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應 百 / 서울大 敎授, 國語學
1. 緖言
世宗 25년(1443) 訓民正音이 창제된 당시 우리말의 表記는 世宗 大王 자신은 終聲에 初聲을 폭넓게 試用(1)하기도 하였으나, 일반적으로는 訓民正音解例에서 규정한 8終聲(2)을 썼으며, 50년 뒤에는 ㄷ도 ㅅ으로 통합, 7종성으로 축소 使用하였다.(3) 體言과 助詞, 語幹과 語尾는 다 連綴되다가 前者는 後者보다 일찍 分綴이 된 경향을 띠기도 하였다. 그러나 壬亂을 계기로 시대가 내려갈수록 表記는 혼란을 극해 오다가 甲午更張을 맞아 國文이 公用 文書로 쓰이게 되자 整齊된 표기법의 필요를 國家的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雨後竹筍같이 이는 수다한 國文 이론가들의 서로 다른 見解는 혼란을 가중시켜 政府로서는 國文 硏究所를 설치하고 이 문제의 해결책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國文 硏究所가 1907년 7월 8일 開設되고 9월 16일에서 1909년 12월 27일까지 23회에 걸쳐 회의를 하고 報告書를 냈으나 실시를 보지 못한 채 失國의 悲運을 맞았던 것이다.(4)
1910년 日帝의 强占으로 모든 敎科書의 발행이 그들의 손아귀로 넘어간 뒤 그들이 着眼한 것이 이른바 諺文 綴字法의 統一 作業이었다. 그리하여 제1차로 1912년에 「普通學校用 諺文 綴字法」을 제정했고, 제2차로 1921년에 이를 改正하여 「普通學校 諺文 綴字法 大要」를 냈으며, 제3차로 1930년에 종래의 綴字法을 대폭 수정한 「諺文 綴字法」을 냈다. 이제 그 제정 내지 改正의 經緯와 內容, 특징 등을 가능한 한 本文을 소개하면서 보아 나가고, 끝으로 제3차 규정과 現行 한글 맞춤법과를 대비함으로써 그 특징의 마무리로 삼고자 한다.
2. 諺文 綴字法
그들은 우리의 國語를 朝鮮語, 國文을 諺文이라고 改稱했다.
敎科書 調査 委員會 委員 | 文學 博士 | 金澤庄三郞 |
中樞院 副贊議 敎科書 調査 委員會 委員 | 魚 允 迪 | |
本府 通譯官 | 藤波義貫 | 田中德太郞 |
本府 時學官 | 玄 櫶 | |
京畿道 視學 | 申 基 德 池 錫 永 |
|
中樞院 囑託 | 玄 檃 | |
元東京 外國語 學校 敎師 | 柳 苾 根 | |
私立 中央 學校長 | 崔 斗 善 | |
私立 微文 高等 普通學校員 | 權 悳 奎(8) |
普通學校用 諺文綴字法大要(제2차) (1921. 3)
一. 用語는 現代의 京城語를 標準으로 함.
二. 可及的 發音대로의 綴字法을 採用함.
三. 純粹의 朝鮮語中 語頭에 잇는 『니·녀』等은 『이·여』와 如히 發音함이 多하나 他語의 下에 着하야 熟語를 成하는 境遇에는 ㄴ音이 復活하게 됨이 多한故로 比等은 全部『니·녀』로 書하기로 함.
(例)
녀름(夏),
녑(側),
네(借, 古),
닉을(熟),
닙을(着, 被),
니을(連, 續),
니즐(忘),
닐어날(起),
님금(皇),
닙사귀(葉).
四.漢字音의 頭音의 ㄹ인것은 發音의 如何를 不拘하고 恒常 ㄹ로 書함.
(例)
란초(蘭草),
룡산(龍山),
리익(利益),
일 (來日).
五. 純粹의 朝鮮語에 對하여는 表音的 表記法에 從하야「、」를 使用하지 아니하고 (字音은 歷史的 綴字法에 依하야 (來)·(每)로 書함), 「ㅏ」로 此에 代함.
(例)
말(馬, 本來는 ),
사람(人, 本來는 사).
但 아의 發音에 依하지 아니하는것은 此限에 잇지 아니함.
(例)
가늘(細, 本來는 가),
마음(心, 本來는 ),
가슴(胸, 本來는 가),
나물(菜, 本來는 ).
六, 純粹의 朝鮮語에 對하야는 表意的 表記法에 從하야 댜·뎌·됴·듀·디·탸·텨·툐·튜·티를 자, 저·조·주·지·차·처·초·추·치로 書하고 샤·셔·쇼·슈를 사·서·소·수로 書하고 쟈·져·죠·쥬를 자·저·조·주로 書함.
(例)
절(寺, 本來는 뎔),
좃소(善, 本來는 둇소),
질(落, 本來는 딜),
소(牛, 本來는 쇼).
七, 漢字音에 對하야는 歷史的 表記法에 後하야 댜·뎌·됴·듀·디·탸·텨·툐·튜·티·샤·셔·쇼·슈·쟈·져·죠·쥬等을 그대로 保存함.
(例)
뎡녕(丁寧).
텬디(天地).
샤례(謝禮).
죠셕(朝夕).
八. 終聲(밧침)에 關하야는
(甲) | (乙) |
(1) 곳(處), 곳을, | 곧, 곧을 |
엇는다(得), 어들, | 얻는다, 얻을 |
(2) 돕는다(助), 도울, | 돕는다, 돕을 |
(3) 숫(炭), 숫치, | 숫, 숫이 |
(4) 낫(晝), 낫에, | 낮, 낮에 |
짓는다(吠), 지즐, | 짖는다, 짖을 |
(5) (花), 치, | 꽃, 꽃이 |
(6) 밧(田), 밧헤, | 밭, 밭에 |
갓다(似), 갓흘, | 같다, 같을 |
(7) 닙(葉), 닙흔, | 닢, 닢은 |
깊다(深), 깁흘, | 깊다, 깊을 |
(8) 나(齡), 나히 | 낳, 낳이 |
(9) 닥는다(修), 닥글 | 닦는다, 닦을 |
(10)갑(價), 갑스로, | 값, 값으로 |
업다(無), 업슬, | 없다, 없을 |
(11)삭(雇賃), 삭시, | 삯, 삯이 |
甲乙 어느 綴字法에 從할것인가 자못 重大한 問題나 乙號의 諸例를 採用할 時는 從來 慣用되어 오던 ㄱ·ㄴ·ㄹ·ㅁ·ㅂ·ㅅ·ㅇ의 終聲 以外에 오히려 ㄷ·ㅈ·ㅊ·ㅋ·ㅌ·ㅍ·ㅎ의 七箇 終聲도 許容하고, 二重 終聲(둘밧침)도 許容하지 아니할수 업시 된다. 이에 對하야 甲乙 雙方의 利害에 關하야 學問上 實際 敎授上으로부터 各種의 論議이 生한다. 就中 今日 普通으로 行하지 아니하는 終聲을 새로 採用하는 可否, 比等 終聲의 發音如何, 及 此를 採用한 境遇에 對한 實地 敎授上의 難易에 關하야는 아직 硏究를 要할 點이 不少하다.
要하건대, 甲乙 兩說 어느것이든지 相當한 理由가 잇서서 直時 黑白을 決하기 困難한故로 本 敎科書에 對하야는 今後의 決定을 보기지 大體로 從來의 綴字法에 從하야 大略 甲號에 準據하기로 함.
七, 活用語의 活用語尾는 可及的 語幹과 區別하야 書함.
(例)
먹엇소(食),
들어간다(入去)
떨어진다(落),
붉은(紅花)
但 語幹의 終聲이 ㅅ으로 從한 것 中 次와 如한 例外를 置함.
(例) 짓는다(吠)---지즐, 찻는다(探)---차즐,
는다(揷)---즐, 것는다(捲)---거들,
엇는다(得)---어들, 늣다(遲)---느즐,
一○. 助詞「이·은·을·에·으로」等은 上에 來하는 語의 終聲의 種類에 依하야 「치(히·시), 츤(흔·슨), 츨(흘·슬), 체(헤·세), 츠로(흐로·스로)」等으로 書함. 前記 第八項의 甲號의 例를 參照할 일.
一一. 從來 二樣의 書法이 잇는 助詞「는··를·」은 「는·를」로, 「은··을·」은 「은·을」로 一定함.
一二. 「히 又는 이」를 附하야 副詞를 作하는 것中
(一) 主要한 語가 漢語인 境遇는 히를 附함.
(例)
大端히,
閒暇히,
安寧히,
急히.
(二)主要한 語가 純粹한 朝鮮語인 境遇에는 發音 如何로 因하야「히」又는 「이」를 附함.
(例)
(1)
가득히(充滿),
놉히(高),
깁히(深),
불상히(不祥).
(2)
만이(多),
가만이(徐徐),
나란이(整齊),
나날이(日日).
一三. 된시옷의 記號에는 ㅅ만을 使用하고, ·까等과 如한 書法을 아니 씀.
一四. 二語가 合하야 複合語를 이루되, 그 사이에 促音 現像이 生할 時는 일ㅅ군(日雇)等과 如히 二語의 中間에 ㅅ을 揷入하려고 하는자 잇스나, 本書에 對하야는 各各 境遇에 依하야 ㅅ을 上語의 末에, 又는 下語의 初에 附하기로 함.
(例)
(1)
동짓달(冬至月),
열잿달(第十月)
(2) 외양(廐 구), 모리(苗圃), 긔(旗脚),
一五. 語에 딸아서는 말(語, 長音)과 말(馬, 短音), 눈(雪, 長音)과 눈(目, 短音), 발(簾, 長音), 발(足, 短音)等과 如히, 同一 語字로서 單只 母音의 長短으로 因하야 意義를 다르게 함이 잇다. 此等에 對하야는 長短의 音符를 附함이 가장 必要한 일이지마는,
모시고 (侍)
일(事)
교댱(校長)(以上 長音)
모시(苧)
일긔(日氣)
학교(學校)(以上 短音) 其他 無數한 語에 對하여 一一이 長短 音符를 附하는 것은 甚히 煩多하고 長短 어느 것에 屬할는지 아직 硏究를 要하는 것도 不少한故로, 今回는 全然 此를 省略하기로 함.
一六. 假名을 諺文으로 表記하는 法은 次와 如히 定함. (省略)
여기에 新設된 사항은 「사이ㅅ」규정으로 ㅅ을 '上語의 末, 又는 下語의 初'에 붙여 '동짓달(冬至月), 외양(廐)'으로 하고, '일ㅅ군(日雇)'과 같이 사이에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終聲(밧침)'에서 乙로 對比시킨 7종성 외의 받침들은 周時經이래 점차로 高潮돼 온 당시의 이른바 形態主義(表意化)에 대한 檢討의 흔적이라 하겠다.
이 제3차 改定 「諺文 綴字法」은 民間 學者의 대폭 참여로, 제2차 改正때 고려의 대상이었던 形態主義 表記가 부분적으로나마 드디어 現實化한 데 큰 특징이 있다. 菊版으로 19면(11)에 걸친 이 綴字法은 분량 관계로 그 짜임만을 現行「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對比하면서 소개하겠다.
諺文綴字法 (제3차) (1930.2)
一. 總 說
一. 朝鮮語讀本에 採用할 諺文 綴字法은 各 學校를 通하여 此를 同一하게 할 일.
二. 用語는 現代의 京城語를 標準으로 함.
三. 諺文 綴字法은 純粹한 朝鮮語와 漢字音과를 不問하고 發音대로 表記함을 原則으로 함. 但 必要에 應하여 苦于의 例外를 設함.
二. 各 說
一.
、→ㅏ (제33·34항)(12)
二. 댜·탸···→자·차···, 쟈·챠···→자·차···, 샤···→사··· (제 35항)
三. 뎨·몌···→·메···, 믜·븨···→미·비···, →취 (제 40·41·45항)
四. 鼻音化 (제 23항 2)
五. 사이 ㅅ (제 30항 1①)
六. 長短音 (표시 안 하기로)
七. 漢字音에서 ㄴ→ㄹ (제49항)
八. 漢字音의 習慣音 (제48항)
九. 語中에서 ㄴ의 덧남.
(例)
압니(前爾)
암녀우(雌狐)
편늇(分隊擲栖)
一○. (一) '-이, -음' 以外의 接尾辭는 連綴 (제13항 (1))
(二) '-이, -음' 接尾辭는 分綴 (제12항)
一一. '擬聲語+ -이'는 連綴 (제22항 (1))
一二. '된시옷'은 同字並書 (제1항 붙임)
一三. 終聲에 'ㄱㄴㄷㄹㅁㅂㅅㅇㄼㄻㄺ'외에 'ㄷㅌㅈㅊㅍᄁ
ㄳ
ㄵ
ㄾ
ᄡ'을 더 씀 (제11항)
一四. 助詞는 分綴 (제61항)에 연관.
一五. 'ㅌ' 받침 아래의 表音的 表記.
一六. 'ㅊ' 받침 아래의 表音的 表記.
一七. '다·게·지·고·겟다'의 '타·케·치·코·켓다' 表記
一八. '이오, 시오, 지오'의 表記
一九. 語幹과 語尾의 分綴 (제8항)
二○. 中聲으로 끝난 語幹의 活用은 表音的 表記 (제10항 7·8, 제54항)
二一. 變則用語는 表音的 表記 (제10항 1·2·5)
二二. 'ㅎ'받침 用言는 表音的 表記
二三, 使動의 '-히' 副詞는 區分表記
二四. '-이, -히' 副詞는 區分表記 (제21항)
二五. 假名의 諺文表記法
附記
一. 子音 名稱 (제2항)
二. 諺文 反切은 正音대로 읽게함 (제5항)
이상을 보건대 全文 25개 항, 附記 2개 항에서 二五는 제외하고 현행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다른 것은 九, 一五, 一六, 一七, 一八, 二二, 二三 7개 항 뿐이다. 좀더 상세히 그 實相을 檢討해 보기로 하자.
①終聲은 종래의 10개에 새로 11개를 더하여 21개가 되었는데, 現行 28개에서 7개(ㅋ, ㅎ, ㄶ,
ㄽ, ᄚ,
, ㅆ)가 적은 것이다.
이것은 제2차 綴字法에서 망설이던 것에 勇斷的 결정을 내린 것이니 제2차 調査 委員에 대거 참여한 周時經系 學者들의 의견의 적극적 반영의 결과라고 여겨진다.
② 九의 例語에서 '앞니(前爾)'는 현행과 같으나, '암녀우, 편늇'은 發音上의 문제일 뿐으로 현행에서는 '암여우, 편윷'으로 表記한다.
③一五의 '밭(田). 밭치'는 'ㅌ'의 口蓋音化를 반영시키지 않은 결과요,
一六의 '숯(炭), 숯테'는 'ㅊ'받침을 해 놓고도, 曲用時에는 일반 慣行을 무시치 못하고 '테'를 반영시킨 결과라 하겠다.
④一七과 二二는 같은 脈絡에서 결과한 것이다. '좋다'가 아니고 '조타(好)'를 基本形으로 삼은 데서 온 당연한 결과다.
⑤一八에서 '시오'는 現行과 같으나, '이오, 지오'는 현행이 '이요, 지요'로 되어있다.
⑥二三에서 '바치다(貢)'는 현행과 같으나, '바침(終聲), 부치다(貼附), 구치다(使固)'는 현행에서는 '받침, 붙이다, 굳히다'로 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제3차' 綴字는 普通學校用이란 종래의 修飾辭를 빼고 그냥 '諺文 綴字法'이라고 한 것도 다르거니와 그 3년 뒤인 1933년에 탄생될 朝鮮語 學會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構想의 뼈대가 덜 洗鍊된 채이긴 하나 대개 나타난 것으로 여겨진다. 말하자면 전반적으로 形態主義 쪽으로 方向 轉換이 되면서도 아직 쓰지 않기로 한 'ㅎ'받침에서 야기되는 激字音 語尾 현상과 특히 'ㅌ'받침의 口蓋音化 現像의 補足 '치'가 앞으로의 손질을 기다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리하여 合邦 2년 뒤에 결정 발표한 '諺文 綴字法'은 거의 10년 간격으로 두 번에 걸쳐 改正하였는데, 제1. 2차가 表音主義였던 데 비해 제3차는 形態主義를 택하여 새 받침을 많이 등장시켰다. 이로써 '漢字音의 表音化와 새 받침 및 된소리의 並記 등에 집중'된 「舊派」의 거센 반발로 진통을 겪기도 하였으나, 1930년 4월부터 改訂「朝鮮語 讀本」에 적용하여 1939년에 改正 作業이 완결되었다.(13)
3. 參考 文獻
金允經, 朝鮮 文字 及 語學史, 朝鮮 紀念 圖書 出版館, 1938.
朝鮮 總督府, 普通學校 朝鮮語 讀本 卷一 編纂 趣意書, 朝鮮 印刷 株式會社, 1930.
한글 학회, 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 1975, 제326판.
李基文, 開化基의 國文 硏究, 一潮各, 1982. 重版.
金敏洙, 國語 政策論, 高麗 大學校 出版部,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