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언어 사용 실태와 정책


이 정 호 / 한국외대 교수, 인도 문학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에는 한 언어가 전체 국민 아니면 적어도 다수 국민의 의사 표시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물론 한 영토 안에 두 개 이상의 언어가 통용되는 곳도 있긴 하지만 한 나라에 수십 개의 공용어를 헌법에 명시한 나라는 인도밖에 없을 것이다.
    인도는 다양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언어도 예외는 아니다. 자료에 의하면 인도에는 845개의 언어가 있다. (이중 720개는 방언으로 10만 내외의 인구가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중 15개 언어(Hindi, Telugu, Bengali, Marathi, Tamil, Urdu, Gujarati, Kannada, Malayalam, Oriya, Punjabi, Assamese, Sanskrit, Sindhi)를 공용어(official language)로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이들 언어 중 4개(Teluge,Tamil,Kannada,Malayalam)는 드라비디언 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인도 남부 드라비디언 문화권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 외 나머지는 인도 중·북부 지방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인도·유럽 어족에 속한다. 이들 언어는 지역어(regional language) 성격을 띄고 있다. (우루두는 어느 특정 지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주로 회교도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산스크리트는 더 이상 구어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인도에 국어(national language)는 없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고대에는 산스크리트가, 중세에는 페르시안 어가 그리고 영국 식민지하에서는 영어가 국어나 다름없었다. 오랜 반식민, 반영 저항 운동을 해오는 동안 국민들을 하나로 묶었던 무기, 즉 매체가 바로 힌디였다. 식민지하에서 국어로서의 위치를 누렸던 힌디는 독립된 인도에서는 그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인도 헌법 제343조 1항에 의하면 데바나가리 문자로 된 힌디를 중앙 정부의 공용어로 명시하고 있으며 2항에는 (힌디가 인도 전역에 확대 보급될 때까지) 앞으로 15년 동안(1950~1965) 지금까지 사용되어 온 영어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편의 규정을 두고 있다. 따라서 헌법에 따라 15년이 지난 후 1965년부터는 정부의 모든 일이 마땅히 힌디로 되어야 했으나 일부 남부 인도 정치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힌디가 북부와 남부와의 정치적 쟁점이 되었으며, 타밀나두 주에서는 중앙 정부가 힌디를 강요한다는 악선전을 퍼부어 힌디 반대 운동에 거세게 일어났으며 끝내는 폭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때문에 이후에도 영어가 계속 공용어로 사용되도록 되어졌던 것이다.
    1963년 공용어 법안에 따르면 힌디와 더불어 영어를 중앙 정부의 공용어로 계속 사용할 것이며, 중앙 정부와 각 주 정부 그리고 주 정부 사이의 의사소통 언어로 영어 사용을 규정하고 있다. (힌디 사용도 무방) 이 법안은 또 정부의 결의안이나 훈령, 제 법칙, 명령, 공고, 통지, 기자 회견문, 판결문, 의사 보고 등에는 힌디와 영어를 함께 사용토록 강제 규정을 두고 있다. 이어 1976년 중앙 정부는 공용어 정책의 이행을 위한 세부 규칙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실행되는 인도 정부의 언어 정책이다. 그 주요 내용은

ⅰ) 중앙 정부와 힌디를 공용어로 하는 7개 주(우따르 쁘라데쉬, 히마찰 쁘라데쉬, 마댜 쁘라데쉬, 비하르, 라자스탄, 하리야나, 델리)와의 모든 공문서와 의사소통은 힌디로 하며
ⅱ) 이들 7개 주를 제외한 주(펀잡, 구즈라트,마하라스트라)와 중앙 정부와는 영어와 힌디로 하고,

그리고 ⅰ),ⅱ)에 명시한 주를 제외한 주와 중앙 정부와의 의사소통은 영어로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현 인도 정부의 언어 정책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중앙 정부의 공용어인 힌디를 중앙 정부와 각 주 정부 그리고 주 정부들 사이에도 의사소통을 위한 link language로 사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인도의 정치, 군사, 외교, 재정 등 국가의 주요 행정은 델리를 중심으로 해서 힌디가 사용되는 7개 주가 그 핵을 이루고 있다.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7억 5천만 인구의 88%가 힌디를 사용, 이해하고 있다. 언어학적으로 보면 힌디는 인도·유럽 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아리안족이 인도에 들어와 사용한 베다 시대의 산스크리트에서 변화·발달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으로 그 모체는 산스크리트이다. 지구상의 11개 나라에서 힌디가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피지, 수리남, 트리니다드, 모리셔스, 말디브, 가야나, 그리고 아프리카의 일부에서는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다. 또, 이들 나라를 제외한 세계 94개 대학에서 힌디를 배우고 가르치고 있다.
    지구상의 1/4에 해당하는 인구가 사용하는 힌디가 인도에서는 어떻게 해서 국어가 되지 못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오랜 반식민 저항 운동을 해 오면서 힌디를 매체로 하여 하나로 뭉쳤던 그들이 독립된 조국에 국어를 형상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독립된 조국의 헌법에 영어를 15년간 사용하기로 한 것이나 15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 사용하기로 한 것은 한 마디로 인도인들이 독립 쟁취한 후 친영 세력들(식민지 잔재)을 척결치 못했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200년 가까이 자기네들을 지배해 온 지배자 언어를 또 다시 공용어로 선택했다는 것은 보수적이고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인도인들에게 흠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인도에서의 영어 사용 인구는 전체의 2%에 해당하는데 이들이 국어나 다름없는 힌디에 악의를 갖고서 힌디의 사용을 보수적이니 후진성이니 하는 수식어로 매도하여 자기 합리화를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영어 사용이 진보와 발전을 가져온다고 주장하며 나아가 영어 사용이 보통 사람이 아닌 상류층이나 문명인의 상징으로까지 이해하고 있다. 이들은 영어를 지배자의 상징으로까지 여기는 영어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힌디를 반대하는 운동은 인도의 남부 특히 드라비디언 문화권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그곳도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그 지방의 정치인들이 개인의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힌디 운동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1957년 사용 언어에 따라 주의 경계선을 그은 이후 언어 문제는 지역 문제 나아가 정치 문제의 쟁점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비힌디 지역 주민들은 힌디가 국어가 되면 자신들이 힌디 지역 주민들에 비해 여러 면에서 (중앙정부의 관리 시험이나 모든 경쟁 시험 등)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 이 점이 힌디가 국어로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 정부나 힌디 지역 지도자가 힌디를 지지하고 나서면 비힌디 지역에서는 힌디를 강요한다며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비힌디 지역에 힌디 보급의 장애가 되고 있다.
    인도 정부가 힌디를 국어화하는 운동을 직간접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문제는 정치 지도자들이 언어 문제를 지역적 정치적 감정의 차원이 아닌 국가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적 구심체 역할을 했던 힌디를 하루 빨리 국어화하기를 인도 관계 학문을 하는 학자로서 바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