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접두사 ‘왕[王]-’

이승재(李丞宰) 가톨릭대학교

최근에 ‘왕따’라는 단어가 회자(膾炙)되고 있다. 이것은 ‘심하게 따돌리는 대상’을 가리키는 유행어로서 접두사 ‘왕[王]-’에 ‘따돌린다’의 ‘따’를 붙여 만든 것이다. ‘왕짜증’에서 볼 수 있듯이 ‘왕-’ 다음에는 주로 명사가 오므로 ‘왕따’는 바르게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다.
   접두사 ‘왕[王]-’과 ‘대[大]-’는 ‘크다, 높다’의 의미를 가지는데 그 예로는 ‘왕감, 왕겨, 왕모래, 왕밤, 왕벚나무, 왕새매’의 ‘왕-’과 ‘대뇌, 대들보, 대못, 대하[大蝦]’ 등의 ‘대-’를 들 수 있다. 흥미롭게도 접두사 ‘왕[王]-’의 위치에 ‘말-’이 온 단어도 적지 않다. ‘왕개미=말개미, 왕거미=말거미, 왕매미=말매미, 왕벌=말벌, 왕잠자리=(노랑)말잠자리’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말-’도 ‘왕-’의 의미를 가진다. 이 대응을 중시하여 접두사 ‘말-’이 ‘[宗, 首]’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하나, 중국에서 이미 ‘馬蜂[말벌], 馬蟻[말개미]’ 등이 쓰인 적이 있으므로 ‘馬[말]’에서 접두사 ‘말-’의 어원을 찾을 수도 있다. ‘말-’의 예들을 잘 살펴보면 대개가 곤충 종류에 속하는 것으로서 식용하지 않는 것들로 한정된다. 이에 비해 ‘왕-’은 곤충뿐만 아니라 무생물, 식물, 동물 등에 두루 붙고 나아가서 인간 명사에 통합되기도 한다.
   접두사 ‘왕[王]-’이 인간의 호칭어나 지칭어에 붙을 때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 항렬’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점에서 ‘왕-’은 ‘대[大]-’와 같다. 대표적인 예로 ‘아버지의 고모’를 가리킬 때에 사용하는 ‘왕고모’와 ‘대고모’를 들 수 있다. ‘왕고모’와 ‘대고모’는 동의어로서 둘 다 표준어인데, 표준 화법에서는 그 밖에도 ‘고모할머니’를 쓸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서울 토박이들이 ‘왕고모’를 쓰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국립국어연구원의 『서울 토박이말 자료집 Ⅱ』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대고모, 대고모할머니, 고모할머니’ 등을 주로 사용하고 ‘왕고모’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점을 강조하여 ‘왕고모’의 표준어 자격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왕고모’는 지금은 복수 표준어로 등록되어 있지만 애초에는 방언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뜻하는 말로 ‘조부모, 대부모, 왕부모’가 쓰이기도 하는데, 수도권 지역에서는 ‘왕부모’를 역시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왕-’이 붙은 호칭어나 지칭어가 지방에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는 것과 아직은 그 용법이 수도권까지 확산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왕고모’는 표준어에서 제외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왕-’이 붙은 신조어에는 은어나 속어가 많아

요사이 어느 재벌 그룹의 회장을 가리켜 ‘왕회장’이라고 일컫는 일이 잦아졌다. 회장이 여럿인 그룹에서 여러 회장의 우두머리를 따로 구별할 필요가 있어서 ‘왕회장’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조어는 특정 집단에서만 사용될 뿐 다른 곳까지 두루 통용되지는 않는다. 그 재벌 그룹에서는 ‘왕회장’이 적절하게 쓰이지만 여느 그룹에서는 아주 어색해진다. 마찬가지로 ‘왕따’는 학생 사회에서 주로 쓰이고 ‘왕마담, 왕언니’ 그리고 ‘왕고참, 왕초’ 등도 특정의 사회 집단에서만 쓰인다. 이처럼 ‘왕-’ 계통의 신조어 중에는 폐쇄성을 가지는 은어나 속어가 많으므로 이들을 표준어로 올릴 때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표준어는 모든 사회 계층에서 두루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