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


외래어 표기와 된소리

김세중(국립국어연구원)

국어의 자음은 19개인데 이 중에서 ‘ㄲ, ㄸ, ㅃ, ㅆ, ㅉ’ 5개가 된소리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래어 표기에 원칙적으로 된소리를 쓰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빵, 껌’ 등 굳어진 몇몇 단어와 일본어에서 온 말을 적을 때 ‘쓰’, 중국어에서 온 말을 적을 때 ‘ㅉ’을 사용하는 것을 제외하면 그렇다. 왜 된소리를 외래어 표기에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국어 파열음의 특징을 들라면 ‘ㄱ, ㅋ, ㄲ’, ‘ㄷ, ㅌ, ㄸ’, ‘ㅂ, ㅍ, ㅃ’에서 보듯이, 같은 발음 위치에서 세 가지 소리로 구별된다는 것이다. ‘ㄱ, ㅋ, ㄲ’은 혀의 뒷부분이 입천장을 막았다 터뜨리며 내는 소리라는 점은 다 같지만 평음인 ‘ㄱ’에 비해서 ‘ㅋ’은 강한 입김이 터져 나온다는 점이 다르고 된소리인 ‘ㄲ’은 성대의 긴장을 동반하는 점이 다르다.


파열음 표기에는 원칙적으로 된소리 쓰지 않아

한국어는 이처럼 파열음이 같은 위치에서도 나는 방법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되는 데 반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의 언어들은 파열음이 두 가지 소리로 구별될 뿐이다. 예를 들어 영어의 pack과 back은 p와 b의 차이 때문에 구별되는데 p는 무성음이고 b는 유성음이어서 유성, 무성에 따라 구분된다.
   b와 가장 가까운 소리는 국어의 ‘ㅂ’이다. 그러면 p와 가장 가까운 소리는 무엇일까? 이것은 언어에 따라 다르다. 영어, 독일어의 p는 국어의 ‘ㅍ’과 가깝다. 그런데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은 ‘ㅃ’이 더 가깝다. 프랑스 사람이 Paris를 발음하는 것을 들어 보면 영락없이 ‘빠’이지 ‘파’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외래어 표기법은 ‘빠리’가 아니라 ‘파리’로 적도록 하고 있다. ‘빠리’가 더 가깝다면 ‘빠리’로 적는 게 옳지 않을까 하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된소리에 가까운지 거센소리에 가까운지를 일일이 가려서 그에 따라 적는다면 외국어 발음에 더 가깝게 적기는 하겠지만 우리가 져야 할 부담이 만만치 않다. 위에 든, 잘 알려진 언어는 그렇다 치고 그리스어, 터키어, 네덜란드어, 아랍어, 타이어, 힌디어 등은 된소리에 가까운지 거센소리에 가까운지를 일일이 조사해서 정해야 한다. 그렇게 정한 것을 기억해서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된소리가 외국어 발음에 가까울 때도 있지만 기억 부담이 커

잘 모르는 언어는 거센소리로 표기하더라도 된소리와 가까운 게 틀림없는 프랑스어 등 몇몇 언어만큼은 된소리로 적자는 주장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나폴레옹’, ‘데카르트’, ‘나폴리’, ‘단테’ 등으로 익어 있는데 된소리를 쓴다고 하여 ‘나뽈레옹’, ‘데까르트’, ‘나뽈리’, ‘단떼’로 바꾼다면 찬성하는 사람 못지 않게 반발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교과서, 사전, 일반 출판물이 다 바뀌어야 하니 여간 큰 변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래어 표기를 외국어의 원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가까울 뿐이지 외국어 원래 발음 그대로는 아니다. 외국어 발음에 가깝게 적기 위해 수십 년 간 지켜 온 관습과 관행을 허물기는 어렵다. 큰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