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투 문장 표현
1. 서론
1945년 일본의 식민지 통치로부터 해방된 이래 일본어가 국어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와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은 매우 활발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국어에 스며든 일본어 어휘에 대한 것이었고 일본어투의 문장 표현에 대한 것은 거의 없었다. 굳이 이에 대한 연구를 찾아본다면 1989년에 “일본 문화의 수용에 따른 여러 문제점”을 살펴보았던 “한국일본학회”의 ‘하계 학술 발표회’의 주제 토론회에서 부분적이나마 이 문제의 거론이 있었을 뿐이다. 이 발표회의 주제 발표자였던 송민(1989)은 국어에 들어온 일본적 외래어 문제를 폭 넓게 살펴본 것이었다. 그리고 이 발표에서 “국어의 통사 층위에서 일어난 일본어의 수용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별로 주목된 일이 없다.”(송민:1989/19)라고 하여 국어 구문에 끼친 일본어의 영향에 대한 연구가 이제까지 거의 없었음을 지적하였으며 국어에 끼친 일본어의 영향에 대한 연구가 어휘 중심으로 이루어진 매우 편파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하였다.2. 일본어투 문장의 진원
국어에서 일본어투 문장 표현이 나타난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근대 국어 초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세기 말엽에 간행된 일본어 교과서 “첩해신어”에는 “さてあてたいくたりてこそござれ”의 대역문으로 “어와아다이오시도쇠”가 있다(2권 2엽 앞면). 이 대역 구절의 ‘아다이’는 일본어 ‘あてたい’를 그대로 직역하여 생긴 일본어적 국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어 학습서의 대역문이라는 특수한 경우의 예이며 아무래도 국어 문장 구조의 전반적인 일본어 영향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일어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10년 소위 ‘한일합방’으로 불리는 경술국치(庚戌國恥)의 일본 침략 이후에 일본의 식민지 통치자들은 가혹하기 짝이 없는 한민족의 억압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민족어의 훼손과 말살을 집요하게 시도하였다. 그리고 지배자의 언어로서 일본어는 이 땅에 군림하였으며 이 시기에 우리말은 본격적으로 일본어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1). 1930년대 말에는 우리말의 훼손과 말살의 정책 시행이 절정에 다달았으며 국가 공용어로서 ‘국어’의 위치를 차지한 일본어는 더욱 비호되고 일개 민족의 언어인 ‘조선어’로 전락한 우리말은 일상적인 사용조차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에는 전쟁에 혈안이 되어 이성을 잃은 총독부가 언어에 이어서 우리의 성씨마저 일본어로 바꾸게 하는 민족 말살 정책을 철저하게 시행하였다.3. 통사 구조상의 일본어 영향
현대 국어의 통사 구조의 특징 중에는 근대 국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적지 않다. 송민(1979)에서는 직접 화법의 간접 화법화, 단문의 복문화·포유문화, 서술구의 수식구화 등을 현대 국어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으로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장 구조의 변화는 현대 국어가 일본어와 영어 문장 구문의 영향을 받은 때문으로 인식하였다. 필자는 본고에서 전술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일본어 구문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하며 우선 이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3.1. “-고 있다”(ている) 표현
3.2. “…있을 수 있다(有り得る), …있어야 할(有るべき), …한(던) 것이다(…たのである)”
송민(1979/33)에서는 현대 국어의 통사 구조 중에 근대 국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적인 구문이 많음을 지적하고 “한편 현대 한국어의 ‘-있을 수 있다, -있어야 할, -한 것이다’와 같은 통사 구조도 일본어 ‘ariuru(有り得る), arubeki(有るべき), -tano de’aru(-たのである)의 번역 차용이 거의 분명하며…….”이라 하여 이러한 표현이 일본어의 영향에 의하여 이루어진 구문임을 밝히고 있다. 다음의 예문은 이러한 구문의 일반적인 사용 예를 보여 준다.3.3. 현대 국어의 피동과 일본어의 우케미(受身) 표현
현대 국어에서는 전 시대의 우리말과 달리 피동형의 표현이 많다. 물론 이러한 구문은 영어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일본어의 우케미(受身) 표현에서 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3.4. 비인칭 대명사나 무정체의 명사가 주어로 쓰인 경우
송민(1979)에서는 현대 국어의 통사 구조 중에서 근대 국어의 그것과 다른 예로 비인칭 대명사나 무정 명사가 주어의 위치에 올 수 있고 지시 대명사가 필요 이상으로 나타나며, 행동이나 상태가 사역적, 피동적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을 들고 있다. 행동이나 상태가 피동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 예는 앞에서 살펴보았으나 현대 국어에 보이는 다음과 같은 통사 구조는 비인칭 대명사나 무정체의 명사를 가주어로 사용하여 표현하는 영어 표현의 영향이며 이 영향은 전술한 피동이나 사역형의 표현과 같이 일본어가 먼저 받아서 국어에 넘겨준 것으로 보인다. 그 예를 송민(1979)에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3.5. 영어 구문에 이끌린 일본어와 국어
영어의 특정한 구문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사용되다가 그것이 그대로 국어에 유입된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영어의 ‘in behalf of’와 ‘be bound to’는 “-のたあに(-을 위하여)”와 “必ず - する(반드시 -를 하다)”로 번역되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이탤릭체로 된 부분, 이하 같음)7).4. 관용적 표현에서 일본어의 영향
이상에서 문장 구조에서 나타나는 일본어의 영향을 살펴보았다. 제2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20-30년대에 우리말은, 특히 문학 작품이나 지식인들의 글에서 일본어 문장 구조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하에서 일본어로 교육되었고 일본어로 습작을 한 다음에 이를 다시 국어로 치환하여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일본어 어투의 문장이 많이 나타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실제로 제3장에서는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국어 문장의 예를 단편적이지만 몇 개 고찰하였는데 실제로 일본어의 영향은 관용적 표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제 현대 국어의 관용적 표현에서 일본어 어투의 것을 찾아보기로 한다.5. 결어(結語)
이상 일본어투의 문장 표현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고찰하였다. 먼저 현대 국어의 문어에 일본어투가 많이 나타날 수 있는 두 언어의 접촉 과정을 살펴보면서 대부분의 현대 문학 초기 작가들이 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문어에 있어서의 이중 언어 사용자였음을 지적하였다. 실제로 1920-30년대에 우리의 현대 문학은 이러한 작가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며 후대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때의 많은 작가들은 젊은 시절의 습작 연습을 통하여 일본어의 구문을 익혔으며 그러한 문어의 학습은 일본어를 기본 문장어로 하고 우리말의 문어는 그에 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가 후일에 우리말로 바꾸어 작품을 쓰는 작가들에게는 그들이 사용하는 국어 구문에 일본어 구문의 영향이 매우 많았음을 예를 들어 고찰하였다. 실제로 이들의 작품 가운데는 일본어 구문의 영향과 관용구가 차용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