
“정은 만리/해으름 천리”<해으름>
“열두 가람 여울목에/스며 우는데”<임에게>
“보얀 가리마/아 공주님”<낙랑공주>
“설핏한 반달이/기운 사창”<낙랑공주>
“마른 국화대궁이가 고누는 하늘로”<한정>
“울밖에는 옹당 벌샘.”<부룩쇠>
“등어리를 /햇볕에 끄실리고”<당인리 근처>
“ 비는 이내 개이기도 했다.”<갈밭 마을로 이사를 했다>
  위의 예에서 토박이 화자가 아닌 경우는 물론이고 토박이 화자인 경우에도 젊은 세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언 어휘들이다. ‘상반밥’<치모>은 “쌀과 보리가 반반 섞인 밥”이라는 뜻이고 ‘미우는’<눌담>은 “자루를 박는”이라는 뜻이며 ‘상기’<산그늘>는 “늘”이라는 뜻이며 ‘쪄서’<밭을 갈아>는 ‘자르다’라는 뜻의 방언형이다. ‘해으름’<목단여정>, <해으름>은 “해질 무렵의 해거름”의 뜻이며 ‘고누는’<한정>은 “겨누는”의 뜻이며 ‘보얀’<낙랑공주>은 ‘하얀’의 뜻이며 ‘이내’<갈밭 마을로 이사를 했다>는 ‘곧 바로’라는 뜻의 부사어이다. ‘드는데’<진주행>에서 ‘드는데’는 주어가 ‘날씨’ 때는 “날씨가 점점 맑아진다.”는 뜻이다.
  특히 경상도의 토속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우둘두툴한 경상도 사투리”<눌담>이나 “설핏한 반달이/기운 사창”<낙랑공주>에서 ‘우둘두툴한’이나 ‘설핏한’이라는 표현은 표준어로는 도저히 이 경상도의 토속적인 분위기와 맛깔을 표현하기 힘든다. ‘우둘두툴한’은 성조가 있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경상도 말씨를 상징하며, ‘설핏한’이란 구름에 가리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모습을 나타내는 방언이다.
  ‘난길로’<아가>는 “어려운 길” 또는 “길이 나 있는”의 뜻으로 해석하기가 쉬운데 그렇지 않다. 경상도 방언에서 “바람이 나서 집 밖으로 나가다.”는 뜻으로 ‘난질간다’ 또는 “홰양질 가다”는 방언이 있는데 이 ‘난질가다’의 ‘난-’과 ‘-길’이 결합된 ‘난질’의 역구개음화 형태로 파악해야 한다. 그러니까 “어린 사슴이 제 멋대로 집을 벗어나다.”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하롯한’<나그네>, “무질레밭 약초길”<산그늘>과 같이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예들도 있다.
  또한 고어형이 그대로 잔존해 있는 시어형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람’<임에게>은 고대국어의 ‘(강)’의 예나 <아가> ‘이울고’ <구황룡>, ‘이운다’<폐원> ‘이우는데’의 예에서 역시 고대국어 ‘이울다’ 곧 “시들다, 익다”라는 경주 방언에 그대로 방언형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끄실리고’<당인리 근처>는 ‘그을리다’라는 뜻인데 이는 경북 방언의 음운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어휘이다. 곧 경주 방언은 고대국어의 중심지역이다. 고대국어의 ‘’의 흔적으로 “그리다 > 그슬리다 > 그실리다”와 같이 고대국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예이기도 하다. 또한 “소내기가 비롯하는 야반의/깊은 침묵을”<야반음> 예에서 움라우트 현상이 적용된 “소내기/소나기”나 “목단꽃 오무는 저녁답”<산그늘>에서 원순모음화가 적용된 “오무는/오므는”과 같은 음운현상이 적용된 예들도 있다.
  목월의 시에서는 방언 어휘뿐만 아니라 방언 문법형태가 반영된 예도 많이 보인다. 강조를 나타내는 첨사인 ‘-야’에 대응되는 ‘-사’의 형태가 “냇사 애달픔 꿈꾸는 사람/...../어느날에사”<임에게>에서나 “고사리 순에사 산짐승 내음새.”<운복령>에서 나타나고 있다. 용언의 어간과 어미 사이에서 전부모음화가 실현되지 않는 중부 방언과 달리 “모로 돌아앉인/은은한 아미”<낙랑공주>에서 “앉은”이 전부모음화 현상에 적용되어 ‘앉인’으로 실현됨을 증명해 주는 예이다.
  경상도 방언적 특징을 잘 나태내 주는 종결형이 “보이소 아는 양반 아인기요/보이소 웃마을 이생원 앙인기요/서로 불러 길을 가며 쉬며 그 마지막 주막에서/걸걸한 막걸리 잔을 나눌 때”<적막한 식욕> “또 왜 왔노. 일 안하고 이놈./할아버지가 호통을 치면/-아재요/놀아가믄 일도 해야지 앙는기요.”<치모>에서처럼 잘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서술어의 활용형에서도 방언적 특징을 들어내 줌으로써 매우 적확한 향토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해 내기도 한다.
  경상도 방언이 반영된 김동리, <바위>에서 “고맙습니더. 천지신명 우리 신주님, 인저 이 불쌍한 년의 소원을 들어 주실라캄니꺼, 고맙습니더. 고맙습니더.”에서 어미 ‘-니더’, ‘-니더’, ‘-니꺼’와 같은 경북 방언의 종결어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 ‘아까봐서’, ‘애러분’와 같은 예에서 ㅂ불규칙 용언을 확인할 수 있다든지 ‘어디 씨이나’와 같은 예에서 ‘쓰-이다 > 씨이다’와 같은 변화들을 확인할 수 있다. 어휘면에서도 김원일, <불의 제전>에서 “오히려 큰짐 들었다고 생각해라.”에서 ‘큰짐’이나 이문열의 <변경>에서 “그건 글코-야야. 차라리 내일 아침 첫차로 나가제. 이십리 길도 마딘데. 걸어보지도 않은 니가 어예 걷는다꼬…”에서 ‘마디다’라는 의미해석은 다른 지역 방언화자라면 방언사전이 없이는 해석해 내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가) “이애야, 이 왕솔은 토정(토정) 할아버지께 짚고 가시던 지팽이를 꽂아놓셨는디 이냥 자란 게란다. 그쩍에 그 할아버지 말씜은, 요 지팽이 앞으루 철마가 지 나가거들랑 우리 한산 이씨 자손들은 이 고을에서 뜨야 허리라구 허셨다는 게여......그 말씜을 새겨들어 진작 타관살이를 했더라면 요로큼 모진 시상은 안 만났을지두 모르는 것을......”<관촌수필>(13)
나) “그래 너는 몇살이나 되었다더냐?”<관촌수필>(19)
“지 에미가 그러는디 제년이 작년까장은 제우(겨우)여섯 살이었대유. 그런디 시방은 잘 몰르겄슈”<관촌수필>(19)
“늬가 늬 나이를 모른다 허느냐?”<관촌수필>(19)
다) “예, 위떤 이는 하나 늘어서 일곱 살이라구 허던디 또 누구는 하나 먹었응께 다섯 살이라구 허거던유.”<관촌수필>(20)
라) “그렇다구 밭이다 모이(묘)를 써유? 할아버지는 돌아가는 게 좋신모냥이네유” <관촌수필>(22)
  이문구의 <관촌수필>의 일부이다. 충청 방언을 가장 많이 활용한 작가로 알려져 있듯이 이 소설을 분석하면 충청 방언의 특징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생생한 방언을 구사하고 있다. 김윤식·최동호(1998)에서 우리나라 소설어의 어휘적 계보를 방언지역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돋움체 부분은 필자가 추가한 부분임)
함경도 : 안수길, 이정호, 김남일
강원도 : 김유정, 유재용, 김종성, 최용운
경상도 : 김정한, 박경리, 오영수, 김원일, 김주영, 이문열(하근찬, 문형렬, 박일문)
충청도 : 이기영, 홍명히, 이문구, 방연웅
전라도 : 채만식, 송기숙, 조정래, 문순태, 최명희, 임철우(정강우, 한창훈)
경기도 : 염상섭, 박태원, 박완서
황해도 : 김남선, 박태준
평안도 : 선우휘, 김광식
  이와 같이 효과적인 방언을 문학 작품에 배치함으로써 단순한 향토성의 구현이라든지 지방 소재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시의 본질을 형성하는 시작의 전략적 기법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한편 문학 감상적 입장에서는 정확한 문학 작품의 해독과 올바른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는 상호 필연성과 상보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까 문학 작품에 대한 국어학적 연구가 국어학으로부터 그리고 국어학적 연구가 문학 연구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국어학이 과학적 형식주의에 발목이 잡혀 형이상학적 사유의 울타리인 국문학 분야와도 오랜 시간동안 결별하고 계속, 그 울타리 너머에서 서성거리고 있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국문학 작품에 대한 해독의 정밀화가 국어학적 내지 국문학적 문제를 제기하여 주는 반면, 국어학적인 의문이, 그리고 국문학적인 논의가 국문학 작품의 해독을 반성케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독이 완성된 다음에 국어학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든지, 국어학적인 정리가 끝난 다음에 국문학 작품으로서의 해석해야 한다는 논의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곧 국문학 작품의 올바른 이해와 해독을 위해 국어학적 연구와 상호 상보적인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영역의 침범이라는 불문율 때문에 연구의 공동화 현상이 나타난 게 사실이다.
  국문학 작품에 대한 국어학적 연구가 국어학도의 계명을 거스르거나 국문학 연구자들에게 주제 넘는 일이라고 지적 받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국문학 작품 텍스트에 대한 정밀한 작품의 문학 세계를 보다 바람직하게 이해하는 전제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