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법과 나의 의견
1. 이끄는 말
꾸준한 국어 정화 운동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외래어의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사실 외래어는 우리가 외국어에서 우리말 속으로 들여와 사용하는 낱말들로, 공시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말의 일부인 것이다. 국어 정화 운동은 모든 외래어를 배격하자는 운동이 아니라,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우리 일상 언어 생활에 불필요한 외래어를 적합한 우리말로 바꾸어 사용하자는 운동이다.2. 외래어 표기의 필요성과 원칙
2.1. 표기법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도 공유할 수 있다. 언어의 일차적 표현 형식은 말소리이다. 말소리는 음운이라는 의미를 구별하는 기능을 하는 최소 단위가 서로 어우러져서 구성된다. 그러나 말소리는 원칙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1) 이 말소리의 한계성을 인간은 글자를 통해서 극복하였다. 글자를 통해서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의 생각도 읽을 수 있고, 또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의견도 전해 들을 수 있다.개념 | → | 개념단위 | → | 글자 |
말소리 | → | 음소 | → | 글자 |
유형화 | 단순화 | |||
도식 1: 단순화 및 유형화의 과정으로서의 언어와 표기 |
길가 [길까] | 식물 [싱물] | 낯, 낫, 낮 [낟] |
2.2. 외래어 표기법의 필요성
현대 언어 생활에서 외래어 사용은 거의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되었다. 그것은 활발한 외국과의 문화교류뿐만 아니라, 정보 교환의 신속화에도 그 이유가 있다.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새로운 용어들을 즉시 순수한 우리말로 옮기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일단 수용된 외국의 낱말도 필요에 따라서는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순 우리말로 대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4) 그러나 상당수의 외래어는 그 지시적 의미 때문이라기 보다는 연상적, 또는 내포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으며, 또 원래 뜻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로 전용되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5) 따라서 외래어의 사용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말 어휘 내용을 풍부하게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수용된 외래어가 잘 통용되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발음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외래어가 우리말 속에 널리 퍼지게 되면, 그 발음은 비교적 우리말의 음운 체계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물론 외래어 사용자의 해당 외국어에 대한 지식의 정도가 원래 발음과의 차이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발음은 우리말에서도 어느 정도의 개인적인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낯선 말소리의 표기는 사람마다 그 청각 인식에 따라서 다를 수 있으므로 통일적인 표기를 위해서는 이를 규정해야 한다. 이 규정에 가장 우선적인 기준은 그 표기법이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에게 편리하고, 수긍이 가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외래어 표기는 우리말의 음운 및 글자 체계로 소화되어야 한다. 외래어 표기가 우리말의 음운 및 표기 체계에 따라서 이뤄져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1) | 외래어는 외국어의 낱말이 아니고, 외국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낱말이다. |
2) | 우리말은 우리 나라 사람 모두가 쉽고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
3) | 언어기호는 자의적 성격을 가지므로 반드시 외래어의 원음을 그대로 표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4) | 표기는 항상 발음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발음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
2.3.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할 때는 우선 그 표기법이 우리 언어 생활에 미치는 의미를 생각해 보고, 그에 따르는 개별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선 표기법은 우리말 사용자 모두를 위한 것이며, 우리말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다. 이런 관점에서 외래어 표기 원칙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압축해 볼 수 있다.영. setback, chipmunk. |
독. Vater, verarbeiten, läuten. |
영. pile 파일 : file 파일 | 독. Werk 베르크 : Berg 베르크 |
tobacco 담배 | white shirts 와이셔츠 |
3. 현행 외래어 표기법
문화체육부가 1995년 3월 16일 고시한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는 아래와 같은 ‘표기의 기본 원칙’이 제시되어 있다(국립국어연구원 1995:117).제1항 |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자모만으로 적는다. |
제2항 | 외래어의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 |
제3항 |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 |
제4장 |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제5장 |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 |
1) | 외래어의 1음운10)을 우리말의 한 개 글자로 적는다. |
2) | 외래어의 1음운은 우리말의 한 가지 기호로만 적는다. |
/p/ → ㅍ |
/b/ → ㅂ |
…… |
/p/ → 프 (영. stamp 스탬프) |
/t/ → 치 (영. switch 스위치) |
…… |
/i/ → 이 (영. ink 잉크, hint 힌트) |
/e/ → 에 (영. episode 에피소드, helm 헬름) |
/t/11) → |
ㅌ (영. time 타임) (모음 앞에서) |
ㅅ (영. cat 캣) (짧은 모음 다음에서) | |
트 (영. apt 앱트) (자음 다음의 어말에서) |
ㄷ: d, ð | 외: φ, œ |
ㄹ: l, r | 에: e, ɛ |
ㅂ: b, v | 아: a, ɑ |
ㅅ: s, Ɵ | 오: o, ɔ |
ㅈ: z, ʒ, dz, ʤ, | 어: ʌ, ə |
ㅊ: ts, ʧ | |
ㅍ: p, f | |
ㅎ: h, ç, x |
영. bet [bet] 벳 | 영. bed [bed] 베드 |
영. dock [dɔk] 독 | 영. dog [dɔg] 도그 |
영. part [paːt] 파트 | 영. make [meik] 메이크 |
영. sheriff [ʃerif] 셰리프 | 영. shank [ʃæŋk] 섕크 |
영. mirage [miraːʒ] 미라지 | 영. vision [viʒən] 비전 |
영. slide [slaid] 슬라이드 | 영. film [film] 필름 |
영. Hamlet [hæmlit] 햄릿 | 영. Hanley [henli] 헨리 |
햄릿 [햄닏] | 핸리 [헨니] |
영. team [tiːm] 팀 | 영. route [ruːt] 루트 |
영. boat [bout] 보트 | 영. tower [tauə] 타워 |
영. vision [viʒən] 비전 (← 비젼) |
영. headlight [hedlait] 헤드라이트 (헤들라이트) |
독. Vaterland [faːtɒlant] 파터란드 (파털란트) |
독. Rostock [rɔstɔk] 로스토크 | 독. Stadt [ʃtat] 슈타트 |
영. dock [dɔk] 독 | 독. Dock [dɔk] 도크 |
영. net [net] 넷 | 독. nett [nɛt] 네트 |
영. flash [flæʃ] 플래시 | 독. Mensch [mɛnʃ] 멘슈 |
독. Schüler [ʃyːlɒ] 쉴러 | 독. Schiller [ʃilɒ] 실러 |
3.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제안
앞에서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원칙들을 제시하였고, 현행 표기법을 분석하였다. 현행 표기법이 우리말 표기법의 체계성을 기본 원칙으로 삼은 것은 타당한 결정이라고 본다. 우리말과 글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외국어이고, 외래어는 우리말의 체계 속에 수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간결성을 내세워 지나치게 표기를 단순화하고 있다. 이에 몇 가지 중요한 사례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로 한다.에. casa blanca 까싸 블랑까 프. pardon 빠르동 |
까르뜨니트, 꼼빠니야 (이상 의류 상표) |
쏘나타, 무쏘 (이상 자동차 상표) |
영. center <센터> → [쎈터] | 프. Pompidou <퐁피두> → [뽕삐두] |
영. source <소스> → [쏘스] | 프. Camus <카뮈> → [까뮈] |
영. catch [ketʃ] 케치 |
독. Katze [katsə] 카체 → 카쩨 (된소리) → 캍쩨 (받침) |
독. deutsch [dɔytʃ] 도이치 |
독. Zeit [tsait] 차이트 → 짜이트 |
영. gap 갭 |
영. book 북 |
영. internet 인터넷 → 인터넽 |
영. cat 캣 → 캩 |
독. Herbst [hɛrpst] 헤르프스트 → 헤릎스트 |
독. Heidelberg [haidlbærk] 하이델베르크 → 하이델베릌 |
영. zigzag [zigzæg] 지그재그 → 직잭 |
영. lobster [lɔbstɒ] 로브스터 → 롭스터 |
영. signal [signəl] 시그널 → * 식널 [싱널] |
/i/ : /iː/ → 이: Mitte 미테, Miete 미테 |
/ʏ/: /yː/ → 위: füllen 퓔렌, fühlen 퓔렌 |
/u/: /uː/ → 우: Rum 룸, Ruhm 룸 |
/ɛ/: /eː/ → 에: Bett 베트, Beet 베트 |
/œ/: /φː/ → 외: Hölle 횔레, Höhle 횔레 |
/ɔ/: /oː/ → 오: Moll 몰, Mol 몰 |
/a/: /ɑː/ → 아: Bann 반, Bahn 반 (Rausch/Rausch 1991:25 참조) |
영. meeting [miːtiŋ] 미팅 | 영. party [pɑːti] 파티 |
1) 장모음을 음절로 표시하는 방법 | |
독. Miete 미이테 | 영. party 파아티 |
2) 장모음 다음에 ‘-’를 적는 방법 | |
독. Beet 베-트 (→베엩) | 영. meeting 미-팅 |
3) 단모음에 받침을 붙여서 촉음으로 만드는 방법 | |
독. spucken 슈풐켄 - spuken 슈푸켄 독. bitten 빝텐 - bieten 비텐 |
영. New York 뉴욕 →뉴우요오크 | 독. Sohn 존 → 조온 |
독. füllen [fylən] 퓔렌 - fühlen [fyːlən] 퓔렌 |
독. Bann [ban] 반 - Bahn [baːn] 반 |
영. apple 애플 → 앺플 | 영. mattress 매트리스 → 맽트리스 |
영. sickness 시크니스 → 앀크니스 | 독. Schotte 쇼테 → 숕테 |
독. wen [veːn] 밴 → 벤 | 독. wenn [vɛn] 밴 |
독. Höhle [hoːlə] 횔레 | 독. Hölle [hœlə] 횔레 → 홸레 |
독. Sohn [zoːn] 존 | 독. Sonne [zɔnə] 조네 → *저네 |
독. Bote [boːtə] 보테 → * 보트 |
독. Boot [boːt] 보트 → * 보트 |
영. boat [bout] 보트 → 보우트 |
영. tower [tauə] 타워 → 타우어 |
영 low [lou] 로 | 영. law [lɔː] 로 |
영. headlight [hedlait] 헤드라이트 → 헤들라이트 |
나무 + 가지 | → 나뭇가지 |
전세 + 집 | → 전셋집 |
독. Verlag [fɛɒlaːk] 페어라크 → 페얼라크 ([l]음 표기) → 페얼랔 (받침 원음 표기) |
독. Vaterland [faːtɒlant] 파터란트 → 파털란트 ([l]음 표기) |
독. Mensch [mɛnʃ] 멘슈 → 멘시/멘쉬 (슈→시/쉬) → 맨시/맨쉬 (열린 모음 표기) |
4. 맺는 말
지금까지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였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간결성과 체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존의 한글 자모만을 사용하고, 각 언어별 특징은 최소한만 인정하고 있다. 이는 외래어 표기법이 일반 국민을 위한 것이므로,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표기의 간결성을 위해서 구별이 가능한 표기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표기는 표기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소리를 구분하여 적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표기의 복잡성은 일차적으로 말소리의 구조에 달린 것이다. 이를 인위적으로 간결화하는 것은 결국에는 말소리를 왜곡하는 것이다.참 고 문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