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한자 교육

金敏洙 /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 남북 한자 교육의 차이
    북한의 한자 교육에 대한 실상은 '87년 2월 13일, 귀순자 김만철(金萬鐵)의 막내 아들 당시 국민학교 5학년에 해당하는 북한 고등중학교 중등반 1학년 12세 광호(光戶) 군의 입을 통한 보도로 실감나게 알려졌다. 김 군은 서울 강남구 구정국민학교 5학년생을 만나 남북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자로도 이름을 쓸 수 있다'며, '빛 光, 집 戶'를 써 보였고, 남측 학생들은 모르는 글자를 능숙하게 쓰는 모습을 목격하고 일제히 탄성을 질러 신기해 했다고 한다. 동족으로서 참으로 쇼킹한 소식이었다.
    한자 사용의 폐지를 힘써 자랑 삼는 북한에서 한자 교육을 그토록 충실히 실시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북한에서는 실제로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시작하여 대학까지 3천 자를 교육하고 있다. 위의 김군은 전통적인 새김 '戶 지게 호'라고 하지 않고, 북한의 한자 3천자표에 규정한 대로 '집 호'라고 읽은 점에 시선이 쏠린다. 10세부터 7년 간 3천 자를 교육하는데, 그 교과서에 음훈만 아니라 쓰기, 부수, 육서(六書), 자원(字源) 등에 걸쳐 가르치게 되어 있으니, 철저한 교육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북측의 한자 교육은 남측과 비교하여 층하가 너무 심하다. 남측에서는 1972년 8월에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를 제정하여 중·고등학교 6년 간에 가르치게 되었으나, 실제로는 교육 시행의 파행으로 그 교수 자체가 실종되어 버린 실정이다. 이런 남북의 차이가 통일 후 기초 능력의 격차로 작용할 것을 걱정하며, 북측의 실태를 더욱 자세히 알아볼 필요를 느낀다. 제한된 자료이나, 그 한자 교육의 목적, 교육의 방법과 실태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추적되도록 힘써 보려고 한다.

2. 한자 교육의 목적
    1962년 4월 「조선 로동당의 지도 밑에 개화 발달한 우리 민족어」에 의하면, 해방 후부터 1960년대 초까지 성과적으로 실시한 조치는 조선어 교육과 문맹 퇴치, 한자 사용의 폐지, 조선어의 규범화 등이라고 했다. 1973년 9월 「조선로동당정책사 언어부문」에서도 민족어 교육, 문맹 퇴치, 한자 사용 폐지, 어휘 정리, 말과 글의 규범화 등을 당 정책의 빛나는 실현이라고 선전했다. '60년대 그 정책에는 일정한 한자 교육, 어학혁명을 외치게 될 어휘 정리 등 새로운 부분을 부각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 새로운 부분은 실상 1964년 김일성의 1.3교시와 1966년 5.14교시에서 거듭 지시한 내용이다. 1.3교시에서는 남측에서 한자를 쓰고 있는 이상 남측의 간행물을 읽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 한자를 배우고 써야 한다고 하여 짐짓 그 교육의 부수적 목적을 제시하고, 5.14교시에서는 남조선 출판물에 지난날의 문헌을 추가해 비로소 본격적인 목적을 천명했다. 또한, 대학에 고전문학과를 설치하여 한문 번역가를 양성하라고도 지시하고 있다. 이런 교시의 부분을 원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 한자 교육에 관한 교시
    한자문제는 반드시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와 관련시켜 생각하여야 합니다. ...지금 남조선사람들이 우리 글자와 함께 한자를 계속 쓰고있는 이상 우리가 한자를 완전히 버릴수는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한자를 완전히 버리게 되면 우리는 남조선에서 나오는 신문도 잡지도 읽을수 없게 될것입니다. 그러니 일정한 기간 우리는 한자를 배워야 하며 그것을 써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우리 신문에 한자를 쓰자는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출판물은 우리 글로 써야 합니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조선말을 잘못 쓰는것으로 보아 학교들에서 조선말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김일성, 「조선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몇가지 문제」. 『언어학자들과 하신 담화』 1964년 1월 3일).

옛날책에 대한 번역은 한문지식이 있는 사람을 시켜야 합니다. 앞으로 김대에 고전문학과와 같은것을 따로 내오고 똑똑한 사람들을 몇십명씩 받아서 한문을 가르쳐주며 또 문학도 가르쳐주도록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한자말을 될수록 쓰지 말도록 하면서도 학생들에게 필요한 한자는 대주고 그것을 쓰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남조선출판물 지난날의 문헌들에 한자가 적지 않게 있는것만큼 사람들이 그것을 읽을수 있게 하려면 한자를 어느정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쳐준다고 하여 어떤 형식으로든지 교과서에 한자를 넣어서는 안됩니다. ...교과서들에 한자를 넣으면 남조선 모양으로 됩니다(「김일성. 조선어의 민족적특성을 옳게 살려나갈데 대하여」. 『언어학자들과 한 담화』 1966년 5월 14일).

위 「당정책사」는 이런 교시를 서술한 것인데, 그 교시의 실시에 관해서는 중학교 1학년에 한자와 영어 1시간씩 1968년에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월남 귀순자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1969년 발행 중학교용 교과서 「한문」 5권으로 보아 이 시기에 시행된 것은 분명하다. 이 사실을 두고 대개 한자 교육의 부활이라고 크게 특필해 왔으나, 실상은 이와 상반되는 서술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겠다. 과학원 소속 정지동은 다음과 같이 이 교시 이전 1953년부터 이미 교육하고 있었다고 천명했다.

(2) 1953년부터 시작한 한자 교육
    조선 정부는 공화국 학생들로 하여금 능히 조선의 고대 서적을 읽을 줄 알며 어휘의 어원과 어근의 뜻을 똑똑히 리해하며 나아가서 중국의 문화를 학습하는 데 편익을 주기 위하여 1953년부터 초급중학교 이상의 학생들에게 한문 과목을 학습시키기로 결정하였다.
    한'자 학습은 초중에서 600자, 고중에서 1200자로 결정하였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1953년부터 시작한 어떤 반은 지금까지 이미 2400자를 배웠다.(「정지동. 조선어 문'자 개혁」(1). 『조선 어문』 1956년 6호, 1956. 12월 81~89)

그러면 1953년부터 한자 교육을 하고 있는데, 1963년 교시에서 왜 새삼 지시했을까? 그것은 필경 한자 교육의 가부 논란이 있고, 교시는 이에 대한 최종 단안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론이 없게 민감한 남북문제와 관련시켜 못박았을 것이다. 그런데 1953년에 나열한 그 목적은 1) 고문헌의 해독, 2) 국어 어휘의 어원과 어근 이해, 3) 중국 문화 학습의 편익 등이다. 북한의 과정안이란 것이 없어 역시 알지 못하나, 그렇다고 그 교육 목적이 50년대와 60년대가 다르다고 하기는 어렵다.
    요컨대, 북한의 한자 교육은 초급중학교부터 가르치던 것을 1963년 교시로 재확인하여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목적에 관하여 1.3교시에서는 남측을 빙자한 부수적 이유를 들고서 대학 출신의 어문 지식 저하를 질책했으나, 5.14교시에서는 '지난날의 문헌을 읽기 위하여'라는 실질적 목적을 추가로 천명했다. 따라서, 그사이 한글 전용을 지나치게 강조한 정책 아래에서 개념이 혼미해진 어휘의 어원과 어근을 이해시켜 그 후유증을 치료함이 실제의 목적이었다고 투시해야 할 것이다.

3. 한자 교육의 실태
    위에서 1953년에 시작했다는 북한의 교육용 한자는 국민학교 5학년에 해당하는 초급중학교 1학년부터 3년간 600자, 고급중학교 3년간 1200자, 계 1800자를 가르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남측에서는 중학교까지 1787자를 범위로 하고 있어 거의 비슷한 상태였다. 그런데 1970년에 북측에서는 보통교육용 2천자, 대학용 1천자를 새로 사정하여 국한문 혼용체로 교육을 강화했고, 남측에서는 중·고등학교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범위로 1800자를 새로이 제정하고 교과서에 병기하여 가르치는 정도에 그쳤다.

(3) 한자로 인한 어휘의 몰이해
    교과서에서는 한'자 어휘가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학생들의 어휘 소유 정도와 언어 생활을 분석해 보면 확실히 한'자 어휘들을 잘못 알고 있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김동호. 「어휘 및 문장 지도에서 얻은 경험」. 『인민 교육』 1964년 7호 14.)

회답(回答)이라고 해야 할 것을 해답(≪解答≫―문자의 답을 준다는 뜻)으로... 개전(改悛)이라고 해야 할 것을 개진(≪改進≫―고쳐 나아간다는 뜻)으로 ... 정통(精通)이라고 써야 할 것을 전통(≪全通≫―완전하게 알고 있다)으로... 개찰(改札) 또는 개표(改票)라고 하는데 이를 객찰(改를 客으로 잘못 씀)... 식사(食事)를 한다고 하는 것을 식사를 먹는다로(앞뒤가 어울리지 않게 씀)... 무진장(無盡藏)을 상대적으로 물건이 많다고 할 때까지 잘못 쓰는 사실(례:경기장에 사람들이 무진장으로 모여 있다)... 혼동(混同)이라고 하는데 혼돈(≪混沌≫―머리가 뒤숭숭하여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으로... 이와 같은 학생들의 오용예들은 한'자 지식의 결여가 조선어 어휘까지 어지럽게 하고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한철준. 「한문 실력 제고를 위한 몇 가지 방도」. 『인민 교육』 1965년 12호 29.)

북한에서 한자 교육을 강화하기 전 한자 문맹의 폐단이 심각한 실상을 현장에서 보고한 글이다. 한자의 무식으로 빚어진 어휘 개념의 혼란, 이것이 위에서 언급한 한자 교육의 진짜 목적이 아니었겠는가? 그래서 엄한 교시를 빌어 강화했지만, 5.14교시 2년만인 1969년에 편찬한 중학교용 「한문」은 주당 2시간, 다음과 같이 보고된 종전의 교수법을 활용하여 철저를 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쓰기와 획순, 자원과 육서에 의한 분해, 한자를 외어 쓰기 등은 학습의 효과를 주어서 돋보인다.

(4) 1965년에 보고된 한자 교수법
    ㄱ. 읽는 련습과 내용 연구(한'자가 많이 있는 문장을 칠판에 쓴다. 읽게 하고 내용에 대한 문답을 한다), ㄴ. 배운 한'자 쓰는 련습(한글을 한'자로 고치게... 필순과 서법, 유사한 한'자와의 비교 등), ㄷ. 단어 만들기, ㄹ. 짧은 글 짓기, ㅁ. 반대어 짓기, ㅂ. 부수 글'자 찾기(心一性, 怒, 意...), ㅅ. 동음이의어의 대비(住一注一柱...), ㅈ. 숙제 제시(새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를 두 번 쓰고 음훈 달기, 제시된 한'자로 단어 만들기)(리효섭. 「한문 복습 수업에서 유의할 점」. 『인민 교육』 1965년 1호 17.)
(5) 1969년 「한문」에 반영된 교수법
    집필위원회. 「한문」 중학교 2학년용 (1969. 6. 평양 : 교육도서출판사) 106면 제二十八과 어린 革命투사 끝 부분. 아래 예 참조.)
한자의 쓰기
【과 제】
1. 다음 뜻의 漢字를 쓰고 단어를 만드시오.
      열개, 칼도, 이를도, 고할고, 누구혹, 새조.
2. 다음 部首의 漢字를 아는대로 쓰시오.
      彳, 刀(刂), 十, 竹.
3. 다음 漢字語의 뜻을 말하시오.
      自力更生, 自主自立, 不死鳥.

다음으로 1972년 「국한문독본」은 대학서 3000자를 교육하기 위한 교과서로서 역시 국한문 혼용체를 대상으로 실질적인 연습문제를 두어 철저를 기하고 있다. 특히 그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한자 교육의 구체적인 내용의 김일성 교시가 있고, 부록에도 중요한 자료가 실려 있다. 머리말의 교시는 '초중에서 기술학교까지'의 보통교육을 지적한 부분으로 보아 5.14교시 직후 1967년 4월 이전의 학제를 언급한 것으로 보이며, 보통교육용 2000자, 대학용 1000자도 이때에 사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6) 한자 교육의 구체적 교시
    학교에서는 한문을 배워주는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지금 한문기초가 약합니다. 국가에서 국한문독본을 만들어서 기술학교까지 약 2000자정도 배워주어야 하겠습니다. 한문을 잘 배우도록 연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너무 많이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3000자 정도면 충분합니다. 초중에서 기술학교까지 2000자정도, 대학에서 1000자정도, 이렇게 하여 3000자정도 배우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문습자를 배워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되 이전과 같이 붓이 아니라 만년필로 쓰도록 하는것이 좋겠습니다.(편집위원회. 『국한문독본』 [1972. 3. 20. 평양 : 외국문교육도서출판사] 머리말. 1970. 6.)     북한에서 1970년에 사정한 교육용 한자는 중학교용 1500자, 기술학교용 500자로 보통교육용 2000자이며, 대학에서는 이 2000자의 복습과 대학용 1000자를 새로 더 배우게 되었다. 이에 앞선 1971년 「한문」 사범대학 력사과용 교과서에서 한자, 획과 점, 자형, 필순, 부수, 획수, 온자와 반자, 통용자, 홑자와 겹자, 글자의 합성, 접두사와 접미사, 글자의 생략, 육서, 한자음, 어순 등 한자의 전문 지식을 34과에 나누어 학습시키고 있는 것은 문헌의 한문에 쉽게 접근케 하기 위한 기획으로 생각된다.
(7) 정책에 대한 김정일의 계승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는 민족문제에 대한 해답을 수령님의 로작에서 찾아야 합니다. 수령님의 로작들을 깊이 학습하면 민족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질수 있습니다.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는 수령님의 위대성을 심장깊이 체득한데서 나오는 숭고한 사상감정입니다.(최정후.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언어리론 연구』 [1990. 5. 25. 평양:사회과학출판사], 27, 100.)
    요컨대, 우리의 한자 교육은 우선 학령(學齡)상으로 북측의 5학년과 남측의 7학년으로 차이가 나고, 그 교육의 방법으로는 한자 교육의 범위나 학습의 심도(深度) 등에서 남북의 차이가 현격하다고 할 것이다. 위 수령을 계승한 북한의 그 정책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1953년 이후 반 세기에 장차 해가 갈수록 더욱 가중될 남북의 격차는 남북의 인적 교류나 통일 후 지식력의 우열로 비추어질지 혹은 헛된 지역 감정으로 민족적 분열을 초래케 할지 지극히 염려되는 부분이다.

4. 한자 교육의 전망과 대책
    한자 교육을 부활한 1953년은 교육사의 관점에서 특별한 뜻을 갖고 있다. 북한의 피교육자로는 1945년 해방 후에 입학하여 한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세대가 고급중학교 2학년생으로서, 졸업을 2년 앞둔 해가 바로 1953년이었다. 즉 그 2년 간 한자 학습을 않으면 다 한자 문맹으로 배출되게 될 상태였기 때문에, 당시의 한자 교육은 한자의 무식을 면하게 하기 위하여 매우 절실한 시기였다. 그 긴박한 시기를 포착하여 중학교 6년 간에 1800자의 한자를 가르친 것은 적합한 일이었다.
    남측에서는 그러한 세대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1951년에 상용 한자 1천 자를 제정하고, 국민학교 787자, 중학교 6년 간에 1천 자를 괄호 속에 병기하여 교육했었다. 그래서 당시 교육 한자의 범위도 남북이 거의 같았고, 그 교육의 목적도 위에 지적된 3개 항이 거의 비슷했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1969년에 북한에서 한자 교육을 강화한 후에는 현격한 격차가 있어서 대조적이다. 국어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고, 다음 한자를 익히자는 식의 형식적인 겉치레가 남측의 한자 교육이기 때문이다.

(8) 남측 한자 능력의 조사
    최근 보도된 「대학졸업생의 한자능력 조사」에서... 한자 1천의 訓(훈)과 音(음)을 알고 5백자는 쓸 수 있는 정도를 측정하는 한자 4급시험에 명색이 대졸자들이 평균 30점도 안 되고 합격점인 70점 이상이 단 2명 뿐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더 한심한 것은 자신의 대학과 전공학과를 한자로 제대로 쓴 사람이 46%와 35%에 불과했고, 심지어 5% 정도는 자신의 이름도 정확하게 못 썼으며, 부모 형제의 이름을 못 쓰는 사람이....(『朝鮮日報』 1997. 9. 10. 3면 社說, 제목 「漢字文盲」)

「전국 1백4개 전문대 졸업생 3백48명이 지난 7일 한국한자능력검정회 주최 한자 4급시험에서 받은 평균점수가 1백점 만점에 16.6점이었다」고 밝혔다.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정확하게 쓰지 못하는 졸업생이 6.6%,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졸업생이 54.3%와 69.3%를 각각 차지했다.(『朝鮮日報』 1998. 3. 17. 37면.)

(9) 북측 중학생의 한자 능력
    金萬鐵씨의 장녀 光玉양(15) 2남 明日(14) 막내 光戶군(12) 등 3남매는 서울생활 5일째인 12일 오전 서울 江南區의 ...구정국교 등을 각각 방문... 光戶군(중학교 1학년 우리의 국교 5년과정) 북한에서는 기하 대수 등 산수와 혁명활동 등 한문 자연 음악을 배웠다.
    ...한편 光戶군은 『한자로도 이름을 쓸 수 있다』며 빛光, 집戶를 써보며 그동안 「光互」로 알려진 자신의 실제이름은 「光戶」임을 알려주었다. ※한자이름이 잘못 보도됐다고 정정해 주었다.(『東亞日報』 1997. 2. 13. 10면.)

남측에서는 1972년에 기초한자 중학교용 9백자, 고등학교용 9백자, 계 1800자를 제정하여 교육해 오고는 있으나, 그 결과는 위 (8)과 같이 부실하다 못해 아주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 제기된 그 교육용 1800자의 재조정, 초등학교에서의 조기 교육, 국한문 혼용체에 의한 실질적 교육 등의 개선안은 문제되지도 못했다. 더구나 여론을 선도해야 할 언론에서는 그 찬반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항상 흥미 위주로 남의 나라 일처럼 보도하여 자가의 세 확장에 이용하는 우를 범했다.

(10) 閔寬植, 漢字 교육에 對한 告白
    어려움 속에 겨우 싹을 틔웠던 漢字교육은 또 다시 푸대접을 받으며 고난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
    유감스럽게도 漢字는 분명 우리 글임을 밝혀두지 않을 수 없다. ... 따라서 한글은 과학적이고 창의적이기는 하나 漢字와 어울릴 때 비로소 더 맑은 빛을 발하는 문자가 된다고 한다.
    北韓은 오히려 우리보다 더 많은 한자 3천자를 대학교에 이르는 전학교 과정에서 배운다. 그런 北韓이었기에 우리보다. 먼저 「朝鮮王朝實錄」을 편찬(번역의 오자)하는 저력을 보였다. ... <前 문교부장관>(『朝鮮日報』 1996. 4. 19 5면 時論.)

백년대계를 논의하는 마당에 강 건너 불 구경을 하듯 아예 남의 일같이 언론 엘리트에 의하여 노리개로 치부되고 어정대며 허송하기를 30년. 전직 장관이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제 1972년 이후 배출된 40대~50대 사회 중견이 다 한자 문맹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자를 사용해야 하느냐고 물어도, 한자를 쓰자고 해도 몰라서 손 들고 거부할 것이다. 로마자화한 베트남과 같이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서 벌어진 남북의 격차는 기어코 풀어야 할 큰 장애라고 생각된다.

(11) 한글로 의미 혼돈한 예
    선단식 재벌 차입경영 '쐐기 문서화'(「東亞日報」 1998. 12. 17(木). 31면) ※船團式.
    경주는 내일 東亞마라톤의 도시/제70회 동아마라톤/경주코스(위 1999. 3. 20(土). 11면) ※慶州? 競走?
    시간-날짜 우물쭈물/"치매 의심을"/일중독자-술꾼 등 걸릴확률 커(위 19면) ※치매(癡呆), 일중독자?
    旧조폭에 주인 失明/新조폭에 마담 失明/강남 나이트클럽(「朝鮮日報」 1999. 3. 23(火). 31면) ※조폭
    생리대로 쓰러져 생리대로 우뚝/90년초 선두서 3류로 전략/올초 '위스퍼' 누르고 1위 탈환(위 1999. 5. 14(金). 12면)
     ※生理? 生理帶?
    "수천만원 '의상 뇌물'/長官 부인들이 요구"(위 1999. 5. 26(水). 1면) ※衣裳.

요컨대, 당면한 과제는 한자 교육에 대한 남북의 격차가 확연히 드러난 만큼, 형식적인 1800자의 교육마저 등한시하는 파행을 시급히 깨닫고 정상화할 일이다. 그 목표는 한자와 한문 교육의 실종을 되찾고, 기대할 차세대에서나 이른바 한맹(漢盲)을 미리부터 치유하자는 것이다. 그 정상화는 표의문자인 한자를 표음문자인 한글로 적어서 한자를 몰라 뜻을 모른 채 사용하는 혼돈, 위 (11)을 교정하는 한글 전용의 보안책이기도 하다. 다행히 현 정부가 이 점에 유의하고 있어, 개선책이 기대되고 있다.(1999. 5. 26.)

참 고 문 헌
정지동 1956. 12. 「조선어 문'자 개혁」(1). 『조선 어문』 1956년 6호 81~89. (2) 동 1957년 1호(1957.2.) 89~96.
과학원 언어 문학 연구소 1962. 4. 『조선 로동당의 지도 밑에 개화 발달한 우리 민족어』 평양 : 과학원 출판사.
김일성 1963. 1. 「조선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몇가지 문제」. 『문화어학습』 1968년 2호 1~7.
김동호 1964. 7. 「어휘 및 문장 지도에서 얻은 경험」. 『인민 교육』 1964년 7호 14.
리효섭 1965. 1. 「한문 복습 수업에서 유의할 점」. 『인민 교육』 1965년 1호 17.
한철준 1965. 12. 「한문 실력 제고를 위한 몇 가지 방도」. 『인민 교육』 1965년 12호 29.
김일성 1966. 5. 「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 나갈데 대하여」. 『문화어학습』 1968년 3호 1~9.
집필위원회 1969. 6. 『한문』 중학교 제1~5학년용 5권. 평양 : 교육도서출판사.
「한문」(림시교재) 사범대학 력사과용 1971. 1. 평양 : 교육도서출판사.
편집위원회 1972. 3. 『국한문독본』 초판 평양 : 외국문교육도서출판사.
『조선로동당정책사 언어부문』 1973. 9. 평양 : 사회과학출판사.
南廣祐 1989. 3. 「北韓의 漢字敎育」. 『語文硏究』 61 (1989. 3), 211~236.
최정후 1990. 5.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언어리론 연구』 평양 : 사회과학출판사.
金敏洙 편 1991. 10. 『북한의 조선어 연구사』 4권. 서울 : 도서출판 녹진.

※ 부록 : 북한 교육용 3천자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