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양과 국어 생활

이 현 복 / 서울대 교수, 언어학

1. 억양이란 무엇인가?
    "억양"이란 낱말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고는 있으나, 억양의 실체에 관한 명확한 개념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흔히 억양하면 글월의 본 뜻에 얹히어 전달되는 부수적인 요소로서 말하는 이의 기분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표지로 알고 있는 정도이다. 가령, "저 사람은 억양이 무뚝뚝해서 정이 떨어진다"라던가, "그 사람은 참으로 상냥한 억양을 지녀서 호감이 간다"와 같은 말에서 우리는 일반인의 억양에 관한 이해를 엿보게 된다. 물론 억양에 관한 이 같은 통속적인 이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비록 윤곽이 뚜렷하지는 않으나 상당히 억양의 실체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억양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억양의 실체와 기능에 관한 좀더 명확하고 분명한 정의가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억양이란 "말의 가락"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음악에 가락(melody)이 있듯이 인간의 말에도 목소리의 높낮이(pitch)가 엮어내는 말의 가락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에 얹혀서 나타나는 가락이 바로 억양이다.
    그러면 억양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억양은 높낮이가 엮어 내는 가락이라고 하였다. 즉, 목소리의 높이를 높게 또는 낮게 조절하여 이루어 내는 가락이다. 따라서 이러한 목소리의 높낮이를 만들어 내는 원천은 바로 성대의 진동이다. 성대의 진동수가 클수록 목소리는 높아지고 진동수가 작을수록 목소리는 낮아진다. 성악에서 발성 훈련을 할 때에 [아]라는 홀소리를 발음하면서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의 음계를 노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음정에 맞게 성대의 진동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어에서도 낱말이나 문장을 발음하면서 동시에 성대의 진동수를 적절하게 가감함으로써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는 억양을 이루어 내게 된다. 다만 음악의 가락과 언어의 가락인 억양은 성격이 다르다. 음악의 가락은 도, 레, 미, 파 등의 음계에 따라 높낮이가 일정한 음정의 폭으로 오르내리나, 언어의 가락은 일정한 음정의 폭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고 연속적인 오르내림을 보이며 높낮이의 폭이 훨씬 미세한 것이 보통이다.

2. 언어생활에서 억양은 왜 필요한가?
    억양이 없는 언어는 없다. 어떤 말이든 억양을 제외하고 나타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어마다 억양의 형태와 기능은 다를 수 있으나 억양은 필연적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짧은 한 토막의 말을 발음하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억양이 얹히어 나타나게 마련이다. 가령, 우리가 자주 쓰는 /네/라는 말을 들어보면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양한 억양으로 발음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랑하고 자신 있는 태도를 보이는 억양(높은 목소리에서 낮은 목소리로 떨어지는)으로 발음하는 /네/가 있는가 하면 소극적이고 사무적인 억양(중간 높이에서 낮은 목소리로 내려오는)으로 발음할 수도 있다. 단정적인 /네/(목소리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내려오는) 억양이 있는가 하면 의심과 놀람의 태도를 보이는 /네/(목소리가 낮은 데서 높이 올라가는 억양)도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네/라는 낱말이 지닌 사전적인 뜻 위에 억양의 형태에 따라 여러 가지 부차적인 의미가 가미되어 전달됨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최현배 선생은「우리말본」에서 억양에 관하여 흥미 있는 기술을 한 바 있다. 자치기 놀이를 할 때에 공격자가 공격을 시작해도 좋으냐는 확인의 뜻으로 /해?/하고 외치면 수비자가 곧이어 수비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으로 /해/하고 답한다. 이 때에 쓰인 말은 /해/라는 똑같은 홑낱말이지만 공격자는 /해/를 오름 억양으로 발음하고 수비자는 내림 억양으로 발음한다. 즉 공격자는 오름 억양을 사용하여 /해/라는 한 토막의 말을 의문문으로 만들었고 수비자는 내림 억양을 사용하여 /해/를 긍정문으로 바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억양이 긍정문과 의문문이라는 두 가지의 문법적 범주를 분화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억양은 말하는 상황에 따라, 그리고 문맥에 따라 적절히 사용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상황과 문맥에 걸맞지 않는 억양을 사용하면 어법이 잘못일 뿐 아니라 망발이 되며 때로는 오해의 소지마저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국어 교육에서 올바른 억양의 교육은 필수적일 뿐 아니라 어느 면에 못지 않게 중요한 분야임을 알 수 있다.

3. 억양의 형태와 기능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억양은 인간의 언어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억양에 관하여 논의할 때에는 두 가지 면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억양의 형태요, 또 하나는 억양의 기능이다. 형태와 기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면서도 형태는 기능에 선행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언어 형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억양에 있어서도 형태가 먼저 있어야 기능을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형태에 따라서 억양의 의미와 기능도 달라지므로 억양의 연구에 있어서 형태는 일차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1)억양의 형태
    억양의 형태를 결정하는 요소는, 가)목소리의 높이, 나) 목소리 높낮이의 변화 방향, 다) 시작하는 점과 끝나는 점 사이의 높낮이의 폭이다. 목소리의 높이는 억양의 시작점의 높낮이를 말한다. 억양의 시작점의 높이는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고 그에 따라 기능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목소리의 변화 방향은 시작점에서 끝나는 점으로 이동할 때 방향이 오름이냐 아니면 내림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작보다 높아지면 오름 억양이 되고 낮아지면 내림 억양이 된다. 또한 목소리의 변화 방향은 단일 방향일 수도 있고 이중 방향일 수도 있으며 또 삼중 방향일 수도 있다. 이중 방향의 억양은 오르내림이나 내리오름이 된다. 그리고 삼중 방향의 억양은 오르-내리-억양이나 내리-오르-내림의 억양으로 실현된다. 이와 같은 변화의 방향도 억양의 기능에 관련이 있으므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시작점과 끝점 사이의 폭은 한 억양 안의 높은 목소리와 낮은 목소리 간의 폭을 뜻하는데 이것은 음악에서 말하는 음정이라고 볼 수 있다. 높낮이의 폭이 크냐 작으냐에 따라 억양의 기능이 달라시므로 이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억양의 실제 형태는 위에 말한 세 가지 요소가 적절하게 결합하여 이루어 내게 된다. 그리고 억양은 목소리의 높낮이만이 아니고 소리의 세기 및 길이와도 관련이 깊으며 목소리의 음색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어에서 흔히 쓰이는 억양의 몇 가지 형태를 /네/라는 홑음절을 중심으로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          
=   -   =   -
  -   - =   -   -   -
낮 내림 높 내림 오르-내림 내리-오르-내림
  -  
  - =   =   -   -   -
=   -   =   -  
낮 오름 높 오름 내리-오름 오르-내리-오름

위 그림에서 아래와 위의 선은 목소리 높이의 하한선과 상한선을 각각 나타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점선은 해당 음절의 상대적인 높낮이를 표시하며 「=」은 강세를 받는 음절의 높이를 나타낸다. 물론 여기서는 홑음절 /네/ 위에 얹혀서 나는 억양을 나타내므로 「=」는 억양의 시작점의 높이를, 그리고 「-」은 억양의 끝의 높이를 표시한다.

2) 억양의 기능
억양이 언어에서 수행하는 기능 중에서 중요한 것은 가) 문법적인 기능과 나) 태도/감정의 전달 기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 문법적인 기능
억양이 지니는 중요한 기능의 하나는 문법적인 기능이다. 보기를 들면, 영어의 "You did it."이란 문장은 긍정문으로 되어 있으나, 이를 오름 억양으로 발음하면 의문문으로 바뀐다. 즉, 위의 문장의 구조를 "Did you do it?"으로 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의문문의 기능을 갖도록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말에서 "네가 했어"라는 문장은 /어/라는 어미가 문법적으로 중립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므로 어미 자체로는 긍정과 의문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다만 어떠한 억양이 쓰이느냐에 따라서 긍정문이 될 수도 있고 의문문이 될 수도 있다. 즉, "했어"라는 말을 오름 억양으로 발음하면 의문문이 되고 내림 억양으로 발음하면 긍정문이 된다.
나) 태도와 감정의 전달 기능
억양은 문법적인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태도와 감정을 나타내는 기능을 지닌다. 이미 앞에서 억양이 시작되고 끝나는 목소리의 폭에 따라서 억양이 전달하는 태도의 의미가 달라지는 예를 든 일이 있다. 태도의 의미가 억양의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또 다른 예를 살펴보기로 한다. 가령, "감사합니다."와 같은 문장은 문법적으로 긍정문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ᄇ니)다"라는 활용 어미는 바로 이 월이 긍정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 주고 있다. 그리고 긍정문이므로 이 월은 보통 내림 억양으로 발음되는 것이다. 그러나 긍정문이라고 해서 반드시 내림 억양으로만 발음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오름 억양으로 발음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에는 내림 억양으로 발음될 때와 다른 태도를 나타낸다. 이 경우에 내림 억양이 일반적인 단순한 종결의 의미를 나타낸다면, 오름 억양은 발랄하고 친절한 태도를 나타낸다. 같은 긍정문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태도의 의미에는 커다란 차이가 들어난다.

4. 억양은 언어와 방언에 따라 다르다.
    이미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말의 억양은 언어에 따라 다르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워서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보면 어딘지 어색한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억양이 한국적이 아니어서 그러한 인상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발음이 정확하다고 해도 억양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한국어와 외국어의 억양이 다르며, 외국인이 한국어의 억양을 적절하게 구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풀이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영어나 그 밖의 외국어를 말할 때에도 이와 같은 억양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가령, 우리의 학생들, 특히 처음으로 영어를 배우는 중학생들이 책을 읽는 것을 들어 보면, 영어와 한국어의 억양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He did not read it."라는 문장을 우리나라 중학생은 흔히 다음과 같이 읽는다.
He did not read it
  =
- - - -  
  -

위의 그림은 "He did not read it."라는 문장을 발음할 때의 각 음절의 높낮이와 강세 위치 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억양의 형태를 나타내 주고 있다. 이것은 억양을 분석적으로 도해해 주는 종합적인 그림이므로 억양을 기술할 때 흔히 활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위의 그림에 관한 설명을 계속한다.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이 중학생은 문장의 처음부터 목소리의 중간 높이로 "He did not read"까지를 읽다가 it에 와서 갑자기 강세를 넣고 목소리를 높인 다음, 이어서 아래로 떨어뜨리는 이른바 내림 억양을 쓰고 있다. 즉, /it/라는 마지막 낱말에 억양의 핵(Nucleus)을 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한국말의 억양 습성을 그대로 영어에 옮겨 놓은 것이다. 문장의 끝 음절에 강세와 억양의 핵을 규칙적으로 놓는 한국말의 습관을 중학생은 영어를 읽을 때에도 그대로 적용한 결과이다. 물론 그 결과는 대단히 영어답지 않은 억양이 되고 만다. 영어다운 억양은 read에 강세와 억양의 핵을 두게 되며, /it/는 약음절로 발음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외국인에게 올바른 한국어를 교육하고 또 한국인에게 올바른 외국어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한국어와 해당 외국어의 억양을 비교 분석하여 그 바탕 위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해야만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억양은 방언에 따라서도 형태와 기능이 다를 수 있다. 서울과 경기 및 중부의 이른바 표준말 지역의 억양과 경상이나 함경, 제주 등지의 억양은 같지가 많다. 때로는 차이가 심하여 의사소통에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몇 년 전 부산의 어느 식당에서 경험한 일은 방언 간의 억양 차이를 잘 설명하여 준다. 우리 일행이 주문한 식사를 종업원이 날라 왔으나 밥이 한 그릇 부족하였다. 그래서 종업원을 불러 밥 한 그릇이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종업원은 이렇게 답하였다. 이 그림에서는 문장의 음절을 발음된 목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두 선 사이에 직접 표시한 것이다.
 
   
   

이 대답을 듣는 순간 그 종업원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서 한 동안 멀거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밥이 한 그릇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긍정의 뜻인지 아니면 "밥이 오지 않았습니까?"라고 놀라서 묻는 말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말의 끝이 내림 억양으로 되어 있으므로 표준말 사용자는 이를 긍정문으로 이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종업원의 표정이나 상황으로 보아서는 긍정문일 수가 없지 않은가! 결국 종업원이 의도한 것은 의문문으로 판명이 되었으나 이 같은 억양의 차이는 잠시나마 오해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 만약에 이와 같은 상황이 서울에서 일어났다면 종업원은 이러한 억양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즉 서울의 종업원이 그러한 상황에서 사용할 억양은 끝에서 목소리가 올라가는 오름 억양이며 이로서 의문문을 만드는 것이다. 방언의 차이란 단순히 홀소리와 닿소리 따위의 낱낱의 소리값에서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고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억양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표준말 교육에서는 표준말 억양과 사투리 억양을 대조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올바른 억양을 지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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