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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Ⅱ. 국어학의 연구 동향
  음성학·음운론
김종규 / 홍익대

  1. 서론

  이 글의 목적은 2004년도에 발표된 국어학 분야의 연구들 중 음운론 분야의 업적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그 학문적 성과와 연구의 흐름 및 경향을 파악해 보고자 하는 데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필자가 보충·수정한 연구 업적 목록에 기반을 두고, 단행본 7편, 학위 논문 27편, 일반 논문 143편, 기타 5편 등 총 182편의 연구들을 선정하여 기본적인 내용 분석 과정을 진행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적지 않은 논문들이 이 기본 작업에서부터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와 같은 부족함에 대해서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음운론 분야의 연구 업적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전체적인 양의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증가세를 보여 주고 있는데, 이는 학문 분야 전반에 걸쳐 양적 팽창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 학계의 현황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개별 논문의 논의 내용이나 의의 등에 대한 비판이나 가치평가는 배제하고 다양한 연구 내용의 소개에 주안점을 두어 온 기존의 연구 동향 관련의 글들과는 기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전체적인 연구 업적의 개관을 바탕으로 한 기초 작업이 진행된다는 측면에서는 궤를 같이하고 있지만, 실제의 논의는 아주 제한적으로 선별된 소수의 연구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가능한 한 많은 연구 성과들을 소개했던 기존의 태도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폭넓은 논의의 여백을 제공하고 있는 소수의 연구들을 비판과 평가를 곁들여 자세히 분석해 보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10편의 논문만을 이 글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대상 논문의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필자로서는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기가 난감하다고 하겠다. 우선적으로 분명한 사실은 이들 논문이 계량화할 수 있는 질적 기준에 의해서 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별 연구들의 상대적인 학문적 수준이나 가치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당연히 부족한 필자의 능력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다분히 주관적인 필자의 판단 이외에는 명쾌한 선정의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고 하겠다. 다만, 가능하다면 위에서 제시한 기본적인 집필 의도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연구, 역동적인 음운론적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연구, 그리고 상대적으로 새로운 시각과 분석의 틀을 제공하는 연구를 포함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사실만은 강조해 두고 싶다. 결과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이 완결된 결과와 결론을 도출하고 있는 많은 훌륭한 연구들이 불가피하게 제외될 수밖에 없었음에 대해서는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어떤 기준에 의해서 논의를 전개해야 하는지는 이 글의 또 다른 심각한 고민거리 중의 하나였다. 일반적으로 음운론 분야에서의 연구 동향의 서술은 크게 현대국어 음운론, 방언 음운론, 음운사, 주제별 연구사 및 기타 등의 세부분야로 나누어, 개별 분야는 다시 이론과 현상으로 나누어 진행될 수 있다고 하겠다. 물론 이와 같은 하위 구분에 의한 서술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음운론적 연구가 공시적 연구와 통시적 연구, 또는 중앙어 연구와 지역 방언 연구 등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말끔히 구분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음운론적 연구들은 통시적 고찰과 공시적 고찰을 포괄하고 있고, 대상 언어 자료도 중앙어와 다양한 지역어들을 동시에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연구 분야의 하위 분류에 의한 전반적인 연구 동향의 서술에서 탈피하여 개별 연구 자체의 주제와 연구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본고는 그 논의 전개의 기준을 정하는데 상대적으로 더욱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선정된 논문들은 당연히 여러 가지 기준에서 서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나누고 있을 것인데, 이를 특정한 기준에 의해서 분류한다는 것이 오히려 자의적이고 폐쇄적인 서술의 오류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의 하위 주제를 기준으로 하여 대상 논문들을 분류하여 기술하는 편의적인 서술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의 하위 구분은 온전히 서술의 편의를 위하여 논의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이루어진 것일 뿐이지 다른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하겠다. 또한, 분야별 서술도 필자명의 한글 자모순이 아니라 역시 주관적인 서술의 편의에 따라 진행되었음을 아울러 밝혀 두고자 한다.


  2. 음운 현상과 음운론적 기술

  음운론의 기술에서 공시(synchrony)와 통시(diachrony)를 구분해야 하는 필요성과 당위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구조주의 시대의 논의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이렇듯 음운 현상의 공시성과 통시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필요성은 음운론의 연구 방법과 이론의 흐름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연구의 화두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럼에도, 개별 음운 현상의 공시성과 통시성을 규정하고 구분하는 작업은 그 정의와 경계의 변이에 따라 종종 심각한 문제점을 남기곤 했다. 더구나 개별 음운 현상의 성격과 그에 대한 음운론적 기술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혔을 때, 음운 현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과도한 일반화와 추상화의 미로에 빠져 버리기도 한다. 특히 통시적 음운 현상을 공시 음운론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많은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1. 교체의 유무와 규칙의 공시성(신승용)

  신승용의 ‘교체의 유무와 규칙의 공시성’은 교체의 유무라는 기준으로 규칙의 공시성과 통시성을 판단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고 있는 논문이다. 특히 형태소 내부의 현상은 그 본질적인 특성상 교체가 있을 수 없는데, 그렇다고 과연 형태소 내부의 현상을 모두 통시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우선, ‘한 지역 방언 내에서도 세대, 성별, 계층에 따라 다양한 언어 변종들이 공존하는데, 해당 지역 방언의 전체 틀에서 보면 이러한 다양한 변종들의 총합이 한 시기의 공시태를 형성한다.’라는 서술을 통해 ‘공시’의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특정 개인의 언어에서, 또는 특정 어휘에서 어간재구조화가 완료되었다 하더라도 해당 지역 전체에서 재구조화되기 전의 어형과 재구조화된 어형이 수의적으로 나타난다면 여기에 적용된 교체는 여전히 공시적인 고찰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형태소 내부에서 나타나는 ‘원순모음화 규칙’, ‘/ㅗ/→/ㅜ/ 규칙’, ‘/ㅓ/→/ㅡ/ 규칙’, ‘움라우트 규칙’, /ㅔ/→/ㅣ/ 규칙’, ‘구개음화 규칙’의 공시성과 통시성을 검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원순모음화의 경우, 고유어의 형태소 내부(오분에~요분에~요번에, (죽을) 뿐~뻔, (옷 한) 불~벌)에서 적용되기도 하고, ‘mƎri, pƎl:, pƎm:, pƎmurida’ 등에서처럼 동일한 환경임에도 적용되지 않기도 한다. 이처럼 고유어의 형태소 내부에서의 원순모음화는 동일한 환경에서도 어휘에 따라 적용되기도 하고 적용되지 않기도 하는 수의적인 특성을 보이는데, 대체로 2음절 이하에서 주로 나타나지만 2음절 이하라고 해서 반드시 원순모음화되는 것도 아니다. 여하튼 교체의 유무로 규칙의 공시성·통시성을 가를 경우 교체가 없는 형태소 내부이므로 여기에 적용된 원순모음화는 당연히 통시적인 규칙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볼 경우 원순모음화된 형과 그렇지 않은 형이 수의적으로 공존하는 이유, 그리고 동일한 환경임에도 원순모음화가 되지 않는 어형들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하기 어렵다. 이러한 사실은 원순모음화 규칙이 공시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즉, 원순모음화 규칙이 공시적으로 존재하지만 규칙 자체의 속성이 근대국어에 발생한 원순모음화와는 달리 수의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일한 해석이 /ㅗ/→/ㅜ/ 모음상승 규칙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ㅗ/→/ㅜ/ 모음상승은 특정 지역 방언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지역에 따른 차이보다는 오히려 세대 간의 차이가 더 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현상은 ‘한:도~한:두, 면:도~면:두, 포도~포두, 부조~부주, 별로~별루’와 같이 어휘형태소 내부에서 일어나거나, ‘볼수록~불수룩, 전에도~전에두, 같고요~같구요, 연필로~연필루’와 같이 문법형태소의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돈:~둔:’을 제외하면 대부분 2음절 이하에서, 종성 자음이 없을 때 주로 일어나지만, 동일한 조건에서 여전히 /ㅗ/를 고수하는 예도 많기 때문에 수의적인 양상을 보이며 특별히 조건 환경을 명시할 수 없는 특성을 보인다. 또한 ‘도로(道路), 네모, 세모, 마모(磨耗)’ 등에서와같이 어휘에 따라서는 적용되지 않기도 한다. /ㅗ/→/ㅜ/가 어두 음절로까지 확대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어두가 의미 변별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의미 손상을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 현상이 적용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동일 지역 내에서도 /ㅗ/형만을 사용하는 화자, /ㅜ/형만을 사용하는 화자, /ㅗ/형과 /ㅜ/형이 수의적인 화자가 있고, 또한 어휘에 따라서 /ㅜ/형이 나타나기도 하고 /ㅗ/형이 나타나는 등의 차이가 있으며, 동일 화자일 때에도 어떤 어휘에서는 /ㅗ/형을, 어떤 어휘에서는 /ㅜ/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은 곧 /ㅗ/→/ㅜ/가 공시적으로 여전히 진행 중인 변화(change in progress)임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즉, /ㅗ/→/ㅜ/ 모음상승은 비록 형태소 내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공시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원순모음화 규칙’, ‘/ㅗ/→/ㅜ/ 규칙’, ‘/ㅓ/→/ㅡ/ 규칙’, ‘움라우트 규칙’, /ㅔ/→/ㅣ/ 규칙’, ‘구개음화 규칙’들은 모두 형태소 내부에서도 여전히 공시적으로 살아 있는 규칙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휘 확산의 관점과 평행하게 규칙의 확산도 어휘에 따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짐으로 인해 이 규칙들은 형태소 내부에서 긴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교체의 유무로 규칙의 공시성과 통시성을 가르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논문은 음운 현상의 공시적 기술이 형태소 내부라는 환경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나의 음운 현상이 완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진행 중인 변화일 때, 형태소 내부에서는 수의적인 교체의 양상을 보이게 되고 이는 당연히 공시적 기술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의 본질과 그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형태소 내부의 음운 현상은 그 본질적 특성상 교체가 있을 수 없다.’라는 전제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는 ‘교체(alternation)’라는 개념의 정의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음운론에서 사용되고 있는 많은 다른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교체’라는 개념 역시 이론의 흐름과 연구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이며 해석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음운론적 기술에 있어 기본적인 개념의 정립은 필수불가결한 절차라고 하겠다. ‘교체’라는 개념이 어떻게 정의되고 해석되는가에 따라 음운 현상에 대한 기술의 기본적인 틀이 달라질 수 있음은 음운론 연구의 기본에 관한 의미심장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2. 국어 활용형에 적용되는 모음 축약(이진호)

  이진호의 ‘국어 활용형에 적용되는 모음 축약’은 공시론적 기술의 관점에서 형태소 경계를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모음 축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논문이다. 이-말음 어간, 우-말음 어간, 위-말음 어간에서 보이는 모음 축약이 공시적으로나 통시적으로 동질적인 현상이라는 확인에 바탕을 두고, 어떤 현상들이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면 공시론적으로도 단일한 방식으로 기술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한 방언 내에서 음운 현상의 일반화를 포착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서로 다른 방언의 대조 기술에서 동질적인 현상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체계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어 활용형에 나타나는 모음 축약은 일반적으로 (세부적인 도출 과정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둘 이상의 음운현상이 순차적으로 적용되어 나온 결과로 기술되어 왔다. 예를 들어, 이-말음 어간의 활용형들을 설명하기 위한 기존의 기술 방법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기어서 → 이겨서 → 이게서’와 같이 활음화와 이중모음 축약 과정을 순차적으로 거쳐 나온 것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우-말음 어간의 활용형도 ‘주어서 → 줘:서 → 조:서’와 같이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위-말음 어간의 활용형의 경우에는 ‘쉬어서’에 활음화와 이중모음의 축약 규칙을 적용해서는 ‘쇠:서’와 같은 활용형이 도출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도출 방식을 채택했을 때 설정해야 하는 여-축약 규칙, 워-축약 규칙의 공시론적 타당성 여부이다. 이들은 모두 활음화 규칙이 적용된 이후에만 적용될 수 있는 규칙들로서 그 공시적 실재가 의심된다고 할 수 있다. 즉, 활음화 규칙과 떨어져서는 존재하지 못하는 축약 규칙은 독립된 규칙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겠다. 또한, 국어에서 y나 w로 끝나는 어간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여-축약 규칙과 워-축약 규칙의 입력형은 순수하게 형태소의 결합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형태소와 형태소가 결합하면서 규칙의 입력형을 끊임없이 생성할 수 없다면 그 규칙의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여-축약 규칙이나 워-축약 규칙을 설정하지 않는다면, ‘이기어서 → 이기에서 → 이계서 → 이게서’나 ‘주어서 → 주오서 → ㅈw오:서 → 조:서’와 같이 어-전설화/원순화, 활음화, y/w-탈락의 순차적 도출 과정으로 기술하는 방식이 있다. 이와 같은 기술 방식에서는 원순모음 ‘오’에 의해 원순모음 ‘우’가 활음화될 수 있는지의 문제, ‘ㅈw오:서’와 같은 부자연스러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도출과정의 타당성 문제, 위-말음 어간의 활용형을 기술하는 데에는 부적절하다는 문제 등과 같은 새로운 문제점들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활음화에 이은 활음 탈락을 상정하는 대신 ‘이기어서 → 이기에서 → 이게서’나 ‘주어서 → 주오서 → 조:서’와 같이 어간말 고모음을 곧바로 삭제하는 동자질 삭제 규칙을 상정하여 기술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때 설정된 동자질 삭제 규칙은 그 실재가 의심되는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국어에서 ‘전설모음+전설모음’ 또는 ‘원순모음+원순모음’의 연쇄가 나타났을 때 같은 성질을 지닌 모음 연쇄 중 하나를 탈락시키는 동자질 삭제 규칙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논의를 거쳐서 이-말음 어간, 우-말음 어간, 위-말음 어간의 활용에 관한 통합적 기술을 위해 이 논문에서는 ‘이어 → 에:’, ‘우어 → 오:’, ‘위어 → 외:’와 같이 개개의 하위 규칙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모음 축약 규칙을 설정하고 있다. 이 기술 방법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전의 기술 방법과 달리 중간 단계를 설정하지 않고, 어간말 모음과 어미초 모음이 결합했을 때 곧바로 모음 축약이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무엇보다도 세 가지 유형의 모음 축약을 단일한 방식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듯 통시적 변화 과정과는 다르게 공시론적 기술이 이루어질 때, 자연성, 일반성, 일관성, 간결성 등의 조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는데, 제시된 모음 축약 규칙은 음성적 타당성을 지니고 있으면 비슷한 성질을 지닌 현상들을 일관된 방법으로 다루며 그 어떤 기술 방법보다 경제적이라고 주장한다.
  공시적 언어 자료가 통시적 변화의 결과물임에도, 통시적 변화 과정 자체가 공시론적 기술에 그대로 투영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음운론에서 공시와 통시의 구분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통시적 변화 과정과는 다르게 단일화된 축약 규칙의 확립은 새로운 공시적 기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단일화된, 하나의 완결된, 독자적인 과정으로서의 축약 규칙의 존재는 일반적인 음운론적 이해의 틀에서는 생소한 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축약이 독자적인 단일 음운 과정이라는 진술 자체는 명쾌하다. 그러나 단일한 음운 과정으로서의 축약의 성격 자체는 모호하기만 하다. 과연 축약이 어떤 언어 요소의 줄어듦이라는 결과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변화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역동적인 과정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을지는 오랜 논의와 검증이 필요한 문제하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축약을 동화와 탈락의 계기적인 과정의 결합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Chomsky & Halle의 SPE의 고민의 흔적을 역설적으로 되새겨 볼 수 있다고 하겠다.


        2.3. 고모음 탈락 현상과 관련된 몇 문제(김봉국)

  김봉국의 ‘고모음 탈락 현상과 관련된 몇 문제’는 경기방언에 나타나는 고모음 탈락과 그에 따른 보상적 장음화를 일으키는 예를 검토하고, 그들에 대한 공시적·통시적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내일~낼:, 다음~담:, 마을~말:, 무우~무:, 배우다~배:다’ 등의 예에서 나타나는 고모음 ‘이, 으, 우’ 탈락과 보상적 장모음화의 계기적 관계와 관련한 음운 현상에는 몇 가지 공시적·통시적 문제점들이 담겨 있다.
  공시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모음이 탈락한 ‘낼:, 담:, 배:다’ 등이 어두 음절의 위치에서 장모음을 갖는 1음절 어간인지, 아니면 동일한 모음이 반복되는 2음절 어간인지가 쟁점이 된다. 경기방언에서 ‘마을(村)’의 수의적 교체형인 ‘말:’이 어두 음절 위치에서뿐만 아니라(말:이 크다), 하나의 기식군 내에서의 비어두 음절 위치에서도 음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그 말:이 크다)은 고모음 탈락을 겪은 어간들이 2음절을 가진 어간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언권에서 광범위하게, 그리고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모음상승화 현상의 패턴이 ‘첨:~츰:, 젤:~질:, 놀:~눌:’ 등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고모음 탈락에 이른 보상적 장모음화를 경험한 어간들이 1음절 어간임을 강력하게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담:~댐:, 맘:~맴:’ 등과 같은 수의적인 움라우트 현상의 적용 양상이나 ‘돼:지~도야지(돼지), 샥:시~시악시(색시), 샴:~샘:(샘), 니알(내일)’ 등의 이중모음화의 설명의 타당성 여부 또한 이 어간들이 1음절 어간이라는 근거를 제공한다고 하겠다.
  통시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모음이 탈락한 어형들을 과연 고모음 탈락에 이은 보상적 장모음화라는 동일한 기제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을지, 아니면 모음동화나 다른 형성기제에 의해 설명할 수 있을지가 문제되며, 이렇게 논의된 형성 기제를 통해서 그 어형들이 통시적으로 어떤 변화 과정을 밟아왔는지가 문제가 된다. 고모음 탈락에 이은 보상적 장모음화라는 현상으로 보지 않고, 모음동화(다음>다암>담:), 약모음 탈락(다음>담:), 동일모음탈락(무우>무:), 재분석(메이다>메:다), 이화(싸움>쌈:, 새우젓>새:젖) 등의 다양한 형성기제에 의해서 나타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의 가능성 이전에, 이들을 모두 고모음 탈락에 이은 보상적 장모음화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묶어서 설명하는 것이 기술의 경제성을 제공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모음상승화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모음들이 음운 부류를 형성한다는 사실도 시사해줄 수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고모음 탈락을 경험한 예들이 통시적으로는 ‘다음>담:’과 같은 연속적인 변화 과정을 밟아온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 ‘다음’과 ‘담:’의 각각 분리된 형성 과정을 상정하는 방안보다 좀 더 합리적임을 알 수 있다.


        2.4. ‘말다(勿)’ 동사의 음운론과 형태론(유필재)

  유필재의 ‘“말다(勿)” 동사의 음운론과 형태론’은 {勿}을 의미하는 어간 ‘말:-’이 불규칙적인 교체의 양상을 보이게 된 이유와 ‘마라’와 ‘말아라’류의 공존형들이 생기게 된 원인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말:-’이 포함된 관용구를 정리하고 여기에서 나타나는 불규칙적인 교체를 기술하여 관용구의 음운론적 특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논문이다.
  말음이 ㄹ인 용언 어간들은 그 형태음운론적 교체의 양상이 불규칙적인데, 그 불규칙성은 이미 선행 연구들에서 상세하게 기술되어 왔다. 그런데 어간 ‘말:-’은 ㄹ어간에 속하면서도 교체의 양상이 다른 부분이 있어(가지 마라 - 살아라, 가지 마 - 살아), 독자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말:-’은 일반적인 ㄹ어간의 교체 양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으므로(가지 마라 ~ 가지 말아라 ~ 가지 말어라, 가지 마 ~ 가지 말아 ~ 가지 말어, 가지 마요 ~ 가지 말아요 ~ 가지 말어요), 이들 사이의 관계를 공시적으로 기술해 줄 필요가 있다.
  우선 각각 ‘하라체, 해체, 해요체’에 존재하는 ‘말:-’ 활용형의 공존형들 중 ‘마라, 마, 마요’는 표준어 규정에서 표준어로 채택된 ‘규범형’이다. 따라서 ‘말아라, 말아, 말아요’ 등의 나머지는 현실 언어에는 쓰이고 있지만 비표준형이다. 그런데 규범형으로 채택된 ‘마라, 마, 마요’는 현대국어의 공시적인 문법에 의해 생성된 형태가 아니라 이전 시기의 활용형인 ‘마라’가 언어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화석처럼 남아 있다가 현대에 와서 ‘마’와 ‘마요’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엄밀히 말하자면 ‘마라’만 화석형이지만 설명의 현의상 ‘마라, 마, 마요’ 모두를 ‘화석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반면에 ‘말아라, 말아, 말아요’ 및 어미 ‘-어X’가 결합된 형태들은 현대국어의 공시적인 규칙에 의해 만들어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어간 ‘말:-’의 불규칙성의 원인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우선 후기 중세국어에서의 라체 명령법의 경우 ‘말라 RH’가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마라 RH’가 제한적으로 공존하고 있었다. 이 ‘마라 RH’는 17·8세기의 근대국어 자료에서도 제한적으로 나타나다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좀 더 자주 나타나게 된다. 현대국어에서처럼 ‘마라’가 일반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신소설이 간행된 시기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신소설에서는 하라체 명령법 형태로 ‘마라, 말라’ 외에 ‘말아라, 말어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즉, 신소설이 간행되던 시기가 되면 ‘말다(勿)’의 하라체 명령법 형태로 ‘말라’ 외에 ‘마라, 말아라, 말어라’가 공존하게 되는 셈인데, ‘말라’는 전통적으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것이고 ‘마라’는 이전 시기의 활용형이 그대로 전승된 것이고 ‘말아라, 말어라’는 근대국어 시기에 들어 새로이 어미가 된 ‘-아/어라’가 결합된 형태인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공존 양상은 공시적인 문법규칙과 이전 시기 언어의 잔재가 동시에 활용형 형성에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거나 말거나, -고 말고, -느냐 마느냐, -는 둥 마는 둥, -는 마는지, -다(가) 말-, -을까 말까, -(이)다 마다, 마다 않-, 마지 못하-’ 등과 같은 관용구에 포함된 ‘말:-’의 교체 양상도 일반적인 용언 ㄹ어간의 그것과는 다르다. 현대국어에서 용언 어간말의 ‘ㄹ’은 ‘ㄴ, ㅅ’ 앞에서는 탈락하지만(다니까, 다십니까?, 甘) ‘ㄷ, ㅈ’ 앞에서는 탈락하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달다고 하지 않았다, 달지 못하다), ‘마다 않고, 마지 못해’ 등에서와같이 ‘말:-’의 어간말 ‘ㄹ’은 ‘ㄷ’와 ‘ㅈ’ 앞에서 각각 탈락한 상태로 나타난다. 물론 이와 같은 탈락은 관용구에 포함된 ‘말:-’에 한정된다(cf. 말더라, 말지). ㄹ탈락의 환경이 관용구에서 달라지는 것은 관용구가 언어 변화에서 하나의 단위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원래 용언 어간말 ㄹ의 탈락 환경은 이전 시기에는 현대보다 훨씬 넓었다. 즉, 후기 중세국어에서는 ‘ㄷ, ᅀ, ㅈ’ 앞에서도 ㄹ탈락이 일어났는데, 근대국어 시기를 지나면서 ㄹ탈락 환경에서 ‘ㄷ, ㅈ’는 배제되었다. 그러나 관용구에 포함된 ‘말:-’은 이런 환경의 변화를 겪지 않고 보수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말다(勿)’가 포함된 관용구는 이전 시기 규칙의 흔적을 가지고 있고 변화의 흐름에도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3. 음운과 음운현상의 성격

  음운 현상이 음운들의 개별적인 성격과 상호 관련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음운 현상의 기술이 관련 음운에 관한 정확하고 체계적인 이해를 전제하여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 음운(분절음 또는 운율 요소)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통하여 음운 현상의 근본적인 동인과 성격을 밝혀 보고자 하는 시도는 연구 방법론적 측면에서의 진부함을 넘어서는 소중한 작업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1. /ㅅ, ㅈ, ㅊ/의 음가와 구개모음화: 연변 훈춘 지역 조선어를 중심으로(소신애)

  소신애의 ‘/ㅅ, ㅈ, ㅊ/의 음가와 구개모음화: 연변 훈춘 지역 조선어를 중심으로’는 연변 훈춘지역 조선어(훈춘지역어)를 주된 자료로 삼아 /ㅅ, ㅈ, ㅊ/의 음가 확인을 통하여 구개모음화의 음운론적 동인을 밝히고, 구개음화와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이 현상이 지니는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는 논문이다.
  근대국어 단계에 출현한 ‘스, 즈, 츠 > 시, 지, 치’ 현상이 자음 음가의 변화 및 구개음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이 당연하다면, /ㅅ, ㅈ, ㅊ/의 음가 및 구개음화와의 관련성 하에서 이 현상을 다룸으로써, 기존의 연구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이 현상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 좀 더 용이할 것이다. 우선 다양한 역사적인 사실 및 여러 방언적 사실들, 그리고 논리적인 가능성 등을 고려했을 때, ‘스, 즈, 츠 > 시, 지, 치’ 현상을 구개성 동화의 일종인 ‘구개모음화’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스, 즈, 츠 > 시, 지, 치’ 현상이 선행 자음의 구개성에 의한 동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 /ㅅ, ㅈ, ㅊ/은 음운 목록상 치조음 /s, c, ch/이며, /i, y/ 앞에서만 각각의 경구개 변이음 [š, č, čh]를 가지는 훈춘지역어에서는 구개모음화 현상이 발생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 이 지역 노년층 화자들의 발화에서 순수한 음변화로서의 구개모음화가 발생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개음화와 구개모음화 현상의 관계와 관련해서, 두 현상 모두 인접음의 구개성에 의한 동화 현상이란 점에서는 동일하나, 구개음화는 /ㅅ, ㅈ, ㅊ/의 경구개 변이음만 존재하는 상태에서도 발생할 수 있으나, 구개모음화는 이들 자음의 전면적인 구개음화를 전제하고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3.2. 동남방언 음운론 연구를 위한 몇 가지 제안(임석규)

  임석규의 ‘동남방언 음운론 연구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은 경북북부방언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기존의 동남방언의 음운론 연구에 나타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 해결 및 보완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논문이다.
  성조가 단어의 의미를 변별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동남방언과 같은 성조 방언의 연구에서 성조에 대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인식이 없이는 해당 방언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날 수 없다. 그럼에도, 동남방언에 대한 음운론적 연구에서 성조와 분절음은 따로 분리되어 연구되어 온 것이 일반적이다. 성조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도 분절음과 관련된 논의를 해야 할 때가 있고, 분절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도 성조와 관련된 논의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분절음 연구, 특히 음소체계를 설정하는 논의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최소대립쌍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점이었다. 곧, 최소대립쌍의 성조가 다른데도 분절음만을 고려하여 최소대립쌍을 제시한 논의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조방언의 경우 ‘말(馬) : 물(水) cf. 말이(HL), 물이(HH)’는 모음뿐만 아니라 성조까지도 대립되기 때문에 최소대립쌍으로서 적절하지 못하다. 국어와 같이 어미가 발달한 언어에서 최소대립쌍의 규정은 ‘하나의 기식군을 이루면서 성조 또는 음소 어느 하나만의 대립으로 화자들이 그 의미 차를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립어가 될 수 있다.’라는 범위까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자란다[LHH, 잘#한다], ㉯자란다[HHL, 자라고(尺)#한다], ㉰자란다[HLL, 자라고(睡)#한다, 長], ㉱자란다[RHL, 저#아이란다], ㉲자:란다[L:HH, 부사 ‘잘’의 표현적 장음, 잘#한다], ㉳자란다[FLL, (실을) 자아내라고#하더라]’에 제시된 예들은 훌륭한 대립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복수기저형을 인정한다면 성조 방언에서는 성조까지도 고려한 복수기저형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동남방언 연구에서 하강조는 둘째 음절 이하에서도 그 성조가 유지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두 음절로 인식되기도 하였지만, 이 논문에서는 하강조를 상승조와 동일하게 단음절로 파악하고 있다.
  공시적인 관점에서의 개별 지역어에 대한 연구는 곡용과 활용에서 나타나는 음운 과정을 위주로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곡용과 활용에서 나타나는 음운 과정만으로 국어의 공시적인 모습이 모두 규명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고, 따라서 단어 내부, 단어경계 등의 환경으로까지 확대하여 일반화하는 것이 음운론적 동기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곡용어간말 ‘ㄹ’ 뒤에서의 경음화 과정(길+도→길또(路, HH), 질+데로→질떼로(路, HHL), 물+조차→물쪼차(水, HHL))의 분석에서 그 환경을 단어경계(물쪼(물 줘, HH), 물쪼은(好, HHL), 불딸라고(불 달라고, HHLL), 말떼네(化, RHL))나 고유어 형태소의 내부(물씬, 살짝, 벌떡)는 물론 파생어(딸뜰, 아들뜰)로까지 확대한다면, ‘활용에서의 연쇄를 제외하면 ‘ㄹ’과 ‘[+coronal]자질을 가진 평음’이 이러지는 경우 후행자음은 경음화된’고 일반화할 수 있다. 모음 뒤에서 j나 w가 수의적으로 첨가되는 활음첨가(영수야, 기+에→기예~기에(耳, HL))의 경우에도 ‘미안(未安, RH)~미얀’과 같이 단어 내부에서나 ‘이#애~이#얘’와 같이 단어경계에서도 활음 첨가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아무런 형태론적 제약 없이 기술할 수도 있다. 결국, 곡용과 활용 패러다임에서 나타나는 음운과정에만 경도된 시각을 극복한다면, 음운현상의 본질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3.3. 하강 이중모음과 부동 이중모음의 음변화(정인호)

  정인호의 ‘하강 이중모음과 부동 이중모음의 음변화’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채록된 방언자료들과 현대 방언자료들의 분석을 통하여 하강 이중모음(fallende diphthonge)과 부동 이중모음(schwebende diphthonge)의 분류에 대한 타당성을 논하고 나아가 이들 이중모음의 변화 양상을 고찰하고 있는 논문이다.
  우선, 이중모음을 ‘동일한 음절 내에 존재하는 다른 두 모음의 연쇄’로 정의하고 중부방언에서 순수한 이중모음은 ‘위[ui], 의[ɯi]’만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중세국어의 ‘애’형 이중모음은 ‘ㄱ’탈락에 예외가 존재한다는 점과 ‘애’형 이중모음이 단모음 ‘이’와 동일한 음운론적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들어 /Vi/로 해석하고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외국인에 의해 전사된 방언자료들과 현대 방언자료들의 분석을 통해 ‘위[ui]’는 ‘외[oi]’와 다른 변화를 경험하였고, ‘의[ɯi]’와 유사한 변화를 경험하였음을 추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애’형 이중모음은 그 변화 과정을 살필 때 음성적 특성에 따라 하강 이중모음(ai, əi, oi)과 부동 이중모음(ui, ɯi)의 두 가지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하강 이중모음은 핵음이 선행모음으로 확정되어 있는 이중모음이며, 부동 이중모음은 핵음이 유동적인 이중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하강 이중모음과 부동 이중모음은 그 변화 양상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하강 이중모음은 약간의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음운론적 환경에 관계없이 축약에 의한 단모음화를 경험한다. 하지만, 부동 이중모음은 어느 특정한 변화 방향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방언에 따라 또는 동일한 방언 내에서도 음운론적 환경에 따라 ‘변화 ㉮’(㉠ ui > u 또는 i, ㉡ ɯi > ɯ 또는 i ), ‘변화 ㉯’(㉠ ui > u>ü, ㉡ ɯi > ɯ> i), ‘변화 ㉰’(㉠ ui > u͍i >wi, ㉡ ɯi > ɯ͍i > ɯi)의 세 가지 변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국어 방언들에서 부동 이중모음은 대체로 ‘비어두 위치 ⇒ 어두 위치’의 순서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는데, 비어두에서는 ‘변화 ㉮’를, 어두에서는 ‘변화 ㉰’(또는 ‘변화 ㉯’)를 경험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3.4. 원평북방언과 전남방언의 음운론적 대조 연구: 용천 지역어와 화순 지역어를 중심으로(정인호)

  정인호의 ‘원평북방언과 전남방언의 음운론적 대조 연구: 용천 지역어와 화순 지역어를 중심으로’는 현대국어의 하위방언인 용천어와 화순어를 대상으로 하여 두 지역어의 음운체계와 음운배열에 대한 공시론적인 대조와 두 지역어의 음운변화 양상에 대한 통시론적 대조 작업을 병행하여 각각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있는 논문이다.
  두 지역어는 모음의 목록(용천어-8모음, 화순어-9모음)과 대립 체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자음의 목록(19자음)은 두 지역어가 동일한데 ‘설단음’의 대립 양상에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반모음으로 2개(y, w)가 있으며 ‘음장’이 운소로서 기능한다는 점은 두 지역어가 완전히 동일하다. 한 음절을 구성하는 음소들의 제약은 두 지역어가 완전히 동일하다. 그런데 한 음절 내에서의 음소 연쇄에서, ① ‘반모음-모음’의 연쇄(상승 이중모음), ② ‘전설음-y’의 연쇄, ③ ‘설면음-으’의 연쇄, ④ ‘ㄴ-이’의 연쇄 등은 그 제약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음절연결에서의 음소연쇄 체약도 두 지역어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제2유형(V1$CV2)에서 개재자음이 ‘ᅌ’일 때와 제3유형(V1C1$C2V2)에서 ‘장애음’ 뒤에 ‘ㅎ’이 놓일 때에는 그 제약에서 두 지역어가 차이를 보인다.
  두 지역어의 공시음운론적 대조와 내적 증거에 의해 설정할 수 있는 最古 단계의 공통적인 모음체계와 자음체계는 다음과 같다. 이로부터 두 지역어는 때로는 동일하고 때로는 상이한 ‘계열상의 변화’를 경험하여 현대 두 지역어의 모음체계와 자음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모음체계와 관련해서 동일한 계열상의 변화로는 ‘’가 비음운화한다는 것과 이중모음 ‘애[ai], 에[əi], 외[ɔi]’가 음운화(ai>ɛ, əi>e, ɔi>œ)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상이한 계열상의 변화로는 용천어에서는 ‘외’가 비음운화(œ>wɛ)하는 반면 화순어에서는 ‘위’가 음운화(ui>wi>ü)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아울러 화순어에서만 ‘오, 외’가 재음운화(ɔ>o, œ>ö)하고, ‘에’가 비음운화(e>i)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모음에서의 ‘통합상의 변화’는 체계와 비교적 관련이 적은 변화(모음충돌의 변화)와 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변화(원순모음화와 비원순모음화, ‘으>이’ 전설모음화, 움라우트, y계 상승 이중모음의 변화, 고모음화)로 나눌 수 있다. 두 지역어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변화에서 더 큰 차이를 보인다. 원순모음화와 비원순모음화, 움라우트, y계 상승 이중모음의 변화 등에 있어서 두 지역어의 차이는 전설원순모음의 유무에 기인한바 크다. 그리고 ‘으>이’ 전설모음화에서의 차이는 ‘ㅅ, ㅈ’ 설면음화 시기와 정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자음 변화에 대한 통시론적 대조에서 동일한 계열상의 변화로는 유성마찰음이 비음운화한다는 것, ‘ᅘ’이 비음운화한다는 것, ‘ㅅ, ㅈ’이 재음운화한다는 것(그 시기와 정도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등을 들 수 있다. 상이한 계열상의 변화로는 용천어에서만 ‘ㄷ, ㄴ’이 재음운화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자음에서의 ‘통합상의 변화’는 체계와 관련이 적은 변화(모음 간 자음의 변화, 자음연쇄의 변화)와 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변화(설면음화, 어두 ‘ㄴ’의 변화)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두 지역어의 변화 양상이 거의 동일한데 다만 몇 가지 변화(모음간 ‘ᅌ’의 변화, ‘C#yV’에서의 음절경계 변화, ‘C#h’에서의 ‘ㅎ’탈락)에서 차이를 보인다. 후자는 두 지역어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용천어에서 ‘ㅅ, ㅈ’의 설면음화가 아직 진행중이라는 점과 ‘ㄷ, ㄴ’이 설단-치음으로 실현된다는 점에 기인한다.
  음운론에 있어 비교에 의한 분석의 역사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길다고 할 수 있다. 두 언어나 방언 사이의 동질성이나 유사성에 초점을 맞춘 비교의 방법은 이미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언어 연구의 방법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대조의 방법은 상대적으로 밀접한 계통적 또는 유연적 관계를 갖지 않은 언어들 사이의 이질성이나 차이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이질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동질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선 기준의 설정이 상대적으로 모호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조의 방법을 취한 언어 연구에서 대조의 기준 확립은 연구의 기본이 되어야 함과 동시에 결코 비교의 방법과 혼동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교의 방법에 의거한 대조 연구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음운론에서의 제약

  국어 음운론 분야에서 최적성 이론에 대한 관심이 계속해서 높아져 가고 그 이론의 틀에 기반한 연구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익숙한 이론의 흐름과 연구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 이후 음운론 연구의 틀과 방향을 이끌어 왔던 순차적인 규칙 중심의 생성 이론과는 달리, 제약 중심의 병렬적 언어 모델을 주창하는 최적성 이론(Optimality Theory)은 음운론의 근본적인 이론적 패러다임의 교체를 요구하는 혁신적인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병렬적 언어 모델은 음운론 분야를 넘어서 형태론, 통사론 등의 다른 분야로까지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새로운 이론의 틀 속에서 국어 음운 현상이 새로이 분석되고 논의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들이 단순한 이론의 적용 차원에 머문 채 국어 음운론 연구의 폭과 깊이를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결과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최근 양산되고 있는 최적성 이론에 의한 연구들이 언어 이론 자체의 본질적 문제를 보다 밀도 있게 다루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과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 언어 과정이 병렬적이어야 하는지, 왜 제약이 규칙을 대체해야 하는지, 제약은 어떻게 기술되어야 하는지, 과연 제약 중심의 분석이 규칙 중심의 분석보다 설명적 타당성을 더 가지는지 등과 같은 수많은 문제에 대한 좀 더 치열한 이론적 논의가 선행되어야만 그 이론의 정확한 적용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4.1. 국어의 음절화와 패러다임 통일성(박선우)

  박선우의 ‘국어의 음절화와 패러다임 통일성’은 국어의 음절화에 나타나는 불투명성이 출력부-출력부 충실성(Output-Output Correspondence)의 개념에 바탕을 둔 패러다임 통일성(Paradigm Uniformity)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논문이다.
  음운론에서 음절화라는 과정은 형태적, 음운론적 경계 혹은 어휘부 층위에 따라 순환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으로 간주되어 왔다. 따라서 ‘음절말 자음중화’나 ‘자음군 단순화’, ‘자음동화’ 등의 음운규칙들 역시 단계적 도출과정에 의해 순차적으로 적용된다고 설명되어 왔다. 재음절화의 입력형은 1차적 음절화의 출력형이므로 순환적 음절화는 ‘음절화→재음절화→표면형’과 같은 3단계의 도출과정 및 ‘중간 도출형’을 요구한다. 그러나 도출과정 없이 입력부와 출력부의 두 단계의 층위만을 인정하는 ‘최적성 이론(Optimality Theory)’의 관점에서 ‘순환적 음절화’는 이론의 기본적 전제와 상충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 중간 도출형이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순차적인 도출과정이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최적성 이론의 병렬적 언어 모델에서 순환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던 음절화 과정의 분석을 위해 제시한 방안은 ‘출력부-출력부의 대응제약’을 바탕으로 한 ‘패러다임 통일성’이라는 개념이다. 우선 최적성 이론의 문법구조의 기반이 되는 입력형과 출력형, 어기(base)와 중첩부(reduplicant) 사이의 대응관계에 의한 충실성 제약을 ‘하나의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일군의 형태들’에 확대 적용하는 것, 즉 ‘출력부-출력부 충실성 제약’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패러다임 통일성’이라는 개념이 그러한 출력부-출력부 대응제약의 핵심을 형성하는 것으로, ‘동일한 형태적 어기(morphological base'를 공유하는 단어들이 음운론적으로 공통된 특성을 가진 조직망(network)를 형성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패러다임 통일성은 그동안 최적성 이론에서 문제가 되어왔던 ‘순환성’과 ‘불투명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주로 통시적 언어변화의 연구에서 다루어졌던 유추의 개념을 제약기반의 공시적 분석에 도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패러다임 통일성이라는 개념이 구체화된 것은 ‘어기 동일성(Base-Identity)’과 ‘동형 명시(Uniform Exponence)’라는 제약들에 의해서이다. 어기 동일성 제약은 형태적으로 동일한 단어라면(값이, 값도) 다른 형태소와 결합하는 경우에도 단독 출력형(값[갑])과 동일해야 한다(값이[가비], 값도[갑또])는 제약으로서 단어들 사이의 형태적 관계에 대한 투명성을 보장하고 어휘적 접근을 용이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특히 어기가 항상 독립된 어휘항목을 구성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순환이론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동형 명시 제약은 어휘 항목의 실현(형태소, 어간, 접사, 단어)에 있어서 나타나는 차이를 최소화하는 제약으로서 어기 동일성과 유사하지만 출력형들을 비교하는 기준이 되는 어기 없이 패러다임 전체를 한꺼번에 평가함으로써 패러다임 평준화(paradigm leveling)을 유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어기 동일성 제약과 동형 명시 제약의 작용은 유추의 공시적인 효과를 유발하고, 이를 통하여 국어 음절화를 설명할 경우, 단어합성과 접두파생에서 과도적용된 것으로 보이는 음절말 중화(옷안[오단], 덧옷[더돋])를 순환적 도출과정 없이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두 제약에 의한 분석은 패러다임 통일성 효과에 대한 중요한 일반화를 보여주고 있다. 즉, ‘유표성≫패러다임 통일성≫충실성’의 제약 위계에서 패러다임 통일성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만약 패러다임 통일성 제약이 일반적인 충실성 제약보다 하위에 있는 위계를 가진 언어를 가정할 경우 최적형의 선택에 아무런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므로 패러다임 통일성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까지의 이론적 전개 과정만을 고려할 때, 최적성 이론은 그 어떤 언어 이론보다도 강력한 설명 기제를 상정하고 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최적성 이론에서의 제약과 생성 이론에서의 규칙을 비교해 보면 쉽게 드러난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하나의 음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제약이 필요한가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구체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최적성 이론에서는 무한한 수의 제약을 허용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어떠한 (특이한) 성격을 가진 제약의 존재도 부정할 방법도 필요성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분석의 자유’를 주기도 하지만, 주관적 분석의 오류 또한 자유롭게 보장하고 있다. 사실, 하나의 음운 현상에 대한 (최적의) 최적성 이론적 분석에서 어떤 제약이 몇 개 필요한지를 제약할 방법을 이론적으로 제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최적성 이론을 적용한 연구들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음운 현상이 ‘어떻게’가 아니라 ‘왜’ 나타나는지를 설명적 타당성(explanatory adequacy)을 가지고 분석하는 방법에 대해 최적성 이론은 여전히 체계적 논의를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4.2. “-으X”계 활용어미의 음운론적 고찰(박종희)

  박종희의 ‘“-으X”계 활용어미의 음운론적 고찰’은 ‘-으X'계 활용어미에 나타나는 음운론적 교체를 ‘잠재모음(latent segment)’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논문이다.
  이른바 ‘-으X’계 활용어미 ‘-으니, -으며, -으러, -으시’ 등이 환경에 따라 보이는 ‘-으X~X’ 교체 현상은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되어 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기저에 ‘으’를 설정하느냐 설정하지 않느냐에 따라 갈라지는 ‘으’ 탈락설과 ‘으’ 삽입설, 그리고 선행 음절에 따라 상보적 분포를 보이는 이형태로 보는 쌍형설 등이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탈락설은 그 동기와 자연성이 미진한 ‘ㄹ’ 뒤 ‘으’ 탈락 규칙과 외재적 규칙순, 그리고 단모음화 및 재구조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크고 작은 문제들을 보여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비판은 삽입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삽입 환경을 전혀 예측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삽입의 음운론적 동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수 기저형을 상정하는 쌍형설은 어미에 ‘-으니’와 ‘-니’가 각각 존재하면서 주어진 환경에 따라 한쪽이 선택된다는 주장이다. 쌍형설은 나타나는 현상을 그대로 기술하고 있지만 그것 자체로서 현상에 대한 음운론적 설명을 결여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으X~X’ 교체 현상을 지배하는 모음 ‘으’를 잠재모음으로 설정하여 음운론적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잠재모음은 뿌리마디(root node)를 갖지 못한 모음이므로 일반 모음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그리고 기저형에 존재하기 때문에 음성으로 실현되는 모음의 성격과 종류를 예측하기가 어려우며, 또한 그 분포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잠재모음은 浮動의 자질들로 구성된 소규모 단위여서 그 자체로는 운율 단위인 모라(mora)나 음절에 직접 결합을 이루지 못하므로 배치(parsing) 과정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기저상의 잠재모음이 표면상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뿌리마디를 받아야 하는데, 제약의 계층으로 이루어진 문법에서, 이를 동기화시키는 것은 음절 접촉시의 정형 제약인 ‘앞열≧뒤열’임을 알 수 있다. 음절 경계에서 앞 분절음의 열림도는 뒤 분절음의 열림도보다 크거나 같아야 하므로, 이를 지키기 위해 하위 등급의 뿌리마디 삽입금지 제약을 위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라, -이여, -이야, -이나, -이고’ 등의 ‘-이X’계 조사들도 환경에 따른 ‘-이X~X’의 특이한 교체형을 나타내는데 여기에서의 ‘이’도 잠재모음으로 보고 있다. 기저상에 잠재모음으로 존재하다가 제약들의 상호 작용에 의해 뿌리마디를 부여받아 표면상에 ‘이’로 실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잠재모음 ‘으’와 ‘이’는 같은 기제에 의해 출현한 것이다.
  국어 음운론에서 소위 ‘-으X’계 활용어미와 관련된 교체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지는 오랜 논의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곧 ‘-으X’계 활용어미의 기저형을 어떻게 상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고 하겠다.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삽입모음의 관점과 모음탈락의 관점 사이에서의 논의를 거쳐 구체음운론의 입장이 극도로 강조된 복수 기저형의 관점이 해석의 대세와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잠재모음’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잠재모음’에 근거한 해석의 본질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 보면, 그것이 결국에는 삽입모음의 관점과 모음탈락의 관점의 문제점을 동시에 피해가고자 하는 중도적인 관점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잠재모음’이라는 개념의 존재가 음운론적 해석의 범위를 넓혀 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과 ‘잠재모음’이라는 새로운 추상적 개념의 등장이 음운론적 설명의 힘을 보다 과도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서로 대척점에 놓여 평행하게 굴러가는 해석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축의 대립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적절한 조정과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개별 연구자의 몫일 것이다.


  5. 결론

  지금까지 대표적인 몇몇의 연구들을 중심으로 하여 한 해 동안의 음운론 분야의 연구 경향과 흐름을 개략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여느 해보다 많은 연구 실적이 축적된 한 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의 전반적인 흐름에 관한 간략한 논의를 통해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선 음운론 분야에서의 이론적인 주제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개별음운의 자질과 자질 체계의 문제, 기저와 표면을 중심으로 한 음운론 기술에서의 표시 층위의 문제, 공시적 음운현상의 공시론적 기술과 통시적 음운현상의 공시적인 음운 기술의 문제, 음장과 성조 등의 운율적 자질의 음운론적 위치와 기능에 관한 문제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음운론 논의의 중심에 있어 왔던 근본적인 주제들임에도, 여전히 많은 논의의 여지를 안고 있는 주제들이라고 하겠다. 언어 연구에 있어 자료와 이론이 연구의 두 가지 기본 바탕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와 같이 음운론 이론의 근본 주제들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바람직한 방향으로 연구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음운론의 이론적인 측면에서의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경향은 최적성 이론이라는 새로운 이론의 등장과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인 제약들의 위계관계를 바탕으로 한 병렬적인 언어 모델을 상정한 최적성 이론은 기존의 규칙 중심의 직렬적인 생성 언어 모델을 대체하고자 하는 새로운 이론으로서, 지난 십여 년 동안 음운론의 주류 이론으로서 자리 잡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어 음운론 분야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론으로서의 세력을 확장해 가면서 지속적으로 이론적 논의의 불씨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최적성 이론에 기반을 둔 많은 연구가 단순한 이론의 적용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문제점을 동시에 지적할 수 있다. 최적성 이론의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제약’의 성격에 관해서만 하더라도 많은 미해결의 질문들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음운 현상에 관한 다수의 가능한 최적성 이론적 설명들 중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 설명인가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척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어떤 성격을 가진, 몇 종류의 제약이, 어떤 위계 관계를 통해 하나의 음운 현상을 지배하는지를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이론적 타당성에 관한 설득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로운 이론의 적용 이전에 그 이론의 본질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음운론을 포함한 국어학 전 분야에 걸쳐서 연구 업적들의 급속한 양적 팽창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국어학 연구에서의 확고한 추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연구 업적의 증가가 지니는 긍정적인 영향을 굳이 부인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동시에 지니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경계를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한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음운론 연구들이 지나치게 미시적인 관점으로만 흘러 하나의 큰 주제 속에서 개별 현상들을 포괄하는 거시적 관점이 점점 위축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전반적인 경향과 일정 부분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의 양적 팽창에 걸맞은 연구의 질적 성장과 다양성의 확대가 확보될 수 있는 방안이 신중하게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하겠다.
  필자의 단견과 게으름으로 해서 많은 옥고가 논의에 포함되지 못한 점에 대해 너그러운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또한, 논의에 포함된 논문들도 단순히 내용 소개의 수준에만 머물렀거나, 논문의 핵심적 내용이나 성과를 소홀히 다루기도 했을 것이다. 더구나 논문의 주제나 연구 방법에 대한 어설픈 평가와 비판이 오히려 해당 논문의 정확한 이해에 걸림돌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실수와 모자람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표하고 싶다. 지면과 시간의 제약을 변명의 구실로 들며, 글을 맺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