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진 중국어1)로는 더 나아갈 수 없다
1. 서울말과 “한문국어”
똑같이 사람의 말이지만, 입말과 글말은 많이 다르다. 입말은 고을마다 틀리고 또 끊임없이 변하지만, 글말은 나라 안에서 두루 쓰이고,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글말은 입말보다 품위가 더 높고 어휘가 더 풍부하고 문법이 더 엄격하다. 이러한 특성들에 힘입어 글말은 교육받은 계층의 일상 언어로 되고, 교육의 일반화와 함께 오늘날의 나라말이 된 것이다.2. 어휘의 네 가지 원칙
두 낱말은 첫째: 뜻이 다르면 소리도 달라야 하고, 둘째: 뜻이 같으면 소리도 같아야 한다. 이것이 어휘를 구성하는 원칙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첫째를 구별의 원칙이라 하고 둘째를 경제의 원칙이라 한다. 구별의 원칙이 없는 어휘를 가리켜 모자란다 하고 경제의 원칙이 없는 어휘를 가리켜 넘친다고 한다. 한문국어의 고질은 소리 같은 말이 많다는 데 있다. 구별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자를 쓰지만, 그것은 눈으로 읽을 때만 효과를 볼 수 있는 미봉책이다. 뜻이 같은 말도 너무 많다. 구매, 구입, 매입이 구별 없이 쓰이고 공격 밖에도 가격이 있고, 피격을 당하다에서는 피격도 공격의 뜻이다. 계승과 승계, 운명과 명운, 수련과 연수,…… 경제의 원칙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3. 틀리지 않을 수 없는 한문국어
이런 말을 완벽하게 배울 사람이 없다. 말 실수가 만연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사로운 언어 생활은 문제 삼지 말자. 공적인 문건에, 몇백 년 뒤의 사람들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출판물 안에 틀린 말이 너무나 많다. 말단 공무원, 높은 자리의 공직자, 언론인, 작가는 물론, 이 말의 연구와 교육을 직업으로 하는 언어학자들까지 말이 틀리지 않는 이가 없다.4. 정신적인 기형아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
입말과 글말, 고을말과 나라말 사이의 교류는 흔히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주로 글말이 입말에 영향을 주고, 그 반대의 경우는 흔치 않은 것이다. 근래에 한문국어가 교육과 행정과 각종 매체를 통하여 국민의 언어 생활을 파고들어 입말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자유당 시절에만 해도 사람들이 낯 씻고 밥 먹고 일 가던 것이 이제는 세수하고 식사하고 출근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엊그제까지 힘겹게 버티어 온 작은 땅이름들도 사단지, 칠단지, 한양 일차, 우성 삼차 같은 메마른 한문식 이름으로 바뀌어 간다.5. 아직도 안 늦었다
라인 강 서쪽의 갈리아 땅은 시저의 정복으로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가 중세에는 게르만 계통의 프랑크 족의 나라로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프랑스말은 갈리아말과 프랑크말의 요소가 많이 섞여 들어 크게 변질된 라틴말이다.6. 군살만 빼면 다시 뛸 수 있다
그러면 젖먹이 때 배워 평생 쓸 수 있는 완벽한 나라말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외국의 성공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 이 일은 프랑스나 이스라엘에서처럼 반드시 나라가 주관해야 하며,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는 아무리 큰 수술도 꺼리지 않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