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로 알기

‘뻰찌’와 ‘쓰레빠’

최용기 국립국어연구원

외래어는 외래어 표기법의 원리를 정확히 이해한다고 해도 바르게 발음하거나 표기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말은 원지음을 중시하여 그에 따라 표기하고 발음해야 하나, 어떤 말은 관용에 따라 표기하고 발음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말이 직접 들어오지 않고 다른 나라를 거쳐서 들어온 경우에는 발음이나 표기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철수야, 연장 그릇에서 뻰찌(→ 집게, 펜치) 좀 가져오너라.”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여기에서 ‘뻰찌(ペンチ, pinchers)’는 영어에서 온 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어식으로 변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다. 본래 영어에서 ‘pinch’는 ‘집다, 죄다, 잘라 내다’라는 뜻이 있고, 여기에다가 접미사 ‘-ers’를 덧붙인 ‘pinchers’는 ‘집는 것, 죄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일본어에서는 ‘pinch’만을 ‘ペンチ(뻰찌)’로 표기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이 우리가 쓰는 ‘뻰찌’는 영어와 이미 꽤 거리가 멀어진 일본어식으로 변한 말이다. 그래서 지난 광복 5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발간된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집』(문화체육부, 1995)에서는 이 말을 ‘(자름)집게, 펜치’로 순화하였다. ‘펜치’는 ‘(자름)집게’가 바로 쓰이기 어려울 것을 고려하여 ‘뻰찌’를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적은 어형이다. 순화된 용어를 사용한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정확히 표기하고 발음해야 할 것이다.


뻰찌 → (자름)집게, 펜치
“박 선생님, 교실에서는 쓰레빠(→ 실내화, 슬리퍼)를 질질 끌지 마십시오.”

‘쓰레빠(スリッパ, slipper)’도 원어는 영어에서 온 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어식으로 변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표기하고 발음하고 있다. 본래 영어에서 ‘slip’은 ‘미끄러지다, 끌다’라는 뜻이 있다. 여기에다가 접미사 ‘-er’를 덧붙인 ‘slipper’는 ‘실내용의 가벼운 덧신, 실내용의 신발’이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발 앞쪽만 꿰고 뒤축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쓰레빠’도 영어식 발음이 아니고 일본어식으로 표기된 말이다. 그래서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집』(문화체육부, 1995)에서는 ‘실내화, 슬리퍼’로 순화하였다. ‘슬리퍼’는 ‘slipper’의 바른 표기이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끌신’이라는 말로 바꿔 쓰고 있다. 어쨌든 순화한 용어가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지는 못할지라도 가능한 한 순화 용어를 사용하려는 자세가 더욱 필요하며, 좋은 대안이 없다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고 발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쓰레빠 → 실내화, 슬리퍼

* 도라이바(ドライバ, 영 driver) → 나사돌리개, 드라이버
라지에타(ラジエ-タ-, 영 radiator) → 방열기, 라디에이터
밧떼리(バッテリ, 영 battery) → 축전지, 배터리
부로카(プロ-カ-, 영 broker) → 중개인, 거간, 브로커
악세사리(アクセサリ, 영 accessory) → 장식물, 노리개, 액세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