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예절

호칭어에 담긴 부부의 예절

허철구 국립국어연구원

부부는 성인이 되어서 맺어진 새로운 관계이면서 그 누구보다도 가깝고 허물없는 사이이다. 그래서 서로 부르는 말도 다소의 어색함과 함께 자유분방한 면을 동시에 보이기도 한다.


부부간의 호칭어, 제멋대로 써서는 곤란

부부간에 부르는 말을 몇 가지만 들어보면 “철수 씨, 영희야, 자기야, 여보, 이봐요, 아저씨, 오빠, 형, 아빠, 야, 어이, 마누라, 미스터 김, 하니, 달링” 등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이 말들을 다 표준적인, 곧 품위있는 말로 인정할 수는 없다. 한 예로 요즘 젊은 부부들이 많이 쓰는 ‘자기’라는 말을 보자. 젊은 사람들은 뭐 어떠냐 하는 반응들이 적지 않지만 장년층 이상은 아무래도 듣기 거북한 말이다. 그러니 아들과 며느리가 저희끼리 “자기야” 하고 부르면 시부모에게는 마뜩찮게 여겨지고 며느리로서 점수도 박하게 받을 게 틀림없다. 따라서 부부간의 호칭어는 현대의 언어 현실을 반영하는 한편 이러한 세대 간의 차이도 세심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부부간의 호칭어로서 넘치는 말들을 다 받아들일 수 없고 옥석을 골라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여보’가 가장 무난한 호칭어

부부간에 서로 부르는 말로는 역시 ‘여보’가 가장 좋다. 신혼 초부터 내내 쓸 수 있는 매우 보편적인 말이다. 사실 ‘여보’가 부부간의 호칭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의외로 역사가 짧다. “여보, … 마누라 꿷각에는 엇더시오”처럼 이광수의 『무정』(1917)이나 “‘여보!’ 아내의 떠는 목소리가 바로 내 귀곁에서 들린다”처럼 현진건의 『빈처』(1920)에 이미 부부간의 호칭어로서의 쓰임이 보이지만,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이나 한글학회의 『중사전』(1958)에도 평교간에 부르는 소리나 ‘여보시오’의 좀 낮은 말 정도로만 풀이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말은 오늘날 부부간의 호칭어로 가장 널리 쓰이는 말이므로 그러한 현실을 존중하여 당연히 가장 표준적인 호칭어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지금 많이 쓰인다고 해도 ‘어이, 야’ 따위처럼 상대를 낮추어 부르는 말은 표준적인 호칭어가 될 수 없다. 부부간의 존경심과 품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을 ‘오빠’니 ‘형’이니 하고 부르는 것이 잘못임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달링’이나 ‘하니’ 따위의 영어식 표현도 좋은 말이 될 수 없다. 전통적인 우리말의 예절과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여보’라는 말이 신혼 초에 잘 나오지 않으면 그 중간 단계로 ‘여봐요’라고 할 수 있다. 또 ‘철수 씨’니 ‘영희 씨’니 하고 부를 수도 있다. 아이가 생기면 ‘돌이 아빠(아버지)’나 ‘순이 엄마(어머니)’처럼 부르는 것도 예절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종종 아내가 남편을 가리켜 그냥 ‘아빠’라고만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그냥 ‘아빠’라고 하면 자신의 친정 아버지와 잘 구분되지 않으며 남에게 기대어 부르는 호칭어는 표준 화법의 정신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시동생과 시누이를 아이에 기대어 삼촌과 고모로 부르는 일이 잘못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이는 우리의 전통적인 어법이 아니라 일본어에서 들어온 어법이라는 문제까지 있다.


시부모에게 남편을 가리키는 말은 ‘아비’나 ‘아범’이 정형

지칭어는 더욱 조심해서 써야 한다. 서로간에는 흔히 쓰듯 ‘당신’이 가장 무난하며 신혼 초에는 호칭어와 마찬가지로 ‘철수 씨’처럼 이름을 부르면 되므로 어려울 것은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 앞에서 남편이나 아내를 가리켜 말할 때는 조심하여야 한다. 시부모에게 남편을 ‘아비’나 ‘아범’이라고 해야지 ‘돌이 아빠(아버지)’라고 해서는 안 된다. 부모 앞에서 남편을 꽤 높인 셈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지방이나 집안에 따라서 아예 ‘걔’라고까지 낮추어 불러야 한다고도 주장하나 이 역시 지나친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데 아이가 없으면 어떻게 할까? 남편이 대화의 자리에 없으면 ‘그이’라고 한다. 바로 가까이 있다면 ‘이이’라고 하고 조금 떨어져 있으면 ‘저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자신의 친구들한테는 ‘그이’나 ‘우리 남편’이라고 하고 신혼 초에는 ‘우리 신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가 있다면 ‘애 아빠(아버지)’라고 하는 것도 무난하다. 그런데 남편의 직함을 붙여 ‘우리 사장’이니 ‘우리 부장’ 따위와 같이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실례이다. 남 앞에 자신의 남편을 높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남편을 찾는 전화가 걸려왔을 때 상대방의 신분이 확인되기 전에는 “아직 안 들어오셨는데요”처럼 남편을 높이지만 남편의 상사라든가 동료·친구라는 것이 확인되면 “아직 안 들어왔는데요” 하고 낮추어 말하는 것과 통하는 것이다.


아내의 지칭어 ‘집사람(안사람)’은 부모에게 쓸 수 없어

아내를 자신의 부모에게 가리킬 때는 ‘어미’ 또는 ‘어멈’이라고 한다. 물론 ‘돌이 엄마’와 같이 말하는 것은 아내를 높이는 셈이므로 적절치 않다. 아이가 없다면? ‘그 사람’이라고 하면 된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영희가요” 하고 이름을 부르기도 하나 이는 아내를 무시하는 것이므로 삼가야 한다. “영이 씨가요” 하는 것도 부모 앞에서 아내를 높이는 셈이 되어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자신의 부모 앞에서 아내를 ‘집사람’ 또는 ‘안사람’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아내를 대우하는 뜻이 있어 부모 앞에 쓰기에는 적당치 못하다. 그러나 처부모에게는 써도 괜찮다. 처부모에게는 그 딸을 낮추지 않고 말함으로써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예의에 맞기 때문이다.

‘마누라’는 아내를 존중하지 않는 말이므로 삼가야

남에게 아내를 가리킬 때 특히 주의할 것은 괜히 아내를 가리켜 말하기가 멋쩍어서 ‘와이프’라는 외래어로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영어식 표현은 어색하고 정감이 느껴지지 않으므로 좋은 말이라고 할 수 없다(‘와이프’라는 말이 적절치 않다는 것은 「새국어소식」 10월호를 보시기 바란다).
   어떤 이는 속마음과 달리 괜히 ‘마누라’라고 낮추어 말하기도 하는데 왠지 모르게 허세가 느껴진다. ‘마누라’는 원래 높이는 말이었으나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에 이르면 이미 ‘늙은 노파’를 가리키거나 ‘안해(아내)의 속어’로 나오듯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서의 품위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예부터 사대부 집안에서는 아내를 ‘부인’이라고 불렀지 절대 ‘마누라’라고 하지는 않았다. 물론 나이가 지긋해서 ‘마누라’라고 부르는 것도 다소 정감 있게 느껴지기도 하므로 상황에 따라 잘 가려 쓰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많은 경우 아내를 비하하는 느낌을 주므로 특히 남에게 자신의 아내를 가리켜 말할 때 ‘마누라’라고 하는 것은 삼갈 일이다.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은 다름 아닌 호칭어에서부터 비롯된다. 소중한 부부의 삶을 위해서는 그 호칭어를 잘 가려 쓰는 일부터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