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론


고 창 수 / 한 성 대

1. 머리말
    2000년도 형태론의 경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말뭉치에 기반한 통계적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과 전문 잡지 『형태론』 출간에 의한 비판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연구 모형을 위한 중심적 이론틀의 부재로 연구 성과들이 체계적으로 집약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앞의 두 요소들은 긍정적인 반면 뒷 요소는 앞으로 한국어학이 발전하는 데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과학적 언술들이, 기대고 있는 모형 없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지금의 형태론 연구가 특별히 기대려는 중심적 이론틀을 부단히 모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뚜렷한 목표 없이 연구 소재들이 산발적으로 전개되기도 하고, 비판 문화 역시 연구 대상의 특이성에 한정하여 논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론틀을 중시하지 않는 연구는 하나의 과학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점을 흐릴 수 있다. 지난 100년의 한국어학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움직여져 왔다. 하나의 관점은 한국어 연구가 한민족의 정체성 확립에 중요하며 또 한민족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식 아래, 실용적 운동을 주도해 왔다. 또 다른 관점은 한국어의 연구가 여타의 선진 과학 문물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위상을 획득해야 하며, 한국어의 연구가 언어학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과학으로서의 언어학을 주도해 왔다. 최근 들어 말뭉치 기반의 통계적 연구는 한동안 빛을 발하지 못했던 전자의 발전적 부흥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후자의 관점은 이른바 생성문법의 퇴조 이후에 이론틀의 중심을 갖추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음에서 2000년도의 형태론 연구 동향을 요령 있게 아우르기 위하여, 상기 두 관점에 의한 연구가 어떻게 논의로 발전되어 왔는지를 살피기로 하겠다. 논의의 방향성을 살피기 위해 먼저 박사 학위 논문과 단행본류를 중심으로 논점의 가닥들을 소개하고, 학술지들을 중심으로 개별 논문들이 어떻게 논점에서 논전을 형성하고 있는지 서술하기로 한다.

2. 학위 논문과 단행본
    안효경의 <현대국어 의존명사 연구>는 말뭉치 자료를 기반으로 하여 의존명사 목록을 작성하고 그 특성을 규명한 것이다. 이와 같이 말뭉치를 기반으로 대상 목록을 작성하는 것은 전산언어학과 같은 응용언어학뿐 아니라, 이론 언어학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 말뭉치를 이용하는 정도가 제한적이며, 이용 방법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말뭉치 기반의 또 다른 연구로 정희정의 『한국어 명사 연구』가 있다. 연세대학교 언어정보개발 연구원의 말뭉치 기반 국어 연구 총서의 6번째인 이 연구는 명사가 체언으로서 가지는 기능 이외의 기능을 말뭉치 자료에 기반하여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연구자는 명사가 조사 없이 사용하여 관형어나 부사어 그리고 기타 문법화된 요소로 쓰임을 관찰하여 체계화하였다.
    남윤진은 『현대국어의 조사에 대한 계량언어학적 연구』에서 조사에 대한 이론적 고찰과 계량적 연구를 아울러 시도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앞으로 자연어처리를 비롯한 전산언어학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 기대된다. 이 논문은 조사의 개념 정립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조사 연구의 이론적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통계 기반의 연구들이 자료 처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이론적 설명을 부가하지 않는 전통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전산언어학이라는 독립 분과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말뭉치 기반이나 전산언어학의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연구 주제들이다. 이들이 수행하려는 연구 목적은 이제까지의 한국어 연구에 부과된 목적과 다른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연구 목적을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관련 논문의 구성에 대한 의견들이 집약되어야 할 것이다.
    홍종선을 중심으로 연구된 『현대국어의 형성과 변천』은 근대 전환기 이후 오늘까지 한국어가 변해 온 모습을 자료를 중심으로 조감한 것이다. 이 연구는 말뭉치를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 개화기 자료를 꼼꼼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 중심의 연구에 합당한 것이다. 개화기의 연구는 이제까지 현대 한국어의 연구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공시태의 범위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현 시대의 언어 직관과 마주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제 현대 한국어의 연구가 한 시대를 마감하면서, 현대 초기의 한국어 자료에 대한 체계적 정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 있는 연구라고 하겠다.
    배현숙의 <국어 용언의 문법화 연구>는 용언이 의미변화를 일으켜 문법적 기능을 갖게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문법화는 그간 산발적으로 관찰이 이루어져 왔으나, 용언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소견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법화의 연구가 역사적 연구에 가치를 두는 것인지 현대 한국어의 면모를 밝히는 데에 의미 있는 것인지에 대한 목적 의식이 잘 드러나 있지 않다.
    문법화에 대한 또 다른 논문으로 이용의 『연결어미 형성에 관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는 명사구 보문 구성 또는 명사화 구성이 연결 어미가 되는 과정을 통시적으로 살피면서, 통사적 구성이 어떠한 조건에서 문법화하는 지를 밝히고 있다. 두 논문에는 문법화를 일으키는 몇 가지 원리가 제안되어 있는데, 이 원리들이 하나의 연구 목적에 의해 통합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 요청된다.
    이양혜의 『국어의 파생접사화 연구』는 실사의 문법화가 아니라, 접사의 기능 변이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그러나 이 논의는 문법의 기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론적인 전제가 투철할 것이 요망된다. 즉 굴곡접사가 파생접사로 변화한다는 것과 굴곡접사가 접미된 형태가 기능 전성한다는 것 사이에 이론적인 명시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선희의 <조사 -를의 의미와 그 문법적 실현>은 조사 '-를'의 문법적 위상을 원형 의미역 이론에 입각하여 원형 대상역을 의미하는 문법 요소로 관찰하였다. 이 논의는 '-를'의 의미 기능을 문장 구조에 의해 다양하게 설명하고는 있으나, 기존 연구를 관련 이론틀의 입장에서 비판하지 않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즉 생성문법의 구조격이란 통사 현상이지 특정한 문법 형태의 실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채현식의 <유추에 의한 복합명사 형성 연구>는 인지언어학적 관점에서 유추적 단어 형성이 국어의 조어 기제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곧 유추는 단어의 저장과 생성 사이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포착하는 인지 기제라는 것이다. 이 연구는 무엇보다도 심리적 실재로서의 어휘부에 매우 폭넓은 관점을 베풂으로써, 기존의 형태론 연구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기존의 생성 형태론은 규칙 기반의 어휘부를 제안하여 어휘부의 기능을 단순히 문법 규칙의 고정된 상태로 인지하도록 하였다. 인간의 언어 능력의 기반이 되는 심리적 실재는 이 연구에서 관찰된 대로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심리적 기재의 활용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김일병의 『국어 합성어 연구』에서도 단어 형성에 유추적 형성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강조한다. 이 연구에서는 합성어에 대한 정의와 유형 분류가 체계적으로 제안되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연구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리라고 기대한다. 단어 형성론이 규칙 위주에서 인간 언어 능력의 창조적 성격을 언급하는 것은 생성형태론이 제안한 기계론적인 이론틀을 지양하는 동시에 실제의 언어 생활이나 언어 공학의 응용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형태론의 연구가 자리를 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러한 방향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이론틀에 대한 거대 담론의 부재로 연구 목적의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석사 학위 논문들에서는 전산언어학 관련을 직접 표방한 논문들이 눈에 띄었다. 박사 학위 논문들과 마찬가지로 단어 형성과 문법화를 다루는 논문들이 무리를 이룬다는 특징도 아울러 보이고 있다. 이종민은 <격조사 결합 형태와 의미>를 다루었으며, 이광호는 <현대국어 선어말어미의 결합관계와 빈도에 따른 텍스트 유형>을 다루었다. 신서인은 <현대국어 의존명사에 대한 연구>에서 의존 명사의 목록과 선행어와의 결합형을 다루었다. 이 연구들은 자연어처리를 위한 자료체를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구체적인 적용을 염두에 두는 연구 태도가 아쉽다. 그러나 석사 논문들로부터 자연어처리를 다루는 논문들이 활기를 띄는 것은 앞으로 형태론 연구가 보다 실질적 결과를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하겠다.
    자연어처리 논문은 아니지만, 논문의 성격상 전산언어학에 도움을 주는 연구도 있다. <추정표현 '-겠'과 '-을 것이-'의 의미 차이에 대한 인지언어학적 연구>(장원철)과 <국어 명사구의 관형 명사 범주 연구>(구소령)를 들 수 있다. 특히 <현대국어의 대비조사의 의미 연구-'~만큼, ~처럼, ~같이, ~대로'를 대상으로->(나은미)는 한국어의 대비 조사들을 그 의미 자질에 의해 계층적으로 제시하였다. 이 연구들은 특정 형태의 동의성을 다루는 문맥 정보를 활용한다는 것과 다범주를 구성하는 형태들의 원형과 이 자질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분류 기준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자료 중심의 말뭉치 언어학과 이를 활용하여 특정 요소의 문맥 정보를 활용하거나 분석하려는 전산언어학적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우리말 합성어의 어휘화 연구>(김민정), <국어 연쇄합성어의 어휘형성 연구>(이남숙)은 합성어의 경계 약화 현상과 합성어 결합 유형과 형성 순서를 다룬 것이며, <'것'의 문법화 현상>(박주영)과 <도움풀이씨 문법화의 과정 연구>(서인숙)은 의존 어간의 문법화를 다룬 것인데, 공시태의 연구가 통시태 연구로 진전되는 시대적 상황에서 도출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 각 문법 형태를 중심으로 한 논문들이 있다. <지정사 '이다'를 기원으로 하는 보조조사 연구>(장미)와 <'-기' 보문 형용사에 대한 연구>(김지혜), <'적'의 기능에 대한 연구>(권우진), <조사 '-이/가', '-을/를', '-의'에 대한 연구>(유은정), <안맺음씨끝 '더'의 의미 연구)>(윤재언)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특정한 이론틀 안에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개별적 직관에 의존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개별 연구들은 통합된 관점과 연구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3. 논문들
    새로 출간된 전문 학술지 『형태론 2권 1호, 2호』에는 여러 가지 풍성한 연구를 담고 있어서 앞으로의 발전이 더욱 기대되었다. 이 잡지는 지난해의 연구에 대한 논평을 담고 있어서 토론 문화를 촉발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논평이 전 편을 아우르기 때문에 심도 있는 토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특별히 주목되는 예를 중심으로 몇몇 논의가 심화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이 외에도 『형태론』의 지상 토론 난에는 논전의 주제가 될 만한 내용들이 눈에 띈다. 이른바 '이다'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이다'와 '아니다'의 상관성"(우순조)은 엄정호의 '이다' 지정사 논의를 비판하면서, '이'가 조사임을 논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엄정호는 "-'이다'의 '이'는 조사인가?"라는 반론을 바로 펼쳐서 논의의 흥미를 더해 주었다. '이다' 문제는 한국어 연구사의 초기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이 논의들에서도 여전히 드러나는 문제는 논의를 문법의 일반적 체계성에서 벗어난 예를 어떻게 일관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지에 대한 문제를 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특이한 행동을 하는 문법 요소를 특이하게 관찰하는 분류적 차원에서 논의가 맴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다' 문제는 2000년의 형태론 연구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이다' 논의 재검토"(김의수)에서도 발견되는 데, '이다'가 형식동사라는 주장은 형식동사의 지위 문제를 낳게 되므로, 논쟁의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즉 무엇인가를 주장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주장되는 것은 이제까지 전개된 논쟁의 의의를 희석할 뿐인 결론인 셈이다.
    "현대국어 '(-)이-'의 품사 분류와 자릿수에 대한 연구사적 고찰"(이선웅)도 '이다'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다'가 지정형용사라는 연구자의 주장은 지적한 바와 같이 지정형용사의 특이성이라는 문제를 낳는다. 연구자는 통사적 접사 개념이 이론적인 의의 없는 진술이라고 하였다. 물론, 연구자의 꼼꼼한 지적대로 특정 연구자가 통사적 접사를 나름대로의 개념으로 전개하는 데 있어서는 몇 가지 이론적 문제를 함축할 수 있다. 그러나 선행 어간에 음운론적으로 의존하는 형식 어간의 개념이야말로 통사적 접사 개념과 별 다른 것이 아니다. 논의들이 보다 실질적이기 위해서는 실험 방법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새롭게 제안된 결론이 전체 문법 체계 설정에 어떤 의의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조사의 범주 특성"(엄정호)은 조사는 포화 범주라는 개념으로 동일 분포하는 단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연구자는 이를 통해 품사 분류 기준에 분포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분포는 기술 문법가들이 이미 중시한 품사 분류 기준이며, 기능을 객관적으로 정의하는 수단이다. 문제는 포화 범주라는 분포 환경의 설정인데, 이러한 관점은 이미 조사라는 단위를 식별할 때 직관적으로 인지된 것이다. 다만, 이러한 분포 환경이 한국어 문법의 설명에서 다시 활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조사연속구성과 합성조사에 대하여"(김진형)는 일반적으로 전산언어학의 조사 연결 구성 처리를 위한 방법론에 대한 이론적 문제를 다룬 것이다. 연구자는 둘 이상의 조사가 선행 요소에 연속적으로 통합하는 경우 조사 통합체를 '복합조사'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지 못함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통시적으로 문법화를 통해 굳어진 조사들만을 합성명사로 인정할 수 있으며, 이들을 공시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논의하고 있다. 이 논의는 조사 연속 구성의 피상적 관찰에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론 언어학이 언어학의 공학적 연구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어떤 연구 주제들이 요구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어 보조사 사용의 전제"(박기덕)에서는 한국어 보조사를 전제와 관련하여 설명하였다. 어휘가 여러 의미를 가지면서 특정어휘 사용에 전제가 있듯이 한국어 보조사도 그 쓰임에 전제를 가진다는 것이다.
    『국어학』 35호에서는 '형태론과 국어 연구'라는 특집으로 한국어 형태론의 연구 상황과 위상에 대한 논의와 토론을 다루었다. "국어 연구에서 형태론의 위치"(이남순)에서 형태론이 독자적인 연구 영역이며, 음운론적 접근과 형태론적 접근, 그리고 통사론적 접근이 동일한 연구 결과를 보여야함을 주장하여, 문법 체계 일관성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국어 형태론에 기초한 통사론을 위하여"(서태룡)에서 형태론적 특징이 동일한 요소들을 하나의 통사 범주로 다룰 것을 역설하였다. "형태론과 음운론"(송철의), "국어의 형태론과 의미론"(최호철)도 형태론과 다른 영역과의 연구 접점을 논의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들 논문들은 형태론적 연구가 다른 영역의 정보를 활용하면서, 일관된 체계성 수립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토론에서도 드러났듯이 일관된 체계성을 수립하기 위한 용어 규정 문제나 전체적인 문법의 이론틀에 대한 합의점이 일관되지 않는 한, 형태론의 위상을 제대로 정립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즉 고창수(1985)에서도 이미 제안하였듯이 형태론적 연구 결과와 통사론적 연구 결과가 일치하는 데에 대한 분명한 평가 기준을 연구자들이 공유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토마스 쿤이 부려쓴 '정상 과학'으로서의 중심 이론틀 부재 현상과 심각하게 직면하고 있다고 본다.
    "공형태소를 다시 생각함"(시정곤)에서는 한국어 형태론에서 특이 현상으로 주장된 공형태소의 설정을 비판하였다. 공형태소의 설정이 문법 설명의 체계 수립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안된 대안 역시 공시적 문법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음도 사실이다. 이 문제는 형태론의 구성 요소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전면적으로 검토되는 것이 좋을 듯싶다.
    "한국어 용언 활용의 기술 방법에 대하여"(무라타 히로시)는 용언 활용에서 일반적으로 어미부에서 다루는 요소를 어기부에서 다룰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 태도는 실용적 쓰임을 위해서는 의의가 있을지 몰라도 이론적 체계성을 위해서는 숙고해야 할 점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산형태론』(이기용 1998)에 제안된 매개모음의 존재와 <어간형성접미사의 설정에 대하여>(고창수 1985)"에 제안된 통사적 접사의 존재와 비교하면서 논의가 자세히 전개되면 보다 흥미로울 것이다.
    "단어 형성과 직접 성분 분석"(최형용)은 단어 형성에서 유추가 주요 기제임을 주장한다. 최근 들어 단어 형성의 주요 기제가 규칙이냐 유추냐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논쟁은 언어 기제의 심리적 실재에 대한 연결주의 대 환원주의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환원주의 입장에서 보면 유추란 규칙 적용의 불확실성에 지나지 않은 것이나, 연결주의에서는 규칙이란 오히려 시스템의 작동 특성을 간과한 것이 된다. 이러한 논의들이 소모적인 것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한 논의가 어떻게 전체적인 문법 설명과 맞물릴 수 있는지 발전 양상을 눈여겨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국어 형태 구조 연구"(황화상)에서는 개념 구조를 형태 구조의 기저 구조로 설정하고, 개념 핵과 비핵의 관계, 그리고 개념과 언어 표현 사이의 대응 관계를 밝힘으로써 이 문제에 접근했다. 아울러 개념 구조를 설정함으로써 복합어와 파생어를 하나의 단어 형성 원리나 규칙으로 통합하여 처리할 수 있음을 보였다. 이 논의에 따르면 형태 구조는 형태 단위들 사이의 의미 관계 구조이며, 단어 형성의 제약은 바로 이러한 의미 관계 구조의 제약이라고 할 수 있다.
    "어근적 단어의 형태·통사론"(김일환)에서는 기존의 어근 개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근적 단어'라는 범주를 설정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범주에는 기존의 어근 개념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대상들이 모두 포함된다. 어근적 단어에 해당하는 유형으로는 '-하-, -대-, -거리-'에 선행하는 고유어 어근, 한자어 어근, 외래어 어근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국어의 어근적 단어는 단어의 구성소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보조사와 결합해서 문장에서 자립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지며, 이러한 형태론적 속성과 통사론적 속성들은 어근적 단어가 어휘부에 등재될 때 모두 표시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명사+동사+접사'형 파생명사의 형성과정"(고광주)에서는 파생 명사 형성의 제약으로 통사 현상과 의미 복합에 주목하였다. 즉, '명사+동사+접사' 혼합형에는 '(명사+동사)+접사' 유형과 '명사+(동사+접사)' 유형이 있으며, 통합 관계에 따라 목적어-타동사 관계와 주어-능격동사 관계, 부사어-동사 관계의 파생 명사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어의 단어 형성 연구-'X+동사+접사'의 3항 구조를 중심으로-"(강진식)에서는 단어 형성 시 다항 구조의 하나인 'X+동사+접사'의 구성을 가진 '움돋이'와 '옷걸이'가 [[움돋][이]], [[옷걸][이]와 같은 구성 형식을 갖는 파생명사임을 주장하였다.
    이 논의들은 단어 형성 기제의 구성 요소들의 확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단어 구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들은 하나의 체계에서 포섭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현대국어 임시어의 형태론"(송원용)은 임시어의 존재와 이를 형성하는 접사의 존재를 논의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임시어 형성 접사는 사전에 등재될 수 없는 조어론적 단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가 앞으로의 과제에서 다루려는 임시어에 대한 화자의 기억 여부가 현재의 언어학적 방법론에서 얼마나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있다'와 '계시다'의 품사에 대한 사전 기술"(배주채)에서는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논란이 많은 '있다'의 사전 기술 문제를 다루면서, '있다'의 높임말인 '계시다'와 반대말인 '없다'와 관련 속에서 기술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사전 기술에 대한 각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보조 형용사로서의 '있다'를 설명한 것이 특징이다.
    "국어 사전에서의 외래어 접두사"(박형익)는 그간 잘 다루어지지 않은 외래어 접두사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였다. 외래어 인정 문제부터 사전에 등재된 접두사 정보의 통일 문제, 외래어 접두사의 기능 확인 문제 등 자세한 논의를 베풀고 있다.
    "접두사와 관형사를 식별하기 위한 기술"(신중진)에서는 접두사와 관형사를 원형성을 공유하는 문법 요소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접두사의 접사적 특이성과 관형사의 실사적 특이성을 하나의 속성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특히 접두사 가운데 '잔[흰색 무늬]'의 '잔'과 같이 명사구를 한정하는 통사적 접두사의 존재 가능성을 개진한 것은 연구자의 말 그대로 흥미로운 것이다.
    "단형 부정문의 부정어 '안(아니)'의 접두사 설정에 대하여"(박형우)에서도 지금까지 부사로 분류되어 온 부정어 '안(아니)'이 부사적 성격보다 접두사적 성격이 강함을 주장하며 접두사로 분류할 것을 제안하였다.
    "접두사와에 나타난 의미 변화 연구-접두사 '개-, 풋-, 참-'을 중심으로-"(김덕신)은 접두사 '개-, 풋-, 참-'을 대상으로 개별 형태의 의미변화의 단계와 이들 형태에 공통으로 나타난 의미 변화의 특징을 기술하고 있다. 변화상의 공통 특징으로 문법화가 의미·음운·범주의 세 가지 측면에서 평행성을 보이며 일어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접속어미의 시제 해석과 형태론"(백낙천)은 접속문의 시제 해석을 접속어미와 시제관련 선어말어미와의 통합제약을 통해 국어 접속어미의 형태론적 특징을 밝힌 것이다. 다만 논지 전개에서 시제관련 선어말어미와 결합이 불가능한 접속어미의 분류와 나열에 그치고 있다.
    "국어 종결어미화의 문법화 양상"(김태엽)에서는 국어에서 형태적으로 비종결어미인 것들이 종결의 기능을 수행하는 예들이 있음을 주장하고, 비종결어미의 종결어미화 현상을 문법기능의 분화에 의한 문법화로 설명하였다.
    "선어말어미의 문법적 지위 정립을 위한 형태·통어적 고찰-{었}, {겠}, {더}를 중심으로-"(목정수)에서는 이제까지 연구에서 선어말 어미로 논의되어온 {었}, {겠}, {더}를 대상으로 이들 모두가 선어말 어미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중에서 {더}계열만이 선어말어미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고, {었}, {겠}은 선어말 어미가 아닌 보조동사 구성 또는 그에 준하는 구성으로 파악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이다' 논쟁에서 '이다'를 의존 형식의 실사로 주장하는 것과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었었-'에 대한 일고찰"(문숙영)에서는 '-었었-'을 '-었1'과 '-었2'의 결합된 것으로 각각의 작용역을 유지하는 두 개의 형태소로 보았다. 그러나 이를 위한 의미 기능 부여는 '-었었-'을 하나의 형태소로 보았을 때와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니라고 본다.

4. 마무리
    2000년도 형태론 연구는 전반적으로 합성 구성에 대한 문제와 문법화 문제, 그리고 실사와 허사의 중간 상태에 있는 문법 요소의 지위 문제가 논의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전산언어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정보처리 기술에 응용될 수 있는 계량적 방법론이나 이에 준한 문법 요소의 목록 점검 등이 눈에 띈다.
    20세기의 형태론 연구는 형태소라는 개념이 과학적으로 정립되면서 시작되었다. 생성문법의 등장 이후에는 잠시 통사론에 빛을 가리기도 했지만, 곧 생성형태론의 등장으로 형태론의 위상이 새롭게 조명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규칙 위주의 형태론은 환원주의의 한계에 직면하여 형태론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논의된 연구들이 원형 이론이나 유추에 의한 단어 형성을 논하는 것은 바로 환원주의에서 연결주의로 나아가려는 역동성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아직은 규칙 중심 체계의 모순성을 드러내는 이상의 체계적 진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논의의 불은 당겨졌지만, 논의를 체계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중심 이론틀의 면모가 아직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문법 요소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어 너무 한국어의 특질을 앞세운다는 것이다. 조사를 접어로 간주하는 주장들이 무게를 더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생성문법이 보편문법을 강조하여 한국어를 영어의 시각에서 피상적으로 관찰하려는 연구들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한국어의 특질을 주장하는 것은 언어 과학의 보편성을 훼손할 염려도 있는 것이다.
    연구물 중에는 "접사란 파생접사만을 의미한다."는 진술이 보이기도 하였다. 접사를 파생접사와 굴절접사로 대별하는 것은 기술 언어학의 전통을 따르는 보편 타당한 용어 사용인 것이다. 한국어에서 '어미'라는 용어가 통용된다고, 보편 타당한 용어 사용을 결론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곤란하다. 『형태론』 덕분에 치열한 토론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나, 토론은 어디까지나 건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상대 논자의 용어 개념을 관련 이론 자체의 오류로 일반화하는 일은 신중히 고려되어야 하고, 또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일이다.
    어떤 문법 요소가 어간에 속하는 것인지 접사에 속하는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결국 이론 내적인 문제이다. 암암리에 인정되거나 비판적인 이론 내적인 문제가 공공연하면서도 국부적으로 다루어졌다는 사실은 바람직한 토론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 숙고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하여 문법 모형의 준거 틀에 대한 전면적이며 체계적인 논전이 전개되는 것도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한다.
    말뭉치에 의한 통계적 연구나 특정 문법 요소들의 전면적인 목록이 검토되는 것은 언어 자료의 완비성을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작업들이다. 특히 개념적으로만 다루어진 복합 요소들의 체계적인 점검은 연구의 지평을 확대하는 것이다. 사실 20세기 언어학은 추상적이며 심리적인 실재를 명시화하는 데에 골몰하였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언어학의 본래 위상인 실용적 결과물의 산출이 다시금 중시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하겠다.
    특히 전산언어학의 목표를 명시한 학위 논문들이 선을 보였다는 사실은 형태론의 접점 학문적 성격이 중심 학문적 성격으로 옮아가는 출발점이 된다고 본다. 현재의 전산언어학에서는 통사 현상보다는 형태 요소들의 결합을 다루고 이를 식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아울러 형태 이론이 이제까지 음운 현상이나 통사 현상과의 공조에 주목했다면 앞으로의 형태 이론은 어휘론과의 공조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단어 형성 기제와 어휘부 문제에 천착한 논저들은 이러한 경향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