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

 

宋敏 / 국민대 교수·국어학

1. 머리말
    현대 국어의 내부에는 여러 가지 성격의 언어적 외래성(foreinism)이 얼기설기 누적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관심을 끌어온 부분은 일본어 요소의 干涉(interference)이라는 측면이었다. 현대 국어의 각 층위에 나타나는 일본어 요소의 간섭은 그만큼 복잡하고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유형 또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직접적인 간섭은 조선조 말엽인 1870년대부터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으므로, 그 실질적인 역사도 이제는 1세기 이상을 헤아리게 되었다. 국어 속의 일본어 문제는 결국 국어사적 과제가 되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본고에서는 현대 국어에 누적되어 있는 일본어의 간섭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먼저 살펴본 후, 아직도 국어 속에 살아남아 있는 간섭 유형을 정리하고 나서, 그와 관련되는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하여 논의하게 될 것이다.

2. 간섭의 역사적 배경
    국어와 일본어의 구체적인 접촉은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도 생각보다는 오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국어와 일본어가 실질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한 것은 구한 말인 1870년대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일방적 간섭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간섭의 세력은 그때 그때의 역사적 배경에 따라 상당한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1세기가 조금 넘는 기간에 걸쳐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여기서는 그 역사적 배경을 다음과 같은 시기로 구분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조선 시대(1876년 이전)
    국어와 일본어의 접촉은 일본에 파견된 바 있는 朝鮮 通信使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들의 기록에서 그 구체적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宋敏1985 b). 宋希璟의 日本行錄(1420), 申叔舟의 海東諸國記(1471), 慶暹의 海槎錄(1607), 李景稷의 扶桑錄(1617), 姜弘重의 東槎錄(1624~5), 金世濂의 海槎錄(1636~7), 南龍翼의 扶桑錄(1655~6), 申維翰의 海遊錄(1719~20), 曺命采의 奉使日本時聞見錄(1748), 趙曮의 海槎日記(1763~4) 등과 康遇聖의 捷解新語(1676)를 통하여 조선 시대에 이루어진 국어와 일본어의 접촉 내지 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 내용이 밝혀진다.
    이들 문헌에 나타나는 사례로서 주목되는 것으로는 勝枝治歧(杉燒, 申維翰), 淡麻古(多葉粉,申維翰), 茶毯(疊, 曺命采), 茶啖(疊, 趙曮), 다담이(金仁謙, 일동장유가), 古貴麻(孝子麻, 趙曮)과 같은 고유 일본어와 蘇鐵, 批杷, 密柑, 饅頭, 羊羹, 仙人掌, 糖糕(團子)와 같은 한자어들이 있다. 현대 국어에 나타나는 '담배, 고구마'는 이 시기의 차용으로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온 것이다. 그 밖의 '스끼야기, 다다미, 소철, 비파(과일), 밀감, 만두, 양갱, 선인장, 당고' 등은 이 시기의 차용을 계승한 것이라기보다 개화기 이후에 새롭게 받아들인 것이겠지만, 조선 시대에 이미 그 명칭이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捷解新語'의 일본어 문장에 대한 국어 대역문 가운데에는 御念比(go-neN-goro), 氣遣(ki-dzukai), 日吉利(ɸi-yori), 遠見(tou-mi), 御陰(o-kage), 聞及(kiki-oyobi), 御念入(go-neN-o-irete), 肝煎(kimo-irasirare), 氣相(ki-ai), 折節(ori-ɸusi), 聞合(kiki-awase), 御手前(o-te-maye), 申含(mousi-ɸukome), 思合(omoi-awase), 見合(mi-awase), 御仕合(o-si-aw-ase), 振舞(ɸuru-mai), 爰元(koko-moto), 心得(kokoro-ye), 思分(omoye-wake)와 같은 고유 일본어 내지 漢字와의 混種語(hybrid) 이외에도 案內, 油斷, 御馳走와 같은 일본 한자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다. 특수한 경우에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이들 또한 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일본어 간섭 요소가 현대 국어에까지 계승된 사례는 거의 없지만 국어와 일본어의 접촉이 조선 시대에도 상당히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개화 시대(1876~1910년)
    국어와 일본어의 실질적인 접촉은 朝日 修好 通商 條約(일반적으로는 江華 條約 또는 丙子 條約)이 체결된 1876년 修信使 金綺秀가 일본에 다녀오면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일본은 서구의 문물을 한참 활발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金綺秀는 일본에서 새로 만들어진 문명 어휘와 직접 접촉할 수 있었다.
    修信使 金弘集(1880), 紳士遊覽團(1881), 修信使 朴泳孝(1882), 特命全 權大臣 徐相雨(1884) 등이 잇달아 일본으로 파견되면서 국어와 일본어의 접촉도 더욱 활발해졌다. 金綺秀의 日東記遊(1876), 金弘集의 修信使日記(1880), 李¿永의 日槎集略(1881), 朴泳孝의 使和記略(1882), 朴載陽의 東槎漫錄(1884~5)과 같은 기록을 통하여 당시의 사정을 더듬어 볼 수 있다(宋敏 1988).
    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은 이렇게 시작되어 甲午更張(1894)을 거치고 韓日 合邦(1910)으로 이어지면서 빠른 속도로 그 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나 이 시기에 나타나는 일본어의 절대 다수는 한자어였다. 수신사들의 기록에는 蒸氣船, 汽車, 新聞紙, 人力車, 電線, 電信, 博物院, 會社, 師範學校, 鐵道, 議事堂, 地球, 外交, 警察官(이상 金綺秀), 汽船, 開化, 日曜日, 土曜日, 大統領, 圖書館, 證券, 印紙, 稅關, 數學, 化學, 判事, 議員, 監獄署, 郵便局, 盲啞院, 商社, 太平洋, 薄記, 國會, 合衆國, 新聞, 電報, 經濟, 病院, 銀行, 六法, 政黨, 思想, 民權(이상 李¿永)과 같은 실례가 나타나는데, 이들은 거의 그대로 현대 국어에 계승되었다. 어쩌다가 순수 한자어가 아닌 경우도 나타나지만, 이들은 그후 소멸의 길을 걸었다. 襦袢, 瓦斯와 같은 서양 외래어, 頭取(too-dori), 取締(tori-simari), 心得書(kokoro-e-gaki)(이상 李¿永)와 같은 혼종어 내지 고유 일본어가 그러한 사례에 속한다.
    甲午更張을 전후로 하여 국어에 수용된 위와 같은 일본어는 상당한 양에 달한다. 지금까지 조사된 결과만으로도(徐在克 1970, 李漢燮 1985)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이 시기를 통하여 국어에 간섭을 일으킨 일본어 요소는 거의 새로운 한자어에 국한되어 있었다. 파생어 형성 의존 형태소-的(國家的, 民族的)이 어렵지 않게 국어에 수용될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이 한자 형태로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宋敏 1985 a).

(3) 식민지 시대(1910~1945년)
    한일 합방이 이루어지면서 국어와 일본어의 접촉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갔다. 이에 따라 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도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 1920년대부터는 고유 일본어 요소의 간섭이 점차 국어 문장에 구체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한다. 발음 그대로를 수용하는 직접 차용(intimate borrowing)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전반까지의 문학 작품에는 이미 직접 차용이 제한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시리, 고부가리, 고시마, 고이비도, 구루마, 기라, 나나, 나마이, 나지미, 네마, 네우찌, 다모도 덴라소바, 도고야 도비미, 마지메, 메다쓰, 사루마다, 아보, 야이모, 에노구, 오시이레, 요비링, 조오리, 하부다이, 히니, 히야시(安東淑·趙惟敬 1972). 이상과 같은 사례들은 그 일부에 지나지 않거니와, 이러한 직접 차용이 국어 문장에까지 등장할 정도였다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간섭이 행해졌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이러한 간섭은 1940년 전후에 드디어 그 절정에 이르렀다. 국어에 대한 호칭은 이미 조선어였고 그 대신 일본어가 국어로 불리게 되었다. '한글'지는 '朝鮮語에 쓰이는 國語 語彙'라는 난을 통하여 당시의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한글 61,62, : 1938, 64,66 : 1939 참조).
    이 시기에 이루어진 일본어의 간섭은 국어의 어휘 체계와 문법 구조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다음 장에서 정리해 볼 간섭 유형으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 광복 시대(1945년 이후)
    제2차 대전의 종말과 함께 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은 일단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직접 차용이 어렵게 되었고, 일제의 잔재 추방이라는 의식적 명분에 밀려 기존의 일본어 요소도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국어와 일본어가 접촉을 중단한 일이 없었다. 적어도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인적 요소가 각계 각층에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본어 사적이나 신문, 잡지를 계속 읽을 수 있었고, 영어를 배우거나 읽을 때에도 영일 사전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순수 한자어는 물론 한자로 표기될 수 있는 고유 일본어도 한자어의 자격으로 국어에 계속 수용될 수 있었다. 결국 제2차 대전의 종말과 함께 고유 일본어에 의한 간섭은 한동안 거의 중단되었지만 한자어에 의한 간섭은 아무런 제약 없이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일 국교의 정상화(1965)를 계기로 국어와 일본어의 접촉은 다시금 활발해졌다. 1970년대를 고비로 하여 한국에서는 일본어 학습자가 날로 늘어났고, 정치 경제 학술 문화 산업 기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일본과의 인적 교류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대도시에는 일본 음식점이 호화롭게 세워지고, 도처의 술집에서는 일본식 유행을 본뜬 노래 방식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백화점이나 수입 상품 가게에는 일본 상품이 넘쳐흐른다. 필연적으로 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시대의 간섭으로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언제나처럼 일본에서 새로 만들어지거나 유행하고 있는 한자어라고 할 수 있다. 民主化, 過剩保護(過保護), 日照權, 事件 記者, 集中 豪雨, 殘業, 人災, 別冊, 反體制, 案內孃, 耐久 消費材, 準準決勝, 防御率, 自責點, 嫌煙權, 情報化 社會 등이 그러한 실례가 될 것이다. 요즈음 올림픽 特需란 말이 자주 쓰이고 있는데, 이때의 特需는 特別需要의 단축형으로서 한국동란(1950) 때 일본에서 태어난 어형이다. 새삼스럽게도 뒤늦게 국어 속에 되살아난 것이다. 太宰治의 '斜陽'(1947)이란 소설이 발표되면서 斜陽族이란 유행어가 한동안 일본을 휩쓸었고, 斜陽과 族은 각기 수많은 신조어의 조어 요소가 되었다. 국어에 나타나는 斜陽産業이나 장발族, 히피族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생겨난 말이다.
    일본에서 제2차 대전 후에 만들어진 번역어도 그대로 국어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冷戰(cold war), 죽음의 재(sand of death), 壓力 團體(pressure group), 微視的(micro), 國民 總生産(G.N.P.), 聖火(Olympic torch). 일본에서 만들어진 그릇된 영어나 의미가 달라진 것도 국어에 자주 들어온다. 나이터(경기), 마카로니 웨스턴, CM탈랜트, 아프터 써비스, 후리 쎅스나 아베크, 레저 등등. 반주용 레코드 테이프를 지칭하는 가라오께(kara : 빈+오케스트라)란 혼종어는 이제 아무데서나 거리낌 없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고유 일본어가 버젓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야끼도리, 뎃빵야끼와 같은 간판까지 길거리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이 시대에 이르러 일본어의 간섭은 다시 옛 세력을 되찾아 가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3. 간섭의 유형
    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만큼 그 유형 또한 다양하여 국어의 거의 모든 층위에 걸쳐 있다. 유형별로 그 윤곽을 잠시 더듬어 보기도 한다(宋敏 1979).
    (1) 형태 층위의 간섭

① 模蔿(replica)에 의한 직접 차용
    여기에는 우선 고유 일본어가 있다. 오뎅, 오봉, 가마니, 구두, 구루마, 고데, 노가대, 노깡, 사시미, 사라, 시아게, 시다, 자부동, 다다미, 다라이/다라, 데모도, 하꼬(짝/방), 히야시/씨야시, 호리(꾼), 마호(병), 무뎁뽀, 모찌(떡), 와이당, 와리바시. 이들이 문장어에 쓰이는 일은 매우 드물다. 아직도 이들에 대한 저항감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두어에서는 별다른 제약 없이 쓰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특수 사회의 구두어로서 아직도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국어 생활을 어둡게 하고 있다. 자연히 이 유형의 차용어는 특수 사회 계층의 비어나 은어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많다(姜信沆 1957,1968,1969,1983).
    다음에는 일찍이 일본어를 거쳐 온 중국어나 서양제어가 있다. 우동, 가방, 잉꼬, 장껜뽀, 단스, 라면(중국어), 카스테라, 담배, 뎀뿌라, 빵(포르투갈 어), 메리야쓰(스페인 어), 고무, 뺑끼(네덜란드 어), 구락부(俱樂部), 구리스, 샤쓰, 스빠나, 작끼, 타올, 도나스, 빠꾸, 빵꾸, 빤쓰, 바께쓰, 삐라, 뻰찌, 빠클, 혹꾸, 남포, 와이샤쓰(영어), 쎄무가죽, 쓰봉, 부라자, 낭만(浪漫) (불어), 코펠(독일어) 등등. 이 밖에도 일본어를 거치는 동안 어형이 단축된 것들도 있다. 아파트, 테레비, 테러, 도란스, 데모, 파마, 바리콘, 마이크, 미싱, 메모, 포르노(영어). 또한 각종 언어 요소에 의한 혼종어도 있다. 깡기리, 쎄라복, 식빵, 도꾸리샤쓰, 돈까스, 요비링, 가오마당, 야끼만두, 전기다마 등등.
②漢字를 통한 간접 차용
    여기에는 우선 일본어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문명·문화어나 학술어가 있다. 그 일단에 대해서는 앞에 예시한 바 있다. 이들은 한자로 조어되어 있기 때문에 별다른 저항감 없이 국어에 수용될 수 있었다. 직접 차용의 유형에 속하는 어휘들이 국어에서 냉대를 받고 있는 현실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어떻게 되었든 이 유형의 차용어는 국어의 한자어 체계를 크게 확대시켜 주기에 이르렀다.
    학술어 이외에도 일반 일본 한자어가 전통적 국어 한자어를 크게 약화시키거나 아주 몰아낸 경우도 허다하다. 괄호 속에 든 것이 전통적 한자어이다. 美人(一色), 自白(吐說), 請負(都給), 交際(相從), 約束(言約), 職業(生涯), 工事(役事), 見本(看色), 現今(直錢), 利益(利文), 高利(重邊), 株券(股票), 費用(浮費), 表紙(冊衣), 日曜日(空日), 取調(査實) 등등. 이들 일본 한자어들은 전통적 국어 한자어 체계에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③ 번역 차용
    일본어는 국어에 적지 않은 번역 차용(loan translation)을 유발시켜 주었다. 그중 일반 번역 차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뒷말, 돌대가리, 색종이, 웃돌다, 밑돌다, 짝사랑, 돈줄, 벽걸이, 꽃다발, 가로놓이다. 이러한 번역 차용은 현대 국어의 복합어 체계를 풍부하게 늘려 주기도 하였다.
    현대 국어에 나타나는 번역 차용 가운데 다음과 같은 사례들은 매우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선 실례부터 예시한다. 明度, 編物, 言渡, 家出, 入會, 入口, 受付, 受取, 內譯, 乳母車, 石女, 埋立, 賣上, 賣出, 賣渡, 追越, 大形, 大幅, 落葉, 溺死, 織物, 買入, 買占, 貸切, 貸出, 貸付, 壁紙, 氣合, 生藥, 切上, 切下, 組合, 組立, 毛織, 小賣, 小形, 凍死, 小包, 先取, 先拂, 後拂, 差押, 揷木, 差出, 敷地, 下請, 品切, 据置, 競合, 競賣, 立場, 立替, 建坪, 手當, 手續, 手荷物, 手配, 戶口, 居出, 取扱, 取下, 取調, 積立, 荷役, 葉書, 引上, 引下, 引受, 引渡, 引出, 引繼, 船積, 見積, 見習, 見本, 行方, 呼出, 呼名, 割引 등등.
    이들은 얼핏 한자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거의 대부분이 고유 일본어에 의한 복합어들이다. 그 때문에 이들은 완전히 훈독되거나 부분적으로 훈독한다. 실제로 이들 가운데에는 한자 조어법에 어긋나는 것이 많다. 가령 '집을 나가다'는 出家이어야 할텐데 실제로는 家出이다. 그러나 이 어형을 일본어로 훈독할 때에는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이러한 고유 일본어를 국어에서는 무조건 한자어로 받아들이고 만 것이다. 전통적 국어 한자어는 어느 것이나 한자 조어법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 위와 같은 번역 차용이 국어에 수용되면서 한자 조어법에 어긋나는 어휘가 적지 않게 생겨났는데, 이로써 국어 한자어 체계 속에는 어색한 혼혈아가 끼어들게 된 것이다.
④ 조어 요소의 차용
    일본어에서는 일부 한자 형태소가 파생어의 조어 요소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的, -式, -性, -量, -期, -部, -率, -學, -上, -下와 같은 접미 요소와 半-, 不-과 같은 접두 요소가 그것이다. 이들에 의한 파생어 형성은 전통적 국어 한자어에도 어느 정도 있었으나 일본어와의 접촉을 통하여 그 영역은 크게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2) 통사 층위의 간섭

① 관용적 비유의 차용
    우선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관용구를 들 수 있다. 애교가 넘치다, 화를 풀다, 의기에 불타다, 원한을 사다, 종말을 고하다, 희망에 불타다, 호감을 사다, 흥분의 도가니, 엉덩이에 불이 붙다, 종지부를 찍다, 순풍에 돛을 달다, 손에 땀을 쥐다, 도토리 키 재기, 낯가죽이 두껍다, 패색이 짙다, 이야기에 꽃이 피다, 콧대를 꺾다, 반감을 사다, 무릎을 치다, 비밀이 새다, 마각을 들어내다, 폭력을 휘두르다, 새빨간 거짓말, 눈살을 찌푸리다, 귀에 못이 박히다, 가슴에 손을 얹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눈을 빼앗기다, 손꼽아 기다리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다, 낙인을 찍다, 등등.
    이와 같은 관용적 비유의 성립 과정을 이 자리에서 일일이 밝히기는 어려우나, 이들이 통사적 번역 차용일 가능성은 매우 높을 것이다. 이러한 비유 표현의 수용은 국어의 문 구조나 문체에 커다란 변모를 가져왔다.
    명언 가운데도 일본어를 통하여 전해진 것이 많으나 그중에는 잘못 번역된 것도 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히포크라테스)의 '예술'은 '기술(의술)'을 뜻할 뿐이며, "자연으로 돌아가라"(루소)도 "자연을 따르라"는 뜻이었지, "사회를 버려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한다.
② 통사 구조의 차용
    현대 국어의 '~있을 수 있다, ~한/던 것이다'와 같은 통사 구조나 '보다 빠르게, 뿐만 아니라'처럼 '보다'나 '뿐'이 문두에 쓰일 수 있게 된 것도 실상은 일본어의 간섭에 의한 것이다.

(3) 언어 의식의 간섭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한국인들은 '4'(四)라는 숫자를 '죽을 死'라고 하여 매우 기피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그러한 의식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金世濂의 海槎錄(1636~7)에는 당시의 사정을 알려주는 삽화 하나가 나타난다. 그는 대마도 왜인과 문서를 교환하다가 일본인이 '4'자를 불길하게 여긴다는 사실은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宋敏 1987). 결국 '4'자에 대한 기피 의식은 조선 시대에는 없었던 것인데, 개화기 이후의 어느 시기에 일본인들로부터 새로 전해 받았으리라고 생각된다.
    어떤 사람의 장기나 자랑할 만한 노래를 18번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일본어의 뜻이 옮겨진 것이다. 18번이란 본래 가부끼(歌舞伎)의 대본 18종을 지칭하던 말로서 처음에는 뛰어난 교오겐(狂言)을 뜻하다가 후에는 일반 장기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는데, 국어의 18번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18이란 숫자는 한국인의 전통과는 무관한 일본적 언어 의식의 간섭일 수밖에 없다.

4. 국어 속의 일본어 문제
    현대 국어 속에 자리를 굳히고 있는 다양한 유형의 일본어 요소들은 위에서 본 것처럼 길고 복잡한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다. 이제 결론 삼아 이들의 국어 생활에 어떠한 문제점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하여 간략히 정리하기로 한다.
    첫째, 문자어와는 달리 구두어나 비속어에서는 아직도 엄청난 분량의 고유 일본어 요소가 무심결에 쓰이고 있다.
    둘째, 일반어보다는 전문어(학술어 포함), 직업어, 그리고 기술어 등에서 지나치게 일본어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셋째, 고유 일본어에 대한 번역 차용식 한자어 중에는 한자 조어법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 국어 한자음 체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넷째, 혼종어 중에는 일본어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국어 어휘 체계의 비속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다섯째, 관용적 비유 표현에는 일본어 요소가 지나치게 이용되고 있어 국어 문체의 순수하고 참신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어 속에 누적되어 있는 일본어 요소를 좀더 포괄적으로 인식해 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구두어나 비어 또는 전문어 속에 나타나는 고유 일본어 요소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왔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때문에 문장어에 나타나는 일본식 한자어와 관용구에 대해서도 철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국어의 모든 층위에 나타나는 일본어 요소를 좀더 깊이 있게 검토해 가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이라야 국어 속의 일본어 요소에 대한 포괄적인 대책도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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