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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연구원 1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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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연구원 개원 10주년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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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연구원 개원 10주년을 축하하며

이어령 / 초대 문화부 장관, 이화여대 석좌교수

국립국어연구원이 생긴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내가 처음 문화부 장관직을 수행하였을 때 가졌던 구상을 '문화 발전을 위한 네 기둥'의 실현이라고 말한다면 그 중 하나가 바로 어문 정책의 기초를 다질 국립 기관을 세운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내각에서는 국민들이 그동안의 기초 생활 수준에서 벗어나 문화적인 안목을 갖고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 바라는 뜻에서 문화부를 창설하여 제가 초대 장관직을 맡아 약 2년간 의욕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문화부 전 직원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는 등 초창기 문화부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협조해 주었던 일들은 정말 인상 깊고 고맙게 생각됩니다. 이때 나는 오늘날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를 순화하고 거르는 작업을 프랑스의 국립국어연구소가 하듯이 우리나라의 국어연구원이 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개원 작업을 서둘렀고, 당시 학술원 산하 국어연구소의 소장이었던 안병희 교수와 협의하여 가능하면 국어연구소의 업무를 그대로 이관하는 방향으로 국립 기관의 설립 작업을 추진하였습니다. 국립국어연구원의 첫 사업으로 대국민 서비스 전화, '가나다 전화'를 설치하여 국민들이 국어에 궁금한 사항이 있을 때 답변해 줄 수 있도록 하였고 그 전화번호를 국어연구원의 음사인 '9909'로 쓰도록 하여 일반인이 쉽게 외워 사용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 '가나다 전화'는 국립 중앙 도서관의 '글방 전화'나 문화부의 '까치 소리 전화', 영화 진흥 공사의 '아리랑 전화' 등과 더불어 일반 국민의 문화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 데 공헌하도록 민원 전화를 설치한 것이었습니다. 그 중 많은 전화들이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지만 그 중에서도 국어연구원의 '가나다 전화'는 끊임없이 발전하여 현재 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하니 정말 반갑고 고마운 일입니다. 또한 조선일보와 국어학자들의 지상 토론을 통해 언어 예절 화법을 제시함으로써 일반 국민들이 언어 예절에 혼란을 겪고 있는 사항을 정리하여 대인 관계의 호칭과 지칭을 정리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만화의 용어나 일반 신문 잡지, 그리고 지하철 안내 문안, 기차나 고속버스 안내 문안 등에 대한 국어 순화 작업을 펼쳐 범국민 언어 순화를 꾀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견'이나 '길 어깨'라는 외국어 번역 투를 우리말 '갓길'로 순화하여 국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 국어연구원의 연구원들이 애쓴 결과입니다.

당시 문화부에서는 매달마다 음악, 미술, 문학, 어학 등의 분야에서 문화 인물을 선정하여 선인들의 업적을 기리는 각종 행사와 간행물을 발간토록 하여 국민들이 선인에 대한 업적을 깊이 깨닫도록 하였는데, 국어연구원에서도 안익태의 달에는 애국가 조사라든가, 문익점의 달에는 목화 어휘의 조사라든가, 허준의 달에는 동의보감의 국어학적 연구 등을 통해 선인의 업적을 기리는 국어학적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10월의 문화인물은 국어학에 공헌이 많은 연구자를 골라 그 업적을 기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문화부에서는 각 소속 기관에서 그 분야의 문화 학교를 열어 일반 국민이 문화적 향유 기반을 넓힐 수 있게 하였는데, 국어연구원에서도 국어문화학교를 열고 국어반과 번역반을 지금까지도 계속 잘 수행하고 있다니 정말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또한 날로 늘어나는 번역서들의 외국 말투를 가급적이면 우리말로 가다듬는 작업도 국어연구원에서 수행하도록 하여 개원 초부터 제3 부장을 번역 전문가로 임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각 나라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에 오역이나 직역 투, 또는 일본어에서 중역한 말투가 시중에 나도는 일을 지양하고 우리말을 살찌고 아름답게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번역 작품들이 많이 나오도록 국어연구원에서 계속 노력하길 바랍니다. 국민들 곁에서 우리말을 다듬고 연구하여 바른 길을 제시하는 일을 국어연구원이 맡아 한편으로 마음 든든하면서도 아직도 출발 때의 그 인원 그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음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국어연구원이 무슨 기관이냐고 반문하던 국민들도 이제는 궁금한 사항은 '가나다 전화'에 전화하고, 궁금한 말은 국어연구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을 펼쳐 보고, 궁금한 문장이 있으면 국어문화 학교에 등록하여 강의를 듣는 모습을 볼 때 문화부에서 처음 시작한 일들이 국어연구원에서도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국어연구원이 청사를 지어 새 집으로 이사하였다는데, 앞으로는 국민 언어의 기본 소양이 되는 국어 분야를 깊고도 넓게 연구·조사하는 기관이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국어연구원이 장기적인 연구 계획과 활발한 외국과의 교류를 통하여 한국어에 자부심을 가지고 국어를 폭넓게 연구하는 기관으로 계속 발전하여 국민 곁에 늘 함께 있으면서 국민의 국어문화 향상에 이바지하길 바랍니다.