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辭典)에 친숙하기



심재기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영어가 우리나라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광복 이후에 생긴 우스개 이야기. 한 청년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디어(dear) 순희 씨’라고 서두를 시작하는 사랑의 편지를 보냈다. 순희 씨는 ‘dear’라는 영어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사전을 펼쳐 보았다. 사전에는 ‘① 사랑하는 ② 편지 첫머리에 관용적으로 쓰는 호칭’ 이렇게 두 가지 뜻풀이가 있었다. 순희 씨는 청년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보내 주신 글월은 잘 받았습니다. 송구하오나 제가 잘 알지 못하여 여쭙는 것이니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보내 주신 글월의 첫머리에 적힌 영어 단어 ‘dear’는 제1의 뜻입니까? 제2의 뜻입니까?” 청년은 급히 답장을 보냈다. “디어 순희 씨, 그것은 물론 제1의 뜻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사랑은 행복한 결말 쪽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그 첫째는 뜻을 모르는 낱말이 있을 때에는 지체 없이 사전을 찾아보아야 한다는 것이요, 그 둘째는 사전의 뜻풀이는 엄정한 위계질서에 따라 적혀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사항이 사전을 만드는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의 문제라면 첫째 사항은 세상 사람들이 얼마만큼 친숙하게 사전을 접해야 하는가를 알려 주는 언어생활의 원칙이라 하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 정확한 말을 쓰는 일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말 사전은 누구나 지니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 전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어사전은 갖고 있으나 국어사전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희귀하기 그지없다. 초등학교 어린이에서부터 대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국어사전을 갖고 있는가 아닌가를 확인해 보면 그 실상은 대뜸 밝혀질 것이다. 우리는 국어사랑은 나라사랑이라고 구호만 외칠 일이 아니다. 국어사랑은 나라사랑이라는 사실을 생활로 증명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국민 모두가 각자의 처지에 맞는 국어사전을 가져야 한다. 초등학교 학생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소사전을, 그리고 중·고등학생은 또 그들의 수준에 맞는 중사전을, 그리고 한 가정에는 대사전을 한 질씩 비치해 두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미심쩍은 낱말을 만날 때마다 사전을 들추어 보고 그 낱말의 정확한 뜻을 확인하는 버릇을 길들여야 한다.

물론 이미 출간된 우리말 사전을 대조해 보면 뜻풀이에 차이가 나는 것도 있고, 뜻풀이의 순서가 엇갈려 있는 것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 차이를 발견하면서 ‘사전’이란 것이 절대 진리도 아니요, 또한 완벽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말이라는 것이 의사 소통의 기본 수단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조심해야 할 몇 가지 항목이 있다는 것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말은 시대에 따라 소리도 변하고 뜻도 변한다는 것, 말하는 이의 생각이 말속에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완벽하게 드러나기도 어렵다는 것, 그리하여 말을 바르게 듣고 바르게 쓰기가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요컨대, 사전 사용을 일상화함으로써 우리는 정제(整齊)된 언어생활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말’을 직업적으로 다루는 사람들, 이른바 글쟁이나 국어 선생님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온 천하에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