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외래어 표기법】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비판 분석

김세중 / 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I. 서 론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비판이 적지 않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비판은 외래어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 외래어 표기법을 외국어 표기법으로 오해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대로 외국어를 발음했더니 외국인에게 의사가 안 통하더라면서 외래어 표기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식당에 가서 “커피!”라고 종업원에게 아무리 소리를 쳐도 종업원이 이해를 못하더니 “코-휘!”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알아 듣더라는 이야기가 그런 예이다. 따라서 ‘커피’ 대신에 ‘코-휘’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은 국어 단어의 표기를 정한 규범이지 외국어 단어의 발음 표시를 위한 것이 아니다. 간혹 ‘외국어 표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외국어 표기법을 개정하라는 주장은 성립할 수조차 없다. 외래어를 외국어로 보는 데서 온 잘못이다.
  이 글에서는 최근 몇 해 동안 민간에서 제기된 외래어 표기법 개정 주장을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그러한 주장에 숨은 오해와 잘못을 바로잡아 보고자 한다.
  

II.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비판 사례

  1994년 1월 서울 송파구 잠실2동에 사는 노초진 씨가 문화체육부장관 앞으로 외래어 표기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는 민원을 냈다. 노초진 씨의 민원은 외래어 표기법 중에서 일본어에서 온 외래어의 표기법에 관한 것이었다. 노초진 씨는 외래어 표기법 제2장 표5 일본어의 가나와 한글 대조표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수정안을 제시하였다. 노초진 씨는 문화체육부에서 외래어 표기법 개정 계획이 없음을 밝히자 행정심판을 청구하였고 기각당하자 법원에 행정소송을 청구하였으나 대법원에서 기각당하였다.
  노초진 씨가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불만을 품은 이유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일본 지명, 인명의 표기가 일본어 발음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외래어 표기법 제2장 표5 일본어의 가나와 한글 대조표는 국어 생활 속에 쓰이는 일본의 지명, 인명을 규칙적으로 적기 위한 것이었지 일본어 생활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노초진 씨는 외래어 표기법의 이러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외래어 표기법이 한국 사람이 일본어를 말할 때에 일본어 발음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규정한 규범으로 간주하였다. 다음 예를 보자.
  
あなたは 運轉か できますが
(1) 일본어 표기법 발음1) 아나타와 운텐가 데키마스카
(2) 정확한 발음(개정안2)발음) 아나다와 운뗑가" 데"끼마스까
  
  일본어 문장에 대해 (1)은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한 결과이고 이것은 ‘거짓말소리’를 전달하기 때문에 (2)와 같이 자신의 안대로 표기해야 정확한 발음이 된다는 주장이다. 우선 외래어 표기법 안에 들어 있는 ‘일본어의 가나와 한글 대조표’는 일본어 문장을 적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그는 간과하였다.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들어온 국어 단어를 말하는 것이고 외래어 표기법은 외래어를 적기 위한 규범이다. 다시 말해 일본어 문장이나 일본어 단어를 적기 위한 규범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あなたは 運轉かできますが”라는 일본어 문장을 ‘아나타와 운텐가 데키마스카’로 발음하라고 외래어 표기법이 규정한 바가 없기 때문에 노 씨의 주장은 성립할 수조차 없다.
  노초진 씨가 이런 혼동을 겪게 된 것은 일본의 지명, 인명이 갖는 특수한 성격 때문이다. 즉 지명, 인명과 같은 고유 명사는 국어에도 쓰이고 일본어에도 쓰이는데 국어에서 쓰이는 어형을 일본어로 대화할 때에도 그대로 쓸 수 있고 두 언어는 아주 유사하다는 생각이 이런 혼동을 불러일으켰다고 본다. 즉 일본의 지명, 인명을 국어에 쓰이는 어형대로 일본어 회화에서도 그대로 쓸 수 있고 써야 한다는 생각이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지명, 인명을 국어에서 쓰는 어형대로 일본어 회화에서 써서 의사가 통한다면 이상적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이상일 뿐 두 언어의 음운 체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소박한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
  노 씨는 전 일본 총리 羽田孜를 ‘하타쓰토무’로 적는 것은 옳지 못하며 ‘하다쯔도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씨에 따르면 ‘하다쯔도무’는 일본어 발음과 꼭 같은데 ‘하타쓰토무’는 일본어 발음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다쯔도무’는 일본어 발음 그대로인데 ‘하타쓰토무’는 일본어 발음과 다르다는 주장 자체가 언어학적으로는 뒷받침되지 않은 것이다. 羽田孜의 일본어 발음은 음성학적으로 ‘하다쯔도무’와도 거리가 있고 ‘하타쓰토무’와도 거리가 있다. 그리고 ‘하다쯔도무’가 일본어의 羽田孜의 발음에 더 가까운지 ‘하타쓰토무’가 더 가까운지를 놓고 치열하게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느 쪽도 일본어 발음과 꼭 같지 않으며 어느 쪽도 일본어 발음과 다를 바에는 그 중 어느 한쪽으로 통일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느 쪽이 더 가까우냐에 집착하는 것은 헛된 노력일 뿐이라는 점이다.
  1995년 3월 미국 뉴욕 주에 거주하는 조셉 이 씨가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바르게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외래어 표기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외래어 표기법은 영어를 제대로 하는 데 많은 방해 요소가 되어 있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부터 먼저 개정하지 않으면 영어를 10년 공부하거나 초등학교부터 영어 교육을 시작해도, 아니 평생 영어를 공부해도 외국인과 대화하는 데 문제가 있으며 외래어 표기법을 현지 영어 발음대로 개정하면 영어 교육 문제의 애로 사항을 50% 이상은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하였다.
  조셉 이 씨는 편지에서 “현재 적용하고 있는 외국어 표기법은 다른 단어는 몰라도 본인이 예로 든 말들은 현지 발음과 비슷하지도 않아서 현지인들과 대화할 때 의사가 소통되지 않아서 그야말로 창피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라고 하였다. 조셉 이 씨는 외래어 표기법이 현실에 맞게 시정하는 데 문제가 있다면 외래어 표기법은 한국에서만 적용하고 해외에서는 현지 발음에 맞는 표기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셉 이 씨가 한글 표기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 예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 조셉 이 씨의 표기
Queens 퀸즈 쿠인즈
Flushing 플라싱 후라싱
Hudson 허드슨 헛츤

  주목되는 것은 조셉 이 씨가 외국어 표기법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Hudson을 국어에서 ‘허드슨’으로 표기하도록 한 것은 외래어 표기법이지 외국어 표기법이 아닌데도 외국어 표기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국어 표기법이지 영어 표기법이 아니란 점을 이 씨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현지인들과 대화할 때 의사가 소통되지 않아서 창피를 당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정확히 배우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외래어 표기법을 탓하고 있다. 물론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대로 영어 발음을 했을 때 의사 소통이 된다면 새로 외국어의 발음을 배우려는 노력도 안 해도 되니 편리한 점이 있겠으나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안이한 자세라고 아니할 수 없다. 영어 발음을 익히려는 노력을 할 생각은 않고 외래어 표기법이 영어 교육에 방해가 된다고 하는 것은 언어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되어 있지 않은 데서 나온 것이다.
  1995년 7월 미국 테네시대학의 전광우 교수는 ‘바이올린’을 ‘바이올린’으로 쓰지 말고 ‘이올린’으로 쓰자고 주장하였다. 전광우 씨는 v 외에 f, z, ʒ에 대해서도 한글을 변형한 새로운 부호를 만들어 쓰자고 하였다. 전광우 씨의 이런 주장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1938년에 나온 이종극의 “모던조선외래어사전”에는 원어에 f, v가 든 외래어를 적을 때에 ᅋ, ᅄ을 쓰고 있고 1948년에 제정된 문교부의 외래어 표기법에서도 똑같이 ᅋ, 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외래어에 대해서 국어 표기에 쓰이지 않는 글자를 쓰는 것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외래어는 국어 단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국어에 쓰지 않는 글자를 국어 단어를 표기할 때 쓰는 것은 모순된다. ‘바이올린’도 국어 단어이고 국어 단어라면 국어에 있는 소리로 발음할 수밖에 없고 국어에서 쓰는 글자로 적을 수밖에 없다.
  재미 컴퓨터 전문가인 박양춘 씨는 월간조선 1996년 8월호의 ‘한국인의 영어 실력 퇴보시키는 외래어 표기법 바꿔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외래어 표기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박 씨는 그의 저서 ‘한글을 세계 문자로 만들자’에도 같은 주장을 하였다. 박양춘 씨가 외래어 표기법이 잘못되었다면서 예로 든 일화를 옮겨 본다.
  “모 출판사 회장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스튜어-디스’가 와서 무엇을 마시겠느냐 물어서 ‘커피’라고 대답하였다. 이 ‘커피’는 회장이 영어 교실에서 배운 것이 아니고 평소 외래어 표기법에 의한 것을 보고 들으면서 익힌 것이다. ‘스튜어-디스’는 이 ‘커피’를 못 알아듣고 두 번이나 다시 물어왔다. 무안하다 못해 창피해진 그는 그만 큰소리로 ‘커-피’라고 소리질렀다. 그제서야 그녀는 ‘아아! 코-휘’ 하면서 커피를 한 잔 갖다 주더라는 것이다. 소리 지를 때, ‘커-피’ 하고 ‘커’ 소리가 길어진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중략) 커피 한 잔도 못 얻어 먹을 뻔했던 회장님의 분노와 개탄은 대단했다. “내가 대학까지 10년의 영어공부를 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노력한 결과가 그래 ‘코-휘’ 한 잔 못 얻어 먹게 되었단 말이냐! 뭔가 단단히 잘못됐어.” 회장이 기가 막힌다. 아마도 필자를 포함한 한국 사람 모두가 외래어 표기법식 영어 때문에 이러한 경험과 개탄을 되풀이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박양춘 씨의 글을 굳이 인용한 것은 박양춘 씨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예를 들면서 외래어 표기법이 틀렸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예 ‘외래어 표기법식 영어’라는 표현까지 만들어 내어 쓰고 있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식 영어’는 영어 교육에서도 권장하는 바가 아니고 외래어 표기법을 만들 때 의도한 바도 아니다. 박양춘 씨는 더욱이 “우리의 서투른 영어 발음은 외래어 표기법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외래어 표기법은 국어 단어로서 외래어를 적기 위한 방편이지 외국어 발음의 길잡이는 아니다.
  전 외무부 차관 윤석헌 씨는 1995년 4월 27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글에서 바야흐로 전개되는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한글의 현대화가 시급하다고 말하면서ヽ, ㆁ, ㅿ, ㅸ, ᅗ 등을 살려 쓰자고 주장하였다. 윤석헌 씨는 이제 초등학교 학생들이 영어를 배울 때에 영어의 발음을 원어 그대로 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우리 한글에 그런 발음을 정확하게 표시하는 글자가 없다고 하여 우리 글자대로 발음하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윤 씨의 글에서 일관된 것은 외국어 발음을 정확히 잘 해야 하고 외국어 발음을 잘 나타내기 위해서 한글을 현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씨의 주장은 국어 생활보다는 다분히 외국어 교육을 염두에 둔 듯이 보이는데 외국어의 발음을 한글이나 한글에 몇 글자를 추가하여 가르치는 방법은 정통적인 방법이 아니다. 설령 외국어 발음 교육에 한글을 개조해서 할 것이냐는 ‘외국어 교육’이라는 특수 전문 분야의 문제이므로 일간 신문의 ‘시론(時論)’에서 거론할 주제로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교통 문제의 전문가인 신부용 씨는 1996년 10월 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글에서 한글을 더욱 발전시켜 명실상부한 세계의 문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예로 영어의 feeling이나 file은 외래어 표기법에 의해 ‘필링’이나 ‘파일’로 적어야만 하는데 이 법이 없었던들 ‘휠링’이나 ‘화일’로 표기하여 능히 외국인들과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나아가 좀 더 창의력을 발휘하여 훈민정음의 순경음을 되찾아 씀으로써 f뿐만 아니라 v 발음을 각각 ᅗ, ㅸ로 표기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을 할 때 늘 잊지 않아야 할 것은 표현의 정확성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영어의 feeling이나 file을 ‘필링’이나 ‘파일’로 적으라는 규범이 아니다. 영어의 feeling이나 file에서 온 외래어를 ‘필링’이나 ‘파일’로 적으라는 것이다. ‘영어의 feeling, file’과 ‘영어의 feeling, file에서 온 외래어’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영어의 feeling, file’은 영어 단어이고, ‘영어의 feeling, file에서 온 외래어’는 국어 단어이기 때문이다. 영어의 feeling, file은 한글로 굳이 적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영어 feeling에서 온 외래어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과연 국어에 영어 feeling에서 온 외래어가 있느냐는 물론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필링’이든 ‘휠링’이든 그런 국어 단어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사람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외국인과 영어로 의사 소통을 할 때에 국어 외래어 발음을 그대로 하려는 태도는 박양춘 씨의 경우와 같은데 국어와 외국어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재미 영어학자인 조화유 씨는 1996년 9월 12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글에서 Bob Dole의 표기는 ‘바압 도올’로 해야 정확한데 그렇게 쓰는 신문은 없다면서 그 이유는 짐작컨대 우리 나라의 잘못된 외국어 표기법 때문인 듯하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한글은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를 원음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훌륭한 한글에 맞추어 외국어 발음을 원음에 가깝게 쓰도록 노력하자고 제안하였다.
  조 씨의 글에서도 용어는 정확히 사용되지 않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외국어 표기법은 없고 외래어 표기법만이 있을 뿐인데 우리 나라의 잘못된 외국어 표기법 때문에 외국 인명이 원음에 가깝게 표기되지 않고 있다고 말하였다. 만일 ‘바압 도올’로 표기한다면 아마 ‘핸드백’은 ‘핸드배액’으로 표기해야 할 것이고 ‘보트’는 ‘보오트’로 표기해야 할 것이다. ‘핸드백’과 ‘보트’는 ‘핸드배액’, ‘보오트’ 아닌 ‘핸드백’, ‘보트’로 표기한다면 원어의 동일한 소리를 단어에 따라 달리 표기하게 되는데 그것은 일정한 기준 없이 단어 하나하나마다 따로 표기를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된다.
  조 씨는 1996년 6월 6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글에서는 McDonald's는 ‘맥다아날즈’라고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해서,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명백히 세계화에 역행하는 현행 외국어 표기법은 없애고 현지 발음 그대로 한글 표기를 하도록 신문 등 언론매체와 출판계가 먼저 앞장서 나가기를 촉구한다.”고 말하였다. 존재하지도 않는 외국어 표기법을 없애자고 한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한글로 현지 발음 그대로 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영어학자답지 않은 발언이다. 더욱이 조 씨는 외국어 표기법(외래어 표기법을 지칭한 듯)을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없애야 한다고 공언하였는데 이러한 공언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토론을 통해 이루어낸 결과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로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까지 살펴본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비판론은 한결같이 왜 원음과 보다 가깝게 적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편 이들의 배경을 보면 언어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아니고 다른 분야에 종사하면서 언어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외래어 표기법을 비판하는 정반대의 목소리가 있는데 왜 외래어를 표기하는 데 원음과 가깝게 하려고 애를 쓰는가 하는 소리다. 이런 주장을 펴는 대표적인 학자로 성균관대 유만근 교수를 들 수 있다.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정통 음성학을 전공한 학자가 오히려 외래어 표기를 할 때에 원음과 가깝게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점이다.
  유만근 교수는 1994년 6월 1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글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지명, 인명을 중국 한자음, 일본 한자음에 가깝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 강력히 비판하였다. 즉 ‘이등박문’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고 ‘이토 히로부미’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만일 일본의 지명, 인명을 우리 한자음대로 표기한다면 沖繩은 ‘오키나와’가 아닌 ‘충승’이 되어야 하고 札幌은 ‘삿포로’가 아닌 ‘찰황’이어야 한다. ‘오키나와’를 버리고 ‘충승’으로, ‘삿포로’를 버리고 ‘찰황’으로 말하자는 것은 다분히 이상론이라 하겠다. 이미 ‘오키나와’와 ‘삿포로’로 한글로 표기함으로써 일본어 沖繩, 札幌 의 발음과는 약간의 거리가 생겼으며 국어에 동화된 것이므로 일부러 ‘충승’, ‘찰황’으로까지 원음과 아주 달라지게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III. 비판에 대한 비판

  위에서 살펴 본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비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이 있다. 우선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래어는 국어 단어이고 외국어는 말 그대로 외국어인데 외래어를 외국어와 동일시한다. 외래어를 외국어와 동일시하다 보니 외래어를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고 주장하게 되고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대로 외국어 발음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국어에서 ‘커피’라고 하면 영어를 하면서도 ‘커피’라고 발음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영어를 하면서 ‘커피’라고 했더니 외국인이 못 알아들었으므로 따라서 국어 외래어인 ‘커피’도 ‘코휘’로 하거나 심지어 새 글자를 써서 ‘코’, ‘코ᅗㅣ’ 따위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어 ‘커피’와 영어 coffee는 서로 다른 언어에 속하는단어라는 인식이 이들에게는 없다. 이들은 외래어 표기법을 외국어의 발음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외래어 표기법은 국어 단어의 표기법이다.
  이들은 또한 한글의 우수성을 한결같이 강조한다. 그래서 한글로는 거의 모든 외국어의 발음을 나타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재 쓰는 한글을 가지고 여러 외국어의 온갖 소리를 적을 수 있다는 것은 그릇된 지식에서 나온 오해와 착각일 뿐이다. 비슷하게 나타낼 수는 있는데 비슷하게 나타낼 수 있기는 다른 문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현재 쓰는 한글에다 국어에 없는 외국어의 소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새로운 부호를 도입한다면 얼마나 많은 부호를 도입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한글 아닌 다른 문자도 새 부호를 도입한다면 얼마든지 자국어에 없는 외국어의 소리를 나타낼 수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외래어 표기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개인적인 배경을 보면 대체로 연령층이 50대 이상이고 외국에 오래 거주하였거나 직업상 외국어를 오래 사용하였거나 공부한 사람들이다. 다만 외국어를 학문적으로 공부한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선 외국어 발음의 표기법으로 외래어 표기법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오해이므로 이러한 인식은 분명히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외국어 교육을 할 때에 한글로 표기한 것을 발음하게 하는 방법은 정통적인 방법이 아니다. 외국어의 발음 교육은 외국어의 음소의 음가 하나하나를 따로 가르쳐야 한다. 그것은 글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물리적인 소리를 통해서 가르쳐야 한다. 물리적인 소리를 반복해서 들려 주고 따라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물리적인 소리를 글자로 나타낼 필요는 있는데 국제 음성 기호로 가르치거나 해당 언어의 문자로 가르치면 된다. 이 때에도 한글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정밀 음성 전사를 위해서는 24 자모의 한글에다 복잡한 부가적 기호를 만들어야 한다.
  한글이 외국어의 발음을 잘 나타낼 수 없는 중요한 다른 이유는 외국어가 가지는 운소적 특징을 한글로는 옮길 수 없다는 점이다. 영어의 hotel[houtél]은 둘째 음절에 강한 악센트가 놓여 있다. 그러나 영어 hotel을 ‘호텔’로 만일 옮겼다고 치면 ‘호텔’이라는 표기에는 악센트 표시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첫 음절에 악센트를 얹을 수도 있고 둘째 음절에 악센트를 얹을 수도 있고 두 음절 다 같은 정도의 강세를 유지한 채 발음할 수도 있다. 영어 escalator[éskəleitɚ]는 첫 음절에 제1강세가 놓인다. 그리고 네 음절이다. 그러나 ‘에스컬레이터’는 여섯 음절일 뿐 아니라 첫 음절에 악센트가 놓이는지 알 수가 없다. ‘에스컬레이터’라고 한글로 표기해 놓고 영어처럼 네 음절로 발음할 도리도 없을 뿐 아니라 별도로 발음 표시를 하지 않는 한 첫 음절인 ‘에’에 제일 강한 악센트를 줘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리고 외국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외래어 표기법대로 발음을 해서 의사가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뿐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외래어 표기법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더욱 없다. 외국어의 발음은 외국어의 발음을 따로 배우려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비슷한 한글로만 말하고 국어에 없는 새로운 소리는 배우고 익히기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편안한 것만 추구하는, 매우 게으른 자세이다. 요컨대 외국 사람과 대화하면서 외래어 표기법대로 발음을 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제까지 외래어 표기법을 외국어의 발음 표기를 위한 방법으로 이해하는 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외래어는 국어이므로 외래어 표기법은 국어 표기법이다. ‘커피’, ‘호텔’, ‘택시’ 등과 같은 외래어도 국어이지만 ‘모스크바’, ‘워싱턴’, ‘오사카’, ‘테레사’, ‘하시모토’ 따위의 지명, 인명도 외래어이다. 즉 고유 명사도 국어 단어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국어 단어로서의 외래어의 표기를 통일하기 위한 규범이다.
  외래어를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주장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한글에 없는 새로운 기호를 도입함으로써 원음을 표시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음에 보다 가까운 다른 소리로 대응시키자는 것이다. 한글에 없는 새로운 기호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대개 f, v에 집중되어 있다. f, v를 ᅗ, ㅸ 또는 ᅋ, ᅄ으로 적자는 것이다. 그러나 외래어에 대해서만 ᅗ, ㅸ 또는 ᅋ, ᅄ을 쓰자는 것은 수용할 수가 없다. 우선 왜 f, v에 대해서만 새 글자를 들여 쓰고 다른 외국어의 소리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다. f, v에 대해서 ᅗ, ㅸ 또는 ᅋ, ᅄ을 쓴다면 그것 외의 다른 소리에 대해서도 새로운 부호를 도입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글자를 새로 만들어서 써야 할지 모른다. 영어뿐 아니라 다른 언어에서 온 외래어를 적을 때에도 같은 문제에 부딪힌다. 그러기 때문에 단 한 글자라도 새로운 글자를 도입할 수는 없다.
  혹자는 f도 ‘ㅍ’, p도 ‘ㅍ’으로 적으면 원어에서 구별되는 단어가 국어에서는 같아져 동음이의어가 되고 만다는 점을 들어 f를 ‘후’로 적거나 ᅗ나 ᅋ로 적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pile, file이 영어에서는 구별되는 단어인데 둘 다 ‘파일’로 적으면 뜻이 구별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f를 ‘후’로 적는다고 동음이의어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fight에서 온 말은 ‘화이트’가 되는데 white에서 온 말 ‘화이트’와 동음어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원어의 음소의 수와 국어의 음소의 수가 다르다면 동음어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동음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새 부호를 만들지 않는 한 동음어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보다 가까운 다른 소리로 표기를 변경하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file에서 온 말을 현재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파일’로 적게 되어 있는데 ‘화일’로 하자는 주장은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f를 ‘후’로 적으면 file에 대해서만 그렇게 할 수 없고 f 소리를 가진 외래어는 규칙적으로 ‘후’로 대응시켜야 하는데 sofa, coffee에서 온 외래어는 ‘소화’, ‘커휘’가 될 것이고 golf, scarf에서 온 외래어는 ‘골후’, ‘스카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소화’, ‘커휘’, ‘골후’, ‘스카후’는 원음에 전혀 가깝지가 않다. 또 ʌ는 ‘어’인데 ‘아’가 가깝다고 해서 ‘아’로 바꾸면 mud, pulp는 ‘마드’, ‘팔프’가 될 것인데 ‘머드’, ‘펄프’보다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어느 쪽이 더 가까운지를 잴 수 있는 척도가 없다는 것이다. ‘브러시’가 brush에 더 가까운지, ‘브러쉬’가 더 가까운지에 대해 무엇으로 판정을 할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서는 주장만 무성할 뿐 어느 쪽이 더 가까운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척도가 없다. 따라서 답을 가릴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어느 쪽이 옳은지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무의미한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어의 ツ가 ‘쓰’에 더 가까운지 ‘쯔’에 더 가까운지를 놓고도 말이 많다. ン이 ‘ㄴ’에 가까운지 ‘ㅇ’에 가까운지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과연 누가 무슨 기준으로 더 가깝다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일본어 ツ와 국어 ‘쓰’나 ‘쯔’ 사이의 거리와 ン과 국어 ‘ㄴ’과 ‘ㅇ’ 사이의 거리는 측량할 객관적인 방법이 없다. 영어의 ʌ가 국어의 ‘어’와 더 가까운지, ‘아’와 더 가까운지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쪽이든 영어의 ʌ와는 다르며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으로 통일하는 일이지 어느 쪽이 ʌ에 더 가까운지를 놓고 끝없이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는 ʌ를 ‘어’에 대응시키고 있는데 ʌ는 ‘어’도 아니고 ‘아’도 아니다. 만일 현행 표기법과 달리 ʌ를 ‘아’에 대응시킨다면 ʌ는 ‘어’에 대응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그런 주장을 받아들여 ʌ를 ‘어’에 대응시키기로 표기법을 바꾸면 이번에는 다시 ‘아’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요컨대 ʌ는 ‘어’도 아니고 ‘아’도 아니기 때문에 외래어의 어형을 정할 때 정해진 어느 한쪽으로 통일해서 표기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느 쪽이 더 가까운지를 따지는 것은 시간과 노력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의 영어 발음이 나쁜 것을 외래어 표기법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원인을 잘못 파악한 데서 나온 것이다. 대부분의 외래어 표기법 비판론자들이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영어 발음을 잘 할 것이냐를 고민하고 있다. 그것은 외래어 표기법을 개정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영어 발음이 나쁜 것을 외래어 표기법 탓으로 미룬다. 과연 온 국민이 영어 발음을 잘 해야 하는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글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결국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영어 발음을 토박이 화자들의 발음과 가깝게,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인데 외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배우자는 목표 자체야 탓할 수는 없겠지만 그 방법으로써 외래어 표기법을 잘 다듬거나 새로운 글자를 도입해서 쓰자고 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한글은 세계 여러 언어의 발음을 적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 국어의 소리를 적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흥미있는 것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외국어의 발음을 잘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외국어의 발음에 가깝게 표기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글은 신문이나 잡지에 매우 크게 취급된다는 사실이다. 외래어도 국어 단어인데 다만 외국어에서 들어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어에 쓰이지 않는 소리를 적도록 새 글자를 들여 써야 한다면 우리 나라 신문에서 ‘쏘에 앉아 커를 마시며 비이올린 협주곡을 듣는다.’는 식의 표기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실패로 끝난 것이 경험적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에 새삼 거론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편집자가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되어 있다면 이런 주장을 언론 매체에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이런 주장을 실어 준다는 것은 많은 독자들에게 그런 주장이 정당한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 주게 마련이다. 공익성을 내세우는 신문이나 방송은 진실에 기초한 주장, 대다수 국민들을 편리하게 하는 주장을 전달해야 한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큰 지면을 차지하는 것은 대단히 딱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신문이나 방송은 그 공공성, 공익성을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의 주장이 학문적으로는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충분히 검증한 다음에 그 주장을 게재해는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하겠다. 앞으로도 우리의 옛 글자를 살려 써서라도 외국어의 발음과 가깝게 외래어를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글이 투고될 가능성은 있다. 우선 초·중·고교에서 외래어는 국어이기 때문에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충분히 가르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외국어와 가깝게 적기 위해 새 글자를 들여 쓰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겠고 설령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그런 주장이 신문에 지면을 차지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겠다.
  

IV. 결론

  외래어 표기법은 말 그대로 외래어의 표기법이다. 외래어는 국어의 일부이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은 국어 표기법이지 외국어 표기법이 아니다. 따라서 외국어 표기법을 고치라는 주장은 주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외국어 표기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나 일본어의 표기는 영어의 경우는 영어 철자법, 일본어의 경우는 한자와 가나 문자로 하고 있고 그 발음을 나타내는 방법은 영어의 경우는 국제음성기호로 표기되는 것이 보통이고, 일본어의 경우는 가나가 곧 발음 기호이다. 따라서 영어나 일본어의 발음을 한글로 표기해야 할 이유가 없다. 외국어를 가르칠 때에 외국어의 발음은 음소 하나하나에 대해 그 음가를 소리를 통해 가르쳐야 하고 소리를 적는 방법은 한글이어야 할 까닭이 없다. 한글에 기대어 외국어 발음을 가르치는 것은 외국어 발음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부득이한 경우 한국어의 발음과 비교해서 가르칠 수는 있으되 외국어의 발음 자체를 한글로 가르치려는 노력은 피해야 한다.
  영어 coffee, model, radio 따위에서 온 외래어는 ‘커피, 모델, 라디오’이다. 국어 생활에서는 ‘커피, 모델, 라디오’라 말하되 영어를 말하면서 coffee, model, radio를 말할 때에는 ‘커피, 모델, 라디오’와 같은 발음을 해서는 안 된다. ‘커피, 모델, 라디오’와 같은 발음을 해도 외국인이 알아들으면 상관없겠지만 못 알아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과 영어로 말할 때에는 영어 coffee[k:fi], model[mdl], radio[réidiou]의 발음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개인에 따라 정확한 영어 발음에 얼마나 가깝게 발음하는지 다를 것이다. 이 문제는 개인의 노력, 능력의 문제일 뿐이고 외래어 표기법과는 무관하다. 또 모든 사람이 영어를 하면서 영어 발음과 똑같이 coffee[k:fi], model[mdl], radio[réidiou]를 발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 외국인과 의사 소통이 될 정도로만 발음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다만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분명치는 않다.
  한글이 우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어의 발음을 정확히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글이 우수함은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를 발음할 때의 발음 기관의 모습을 따서 만들었다는 점, 관련 있는 소리끼리 글자의 모양도 관련성을 맺고 있다는 점 등을 가리키는 것이지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말소리를 다 적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외래어 표기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제1장 제1항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자모만으로 적는다.’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외국어가 외국어 발음 그대로 들어오지 않고 국어에 들어오면서 국어의 소리로 바뀌고 만다는 것을 명시한 조항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와 국어 사이의 타협이다. 원어인 외국어의 발음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다 보면 새 글자를 만들지 않을 수 없고 국어의 특성을 강조하다 보면 원어와 거리가 멀어진다. 심지어 일본 지명 沖繩, 札幌은 ‘오키나와’, ‘삿포로’가 아닌 ‘충승’, ‘찰황’으로까지 적어야 하게 된다. 외래어 표기는 어느 양극단으로 치우칠 수는 없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원지음과 국어의 특성의 양극단 사이에서 절충과 조화를 이룬 타협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두음 법칙도 외래어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것만 보아도 외래어는 국어 어휘 중에서 약간은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한자어와 고유어에는 쓰이지 않는 음절이 외래어 표기에 적지 않게 쓰인다. 한자어와 고유어에 쓰이지 않는 음절을 외래어 표기에 쓴다는 점도 원어 발음을 고려해야 하는 외래어의 특별한 지위를 보여 준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외래어 표기를 위해서 새로운 기호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은 것은 외래어도 역시 국어의 일반적인 특성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제1장 제1항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자모만으로 적는다.’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외국어가 외국어 발음 그대로 들어오지 않고 국어에 들어오면서 국어의 소리로 바뀌고 만다는 것을 명시한 조항이다. 


참 고 문 헌

박양춘(1995), 한글을 세계문자로 만들자, 서울:지식산업사.
이상억(1994), 국어의 표기 4법 논의, 서울:서울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